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정씨의 명함에는 ‘음식문화 운동가’라고 적혀 있다. 워낙 장 담그기로 소문난 이라 ‘전통식품 명인’이라는, 오해 아닌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자신을 음식문화 운동가로 소개한다. “거창할 것도 없어요. 할 수 있는 한에서 내 밥 내가 해 먹는 분위기가 퍼지고, 골목골목 장독대가 보였으면 해요. 모색하기이고, 궁리입니다. 이 안에 문화의 이상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둥지는 지리산 자락이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달리다 지리산 둘레를 돌고 돌아 실상사 앞에 내리면 길 건너에서 ‘맛있는 부엌 (전라북도 남원시 천왕봉로 783)’이 방문객을 맞는다. 마당에는 땡볕 아래 반짝이며 선 장독이 가득하다. 사진 잘 나오라고 줄 맞추어둔 장독대가 아니다. 몇 년간 담그고, 익히고, 그때그때 먹고 쓰느라 삐뚤빼뚤 놓은 된장·간장·고추장, 이런저런 별미장 등을 품은 독이 옹기종기 모여 섰다. 여기가 작업실 겸 대중 교육을 위한 공간이다. 서울에서 꽤 멀지만 전국에서 사람이 모여든다. 청소년에서 장년에 이르는 시민이 장과 음식의 기본을 배우러 달려오고, 알 만한 유명 요리사와 업계에서 선생님 소리 듣는 전문가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장독마다 이곳에서 장을 배워 담근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시사IN 신선영고은정씨가 보여준 간장. 우리 장은 한번 담가 묵히는 데 따라 쓰임을 달리한다.


오후 2시가 다 되어 도착한 취재진에게 기어코 밥을 먹이겠다며 고은정씨가 고구마줄기김치, 열무김치, 오이지무침, 가지볶음, 두부찜, 두부샐러드, 보리굴비찜을 주섬주섬 차리기 시작했다. 여름 김치, 여름 짠지, 여름 나물이 지리산의 8월에 마침맞다.

“나는 명인도 요식업 종사자도 아니고, 그냥 사람 굶는 건 못 보는 사람이에요. 있는 반찬으로 상 차리고, 누가 준 굴비라도 있으면 나누어 먹고. 저마다 할 수 있는 만큼 ‘리틀 포레스트’처럼 하면 돼요. 내 생활 제대로 하고, 이웃과 같이 잘 먹자고 이러지요.”

뽀드득 아사삭, 짠맛과 오이 풍미가 제대로 올라오는 오이지무침을 씹는 동안에도 받아 적을 말이 들린다. “제철 오이 참맛을 모르면 오이지도 없어요. 오이 잘 먹자고 담근 오이지인데, 오이 맛 살리는 짭짤한 소금물이면 됐지, 물엿에 설탕은 또 뭐요. 제맛도 아니고 재료 낭비지. 기본에 충실하면 낭비도 없고, 수고도 덜고,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오이 스무 개에, 소금 500g 푼 물 3.5ℓ를 팔팔 끓여 붓고 돌로 잘 눌러서 노랗고 조글조글해지도록 기다려라. 이것으로 고은정의 오이지는 다다. “나 먹자고 만들어봐요. 나보다 나한테 더 잘해줄 사람은 없어요. 맛과 향이 비니까, 숙성 시간 기다리지 못해서, 조미료며 첨가물을 더 쓰지요.”

 

ⓒ시사IN 신선영지리산 자락에 있는 ‘맛있는 부엌’ 마당에는 장독이 가득하다.


서울혁신센터에 들어선 장독대처럼

고은정씨가 장이며 음식을 가르칠 때 늘 강조하는 점이 있다. 음식에 비법은 없고, 또한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몰라서 어려운 거예요. 방법을 찾아봐야죠. 시작은 내 손으로 해보기예요.” 오래 교육 활동을 해온지라, 이런 설명 뒤에 따라올 반발을 모르지 않는다.

몇 해 전 경험을 잊을 수가 없다. 장 담그기 행사를 마무리하며 집에서 담근 간장에 들기름만으로 나물을 무쳤다. 나물 한 젓가락을 입에 넣은 사람들이 맛있다며, 나물이 전통적인 장과 들기름 딱 둘만으로 이렇게 멋진 음식이 될 줄 미처 몰랐다고 감탄을 터뜨렸다. 그런데 한 청년이 손을 들고 냅다 볼멘소리를 했다. “저는 원룸 사는데 어쩌라고요!”

아차 싶었다. 이런 반발에 응답해야, 앞으로 교육도 이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있는 현실에서 최선을 다할 것. 이는 음식문화 운동가 고은정씨의 원칙이 되었다. ‘어쩌라고요!’에 대한 응답은 ‘그러면 모여서 하면 되잖아요’다. 내가 사는 곳에서, 마음 맞는 사람끼리 하자. 공간은 공공의 영역에서 나누어 쓰면 되지 않을까. “그래서 골목길, 학교에서 장독대 만들기를 시도했고, 2017년
이후 서울혁신센터에 장독 400개가 들어섰어요. 이웃끼리 담근 장으로 이룬 장독대예요. 텃밭도 하잖아요. 장도 텃밭처럼 가꾸어보면 어때요?”

 

ⓒ시사IN 신선영아래 왼쪽은 장을 담글 메주, 오른쪽은 장에서 맺힌 소금 결정.


이즈음 ‘라면 끓이기보다 쉬운 장 담그기’라는 말을 했다. 담가본 적이 없어서 겁을 먹고, 지레 시도조차 포기한 사람들을 고무하려고 내건 말이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몰라서 못하고 있으니 이렇게라도 권하고 싶단다. “수제 맥주랑 비교해도 쉽다니까요.”

하지만 흔히 조선간장이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간장에는 편견이 있다. 짜기만 하고, 국탕이나 나물무침에만 쓴다는 것이다. 여기서 설명이 좀 필요하다. 오늘날 한국인은 크게 콩·탈지대두·밀을 원료로 국균을 주입해 숙성시킨 ‘양조간장’, 콩깻묵 등에서 얻은 단백질 원료를 염산으로 가수분해하여 가성소다나 탄산소다로 중화시켜 얻은 아미노산 용액에 첨가물을 넣어 만든 ‘산분해간장’, 콩으로 쑨 메주를 소금물에서 발효 숙성한 ‘재래식 간장(조선간장)’을 먹고 있다. 이 가운데 양조간장과 산분해간장은 조선간장과 구분되어 흔히 ‘왜간장’이라 불렸다. 그리고 어떤 간장에든 발효를 거치지 않은 산분해간장을 조금이라도 섞으면 ‘혼합간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시중에서 ‘진간장’이라는 명칭을 단 간장은 알고 보면 대개 혼합간장이다. 그리고 값싼 혼합간장이 우리 일상 식생활을 점령했다.

연원도 깊다. 일본인은 이미 1885년 부산에 왜간장 공장을 세웠다. 산분해간장은 1929년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 이래 일상에 파고들었다. 일본식 간장의 물량은 1930년대 이전까지는 양조간장이, 이후에는 산분해간장이 감당한다. 해방 이후 한국인은 일본식 간장 공장을 적산으로 인수해 일본식 간장을 생산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도 한국의 간장 산업은 일본식 간장 생산에 기울어 있다.

더구나 식민지 시기 이래 배움과 돈이 있는 계층의 머릿속에는 공장에서 나온 장이 시골 장독대의 장보다 좋고 맛있다는 편견이 자리 잡았다. 이 편견은 대중매체를 통해, 가정가사 교육을 통해 널리 퍼졌다. 집집마다 담가 먹던 간장은 자꾸 소외되었다. 우리 장은 미식의 세계에서 고려된 적이 없었다.

 

 

 

ⓒ시사IN 신선영음식문화 운동가 고은정씨가 작업실 앞마당 장독에서 발효 중인 된장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 장이 그저 국간장이라고요? 나물에만 쓴다고요? 써보고 말해요. 우리 장은 한번 담가 묵히는 데 따라 쓰임을 달리해요. 그해 담가 익힌 개운하고 맑은 청장, 2년쯤 지나면서 짠맛과 감칠맛이 한층 올라온 중장, 더 오래 묵혀 부드러우면서 농도가 진하며 깊은 풍미의 진장까지, 숙성을 기다려 골라서 쓰는 재미가 있지요. 청장은 맑은 국이나 냉국에서, 중장은 가벼운 조림이나 색을 좀 입힐 음식에서, 진장은 단독으로 쓰는 귀한 ‘소스’로 다양하게 쓸 수 있어요.”

“맛을 본 사람이 있어야 그 맛을 설명할 텐데”

고은정씨는 오로지 직접 담근 전통적인 장만으로 모든 음식을 해낸다. 이날 취재진이 먹은 음식도 그랬다. “다른 조미료나 소스류를 쓰지 않고도, 샐러드드레싱에서 조림, 볶음, 잡채, 불고기, 장조림, 가래떡 소스, 삼겹살 구이소스까지 오로지 메주와 소금물만으로 얻은 우리 장으로 만들어 먹고 있어요. 먹어본 사람들은 그 다양한 맛에 놀라 제대로 된 장을 찾아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콩깻묵 원료 아미노산 액에 온갖 첨가물을 섞은 간장에다 ‘똑떨어지는 맛’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전통 장의 맛을 아는 사람들은 전통 장에 대해 ‘똑떨어진다’라는 표현을 쓴다. 산분해간장 또는 혼합간장 계통에서는 장다운 향을 느낄 수 없는 데다 ‘찌르는 듯한 불쾌한 맛’이 나고, ‘기분 나쁜 맛과 냄새가 올라온다’고 한다. “익숙하다고, 내가 맛본 게 이거라고 해서 ‘똑떨어진다’고 말해도 되나요?”

문제는 감각의 교란이다. “장은 짠맛을 더 맛있게 먹자고 만들죠? 간장은 말끔하고 개운한 짠맛으로 재료의 맛과 음식의 좋은 풍미를 끌어올려요. 스스로 단 간장, 조미료 잔뜩 들어간 간장의 들척지근함과 비교해보세요. 진간장 등 온갖 이름을 단 장맛 소스가 개운한 짠맛, 쩡한 감각 등 조리의 실제에서 추구하고 즐길 만한 감각을 망치는 점도 있어요. 우리는 장만 들이켜자고 장을 담그지 않아요. 제대로 발효해 만든 장은 세상에 둘도 없는 찬모예요. 나를 뽐내지 않으면서 음식을 살리지요.”

고은정씨는 한층 안타까워했다. 맛을 본 사람이 있어야 그 맛을 설명할 것 아닌가. 알고 나면, 먼저 고르려는 노력이라도 뒤따를 텐데, 이렇게 말로 떠드는 수밖에 없으니 속이 상한다고 한다. 감각의 교란 속에서 겪는 혼란. 그렇다. 여기가 오늘날 우리 식생활의 급소가 될 수도 있다. 그가 말했다. “어쩌겠어요. 해야 할 일을 찾고, 직접 하는 수밖에.” 냉소하기 전에 실행. 그렇겠구나, 내 몸으로 겪으며 무언가 찾고 모색할 수밖에 없겠구나. 지리산을 떠나는 버스 안에서, ‘음식문화 운동가’라고 쓰인 그의 명함을 오래 만지작거렸다.

 

기자명 글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사진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