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으로 죽을지, 권총으로 죽을지 선택하라면 권총이다. 의식이 있는 채로 서서히 죽는 것은 누구나 두렵다. 국내법은 도축 전에 우선 도체를 기절시키도록 정하고 있다. 이상적으로는 돼지가 ‘죽는 줄도 모르고 죽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곱게 기절이나 하면 다행’이다.

돼지를 취급하는 국내 71개 도축장 대부분은 기절에 전기를 이용한다(전살법). 전기 기절기는 한 줄로 돼지를 처리한다. 사회성 강한 돼지는 한 줄로 서는 것을 싫어한다. 발길질과 전기 충격기가 동원된다.

사용 전압도 논란거리다. 400V 이상 고전압 전살법이 가장 확실하지만 돼지고기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이 때문에 몇몇 도축장에서는 200V 정도의 저전압을 사용한다. ‘돼지의 스트레스를 줄인다’고 홍보하지만 이견이 만만찮다. 도축 설비 컨설팅업체 JP솔루션의 최준표 대표는 “저전압으로 기절한 돼지들은 대부분 각막반사(눈에 자극을 주었을 때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 행동)를 보인다. 의식이 있다는 증거이다”라고 말했다. 덜 기절한 돼지는 의식이 있는 채로 동맥이 끊기고 피가 빠져나가는 고통을 겪는다. ‘톱으로 죽는’ 셈이다.

ⓒJP솔루션 제공제주축협 소속 도축장에서 직원이 ‘가스 기절’ 시설로 돼지를 유도하고 있다.

도축장이 더 주목을 받을 뿐 고통의 과정은 지난하다. 오르막길을 싫어하는 돼지들은 운송 차량 탑승을 거부한다. 역시 전기 충격기가 사용된다. 차량의 바닥은 분뇨로 미끄럽다. 골절 같은 부상이 발생한다. 어렵사리 도축장에 도착해도 계류장이 가득 차면 차 안에서 대기해야 한다. 덥고, 춥고, 좁다.

도축장 직원들의 스트레스도 줄이는 방법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도축 업계에서도 대책을 내놓았다. ‘이산화탄소 기절법(가스법)’이다. 기계가 돼지들을 3~5마리씩 짝지어 철제 상자에 넣는다. 한 줄 서기를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돼지들의 저항이 줄어든다. 상자를 아래로 내려뜨린다. 공기보다 무거운 이산화탄소 가스가 80~90% 농도로 바닥에 깔려 있다. 1분 만에 돼지가 기절한다. 4~5개 상자가 돌아가며 돼지를 처리한다.

가스법을 사용하면 돼지가 정말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적어도 몰이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돼지를 때려가며 몰아야 했던 직원들의 스트레스도 줄어든다. 2012년 제주대학교 연구 결과, 전통적 방식으로 몰이를 했을 때 110dB의 소음이 발생한 반면 가스법 도입 도축장의 소음은 80~85dB 수준이었다. ‘물퇘지(희고 무른 고기)’ 발생 빈도도 종래의 20~30%에서 1.6%로 떨어졌다.

가스법을 도입한 도축장은 국내 6곳뿐이다. 국립축산과학원 김진형 농업연구관은 가스법 공정이 일렬로 진행되는 전살법 공정보다 10배 느리다고 설명했다. 기계도 비싸다. 외국산은 12억원. 국산은 6억원이지만 잔 고장이 잦다는 말이 나온다. 제주도의 한 도축장은 2012년 국산 기계를 외국산으로 교체했다. 이 도축장의 생산과장은 “국산은 툭하면 고장이 나서 쓸 수 없었다”라고 밝혔다.

기자명 장용준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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