나이절 캐머런의 〈로봇과 일자리: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이음, 2018)는 제목보다 표지 그림이 지은이의 전언을 한층 압축적으로 웅변해준다. 인간과 인공지능 로봇이 ‘의자놀이’를 벌이는 그림은 로봇공학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간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어야 하는 상황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 주제를 다룬 책으로는 나이절 캐머런도 몇 번이나 언급하고 있는 마틴 포드의 〈로봇의 부상〉 (세종서적, 2016)이 워낙 유명하지만, 〈로봇과 일자리: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의 장점도 분명하다. 얇고 간명하다는 것.

ⓒ이지영 그림

기후변화와 인공지능 로봇은 인류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칠 시급한 현안이지만 세계 정치와 공론장에서 두 주제는 당면한 여러 현안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 스티븐 핑커, 맷 리들리가 ‘인류는 진보하는가’라는 공동 의제를 놓고 격돌했던 토론회 기록 〈사피엔스의 미래〉(모던아카이브, 2016)를 보면, 그나마 전자가 후자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는 네 사람의 토론 탁자에 정식 의제로 올랐으나 인공지능은 아예 오르지 못했다. 토론회가 2015년 11월에 이루어졌던 반면,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킨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은 2016년 3월에 있었다. 세계의 지성들이 몇 달 뒤에 화제가 될 기술 혁명에 둔감했다는 것은 그들이 어리석다는 증빙이 아니라, 그만큼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더 많은 분야에서 인간은 고유의 일자리를 기계에 빼앗기게 될 것이다.
이 사례의 가장 예시적인 모범은 피츠버그에서 시험 중인 자율주행 자동차(무인 자동차) 서비스다. 이 사업이 본격화하면 직업 운전기사는 거의 도태된다. 미국에는 트럭 운전 일자리가 약 350만 개인데, 2012년 한 해에만 트럭 약 33만 대에서 사망자 4000명이 나왔다고 한다. 이런 사고의 90%는 운전사 과실로 인한 것이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완벽해지면 운송업계는 인건비 때문이 아니라 안전 문제로 무인 자동차를 채택하게 된다.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혁명은 슈퍼마켓 계산대나 운전같이 낮은 수준의 기술을 요하는 업무만 침탈하지 않는다. 정교한 알고리즘은 법률가들이 하는 업무의 많은 부분을 대체하고 있다. 미국의 로펌은 재판 준비에 수천 건에 이르는 사건 서류와 판례를 검토하는 컴퓨터를 이용한다. 아무리 뛰어난 변호사도 서류 57만 건을 이틀 안에 분석하고 분류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컴퓨터의 역할이 텍스트와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훨씬 더 정교한 업무를 처리하는 데까지 점점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14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1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자 ‘재판부를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하라!’는 성토가 나온 것을 기억하자.

법률은 물론 의료와 교육 분야의 인력도 인공지능 로봇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의료 분야는 중환자를 다룰 때 더욱 알고리즘에 의지해야 하고, 한때 안전한 도피처로 여겨졌던 교수들 역시 ‘로봇 박사 교수’에 밀려나게 될 것이다. 연예나 예술 직종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의 크립톤 퓨처 미디어가 2007년 8월31일 탄생시킨 가상 아이돌(virtual idol) 하쓰네 미쿠는 약 10년 동안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수 중 한 명이었다. 미국의 한 소녀 팬은 디지털로만 존재하는 미쿠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죽지 않아요. 그녀는 술에 취하거나 말썽을 부리는 마일리 사이러스처럼 변하지 않아요.”

상대방(인간)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구사할 줄 아는 인공지능 로봇이 만들어질 때쯤, 기계가 소설가나 시인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재미있고 상상력이 충만하고 교훈이 있으며, 인간의 심리까지 능수능란하게 파헤치는 작품을 인공지능이 창작할 수 없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 어차피 우리가 문학이라고 숭앙해온 것은 누군가가 먼저 만들어놓은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절(영향·인용· 패러디 등)하거나 조합한 것들이다. 이 게임에서는 ‘독서력(데이터)’이 월등한 인공지능이 유리하다.

나이절 캐머런 지음, 고현석 옮김, 이음 펴냄
인공지능의 또 다른 문제 ‘군사 로봇’

지은이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평가하기 위한 4개 범주를 제시한다. ①고영향과 고확률 ②고영향과 저확률 ③저영향과 고확률 ④저영향과 저확률.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범주는 ①과 ②다. 이 가운데서 ②는 가장 까다로운 범주로, 로봇이 얼마나 많은 인간 실업자를 양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 긍정론자들은 기계가 인간 고유의 일자리를 빼앗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하고, 비관론자들은 기계가 발전하는 속도와 능력 앞에 안전하고 충분한 일자리는 없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과 대등한 휴머노이드(humanoid)가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의 점점 많은 부분을 하나씩 대신하는 새로운 종(種)이 될 것이다.

2015년에 나온 세계경제포럼 보고서는 지능로봇이 10~20년 안에 미국 노동력의 절반까지 대체할 수도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그런데도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고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러다이트’라고 낙인찍히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중도 좌파 정치인과 노동 지도자들도 이런 문제를 다루는 토론에 참여하기를 꺼리고 있다. 러다이트로 찍힐까 봐 두려워서다.”

‘20년 집권 플랜’을 내걸고 민주당 신임 당 대표가 된 이해찬 의원은 “민주·개혁 진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최소 20년 집권이 필요하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발상과 계산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한 당이 20년 동안 정권을 독차지한 나라는 썩어 문드러져 있을 게 뻔하다. 이 공식에 예외는 없다. 20년 집권 플랜이 아니라 기술혁명에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혁신이 효율성을 개선하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것을 굳게 믿는 경제인이나, 경제성장에 목을 맨 정치인은 똑같은 기술발전론자들이다. 그들의 목표가 동일한 이상, 로봇공학과 인공지능이 인간을 항시적인 실업 상태에 빠트릴지도 모른다는 경고는 귀에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타이태닉 호 침몰, 유전자변형생물(GMO) 논란, 2008년의 월스트리트 붕괴 등 과거의 모든 재앙에서 배웠듯이 비판적인 사고를 못하게 하면 반드시 위험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 마틴 포드와 나이절 캐머런의 문제의식은 인공지능 로봇과 인간의 실직이었지만, 그것만큼 심각한 인공지능 로봇의 또 다른 문제는 자율무기의 하나인 ‘군사 로봇’이라는 점을 덧붙인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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