딩동. 502호 초인종을 누른다. “안녕하세요, 쿠팡입니다!” 5초를 기다린다. 답이 없다. ‘기프트(gift)’를 벽에 기대놓고 사진을 찍는다. 쿠팡에서는 배송 물품을 기프트라고 부른다. 워크맨 앱에 사진을 올리고 ‘배송 완료 처리’를 누른다. 워크맨 업무지침인 ‘액션 가이드’대로 ‘부문 배송’을 완료했다. 부문은 ‘부재 시 문 앞’의 줄임말이다. 502호 고객에게 자동으로 문자가 발송된다. “요청하신 대로 고객님의 상품 2건(2박스)을 ‘문 앞’에 소중히 보관하였습니다.”

지난해 8월 쿠팡은 워크맨 시스템을 도입했다. 쿠팡맨의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워크맨은 두 종류다. 쿠팡 차량에 동승해 배송을 돕는 워크맨, 쿠팡맨이 차로 아파트 단지에 놓고 간 기프트를 고객에게 최종 배송하는 워크맨이 그것이다. 로켓 배송(쿠팡의 익일 배송 서비스)이 만들어낸 틈새 일자리다. 나는 8월8일부터 10일까지 사흘간 서울 영등포 1캠프에서 아파트 단지 배송 워크맨으로 일했다.

ⓒ시사IN 이명익8월9일 ‘워크맨’ 김세영 인턴 기자가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물품을 배송하고 있다.

 

8월7일 오후 2시30분 워크맨 입문 교육 장소는 서울 삼성동 쿠팡 본사였다. 워크맨에 지원한 건 8월3일. 구인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쿠팡배송파트너/꿀알바/단기알바/주말/아파트’라는 문구가 매력적이었다. 원하는 요일에 원하는 일수만큼 근무할 수 있는 데다 시급은 9000원. 8월6일, 쿠팡 채용팀에서 이튿날 열리는 교육에 참여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교육장에는 30여 명이 앉아 있었다. 20대가 제일 많았지만 40~50대도 눈에 띄었다.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육아 때문에 쇼핑할 시간이 없는 고객이 쿠팡 로켓 배송 서비스가 주는 감동을 말했다.

3시간 교육 후 ‘배송 업무 위탁계약서’를 썼다. 계약서에서 나는 ‘배송사업자’였다. ‘배송사업자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사고 발생 시 모든 분쟁을 배송사업자 본인의 책임과 비용으로 해결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눈에 띄었다. 50개 미만을 배송하면 기본 2만2500원을 받고, 50개가 넘어가면 건당 450원이 추가됐다. 4시간 안에 배송을 마쳐야 한다. 강사는 “1시간30분에서 2시간 만에 끝나는 경우도 많다”라고 말했다.

오후 7시20분 교육을 마치자 영등포 1캠프 오픈 카톡방(이하 카톡방)에 초대됐다. 쿠팡 채용팀 직원, 쿠팡맨, 워크맨 등 총 35명이 한 방에 있었다. 업무 신청 링크가 카톡방 전체 공지로 떠 있었다. 해당 링크에 들어가 8월8일 워크맨 업무를 신청했다. 오후 7시20분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아파트 단지에 배정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일하는 시간을 미리 알 수 있는지 물었지만 “출근 시간은 아침 9시부터 확인 가능하니 이 방 신경 써주세요”라는 답이 왔다. 근무시간은 낮 12시~오후 6시로 신청했다.

8월8일 오전 9시20분 카톡방에 오늘 업무 시작 시간이 공지됐다. ‘#19 봉천동_○○아파트/ 김세영/ 12:40’

낮 12시40분 “워크맨? 거기 그대로 있어요!”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서 쿠팡맨을 만났다. 쿠팡맨은 화물차 운전기사와 함께였다. 배송할 기프트·가구 수와 배송지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워크맨 애플리케이션은 쿠팡맨이 인증을 해줘야만 접속할 수 있다. 기사가 화물차에서 롤테이너를 내렸다. 높이 170㎝ 정도의 하늘색 롤테이너는 잠금장치를 풀고 양문을 열면 기프트를 꺼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날 배송해야 할 기프트와 배송 중 사용할 소형 카트가 들어 있었다.

롤테이너는 워크맨의 베이스캠프였다. 아파트 단지 중간 지점, 쿠팡맨이 놓아준 자리에서 롤테이너를 이동하는 건 금지돼 있다. 워크맨의 임무는 배송이 끝날 때까지 롤테이너와 고객의 집 현관문 앞을 왕복하는 것이다. 단, 묵직한 기프트를 든 채로. 오늘 배송해야 할 기프트는 총 18개였다. 쿠팡맨에게 쿠팡 조끼를 받았다. 운전기사가 보냉팩에서 얼린 생수를 꺼내줬다. 쿠팡맨과 기사는 짐을 내려놓고 5분 만에 다음 아파트 단지로 떠났다. 쿠팡 조끼에 달린 주머니 네 개에 각각 생수, 매직펜, 스마트폰 두 개를 넣었다. 스마트폰 한 개는 워크맨 앱을 작동시키고, 다른 스마트폰으로는 틈틈이 워크맨 카톡방을 체크했다. 보고를 올렸다. “배송 시작합니다.”

단지 내 경사가 심한 아파트였다. 쿠팡맨에게 받은 카트는 상태가 좋지 않았다. 바퀴에 테이프가 감겨져 있었는데 끄는 순간 S자를 그렸다. 주차된 차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순간 교육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워크맨은 4대 보험에 가입된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였다. 배송을 하다가 외제차라도 긁으면 그 책임은 내가 져야 했다. 자칫 오늘 일당의 몇십 배를 날릴 수 있었다. 정신이 번쩍 났다.

“쿠팡맨 여자분 처음 봐요.” 배송을 절반쯤 했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30대 주민은 대신 10층 버튼을 눌러주며 이렇게 말했다. 워크맨이라고 하니 “그럼 운전은 안 하는 거예요?”라고 물었다. 쿠팡을 아는 이들에게도 아파트 단지 내에서만 배송하는 워크맨은 낯설었다.

ⓒ시사IN 이명익쿠팡맨이 아파트 단지에 롤테이너를 정차시키면 워크맨은 롤테이너에 담긴 물품을 분류해 고객의 집까지 옮긴다.
비가 온다고 배송을 멈출 수는 없다.

오후 3시 18개 기프트 배송을 끝냈다. 뜨거운 햇볕에도 쉬지 않고 움직인 덕이다. 빈 롤테이너를 찍어서 카톡방에 올리고 “배송 완료했습니다”라고 알렸다. 쿠팡맨에게서 “수고했다”는 답이 왔다. 50건 이하를 배송했으니 2만2500원을 받게 될 것이었다. 2시간30분 동안 2만2500원. 쿠팡이 온라인 모집 때 안내한 대로 딱 시급 9000원이었다.

8월9일 낮 12시25분 오늘은 ○○아파트 1단지와 2단지를 배정받았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전 9시가 넘어서야 출근 시간이 낮 12시25분으로 정해졌다. 익숙한 화물차에서 쿠팡맨이 내렸다. 어제 본 쿠팡맨이 아니었다. 운전기사는 그대로였다. 쿠팡맨은 워크맨 앱을 인증하고 2단지에 있는 롤테이너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1단지의 롤테이너에 29개 상품이, 2단지의 롤테이너에 20개 상품이 있었다. 한 가구에서 여러 상품을 주문한 경우가 많았다. 기프트 수는 총 49개이지만 방문해야 하는 집은 30가구였다.

오후 1시 한두 방울씩 내리던 비가 소나기로 변했다. 롤테이너에 놓인 기프트가 젖기 시작했다. 젖은 종이 상자는 아무리 조심스럽게 들어도 구멍이 뚫렸다. 손에 종이가 묻어나왔다. 이런 기프트를 받으면 기분이 나쁠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주문 다음 날 도착하는 로켓 배송을 위해서는 비가 온다고 배송을 멈출 수는 없었다. 다른 워크맨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오픈 카톡방에 메시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택배가 젖었는데 배송할까요?’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방장(쿠팡 채용팀 직원)은 젖은 택배 상자의 상태 사진을 요청했다. 나도 비에 젖어 송장이 떨어져버린 기프트의 사진을 올렸다. 찢어진 종이 상자에 매직으로 ‘반송’이라고 적은 후 롤테이너에 놓으면 나중에 쿠팡맨이 처리한다고 했다. 총 네 상자에 ‘반송’이라고 적었다.

오후 4시5분 총 30가구를 방문했지만 고객을 볼 일은 거의 없었다. 49개 중 경비실 배송을 뜻하는 ‘경비’ 기프트 8개를 제외하면 모두 ‘부문’ 혹은 ‘문 앞’ 배송이었다. 문 앞 배송일 경우 문 너머로 인기척이 들려도 문 앞에 택배를 두고 워크맨 앱에 올릴 ‘인증샷’을 찍었다. 고객을 만난 것은 한 번뿐이었다. 업무는 오후 4시5분에 끝났다. 총 3시간30분이 걸렸다. 오늘 시급은 6400원이었다. 최저임금에 못 미쳤다.

8월10일 오전 9시 오늘 출근은 낮 12시10분으로 정해졌다. 미리 잡아놓은 점심 약속이 있었는데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출근 시간을 당일 오전에나 알 수 있으니 약속을 잡을 때 곤란해진다.

낮 12시5분 화물차는 예정보다 5분 빨리 도착했다. 차에서 어제 본 쿠팡맨이 내렸다. 기사는 3일 내내 같은 사람이었다. 업무 시작 전 길어야 5분 정도 보는 사이인데도 반가웠다. 오늘 기프트는 20개였다. 12가구에 20기프트. 금방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쿠팡맨도 “한 시간이면 집에 가겠네요”라고 했다. 최단시간 기록을 세우겠다는 투지가 생겼다. 배송해야 하는 기프트의 주문자 이름 중에는 어제 본 이름도 있었다.

유독 무거운 기프트가 많았다. 특히 생수와 음료가 무거웠다. 상자 크기에 비해 무거운 기프트에는 ‘포카리스웨트’나 ‘요거트’ 같은 음료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음료는 택배로 시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오후 1시45분 1시간30분 만에 배송을 마쳤다. 퇴근하는 길, 빈 로켓 배송 상자를 든 30대 여성과 마주쳤다. 어제 내가 배송한 기프트일 것이다.

 

기자명 김세영 인턴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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