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은 주로 ‘공정거래법’이라고 불리지만 그 연원을 따져보면 ‘독점규제법’이라 부르는 것이 맞다. 시장경제에서 독점은 공정과 불공정을 따지기 이전에 중소기업과 소비자로부터 부를 착취하는 한편, 소비와 생산도 축소시켜 결국 사회 전체의 효용을 축소시킨다는 것이 미시경제학의 변함없는 결론이다.

장하준 교수는 “자본에도 국적이 있다”라고 말한다. 미국·영국 등은 보호무역으로 이득을 취한 자국의 성장사를 은폐하고, 근래 들어서는 ‘자유무역과 비교우위가 국내 경제를 발전시킨다’고 후발국에게 강요해왔다. 장하준은 선진국의 이런 행태를 ‘사다리 걷어차기’라고 비판했다. 이 논리를 바탕으로 외국 기업의 시장 침투에 맞서 국내 재벌 해체에 반대하는 것이 장 교수의 주장이다. 그런데 독점규제법은 외국 기업의 시장 침투를 규제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국내 기업 간의 경쟁, 그리고 기업과 소비자 간 경쟁을 위한 법이다. ‘경쟁’은 결과적으로 영업의 자유와 소비자 후생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김상조의 공정거래위원회도 재벌 해체 또는 재벌의 지배구조, 즉 ‘내부적 규제’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다. 재벌이 외부, 즉 시장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느냐를 살펴야 한다. 최저임금법만큼 소득분배에서 중요한 것은 독점규제법이다.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남용이 중소기업을 도태시키거나 압박하면서 산업별로 2~3개 대기업의 종사자만 안정적일 뿐이다. ‘국가경제’라는 구호에 속아서도 안 된다. 양승태의 ‘재판 거래’ 내부 문건을 보면 국가경제를 위해 선고했다며 ‘키코 사건’에서 은행 측이 승소한 판결을 대(對)청와대 홍보용으로 열거한다. 외화를 건실히 벌던 중소기업 수백 개를 파산시켜야 하는 국가경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특정 산업을 육성하자거나 재벌을 해체하지 말자는 것과 재벌의 시장지배력 남용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연합뉴스2010년 키코대책위 회원들이 우량 수출 중소기업에 수여하는 ‘수출의 탑’을 반납하며 반발했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한 범위에서 변동했을 때,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팔 수 있는 파생금융상품이다. 환 헤지를 목적으로 중소기업들이 이 상품에 가입했고, 2008년 금융위기로 인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자 중소기업 상당수가 큰 피해를 입었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의 폐해를 막고자 한다면 수직계열화 전쟁에서 벌어지는 중소기업 고사를 막아야 한다. 재벌은 자금력으로 1개의 시장(예를 들어 극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면 이를 바탕으로 이웃 시장(예를 들어 영화 투자배급)도 장악하기를 반복해왔다. 이 와중에 비계열사들은 하나둘씩 고사해버렸다. 이른바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거래 거절, 배타적 거래 등으로 비계열사들이 차별받기 때문인데 이것만 잘 감시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재벌들은 차별적 취급을 안 해도 비계열사들을 고사시킬 수 있다. 지금 영화시장이 그렇다. CGV가 지난 5년간 누적 영업이익 3000억원을 올리는 동안 계열사 CJ E&M은 같은 기간 누적 영업이익이 -200억원이다. 영화배급사인 CJ E&M이 일부러 자신에게 불리하도록 CGV와 계약하면서 발생한 결과다. 다른 극장·배급 복합체들도 마찬가지다. 비계열사 배급사들은 롯데, 메가박스, CGV 3사가 스크린의 97%를 점유한 상황에서 이들의 스크린에 의지해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똑같이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할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한 번도 빼어든 적 없는 칼날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대해 법원은 ‘몰아주기’의 정도가 현저하지 않다며 기업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런데 위 행위는 독점규제법상 이윤 압착(또는 약탈적 가격 책정)으로 제재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공정위는 한 번도 빼어든 적이 없는 칼날이다. 이뿐만 아니다. 최근 이동통신사들이 직접 또는 계열사를 통해 만든 콘텐츠(SKT는 11번가, KT는 지니 등) 이용에 대해 이통사 고객들에게 과금하지 않는 이른바 ‘자사 콘텐츠 제로레이팅’도 문제가 있다. 기업은 비계열사 콘텐츠도 똑같이 제로레이팅을 해주면 되지 않느냐고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동통신 3사가 시장을 100% 점유한 상황에서 자사 콘텐츠 제로레이팅을 시작한다면 콘텐츠 사업자 전반에 미칠 영향이 크다. 통신 대기업은 ‘제로레이팅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모든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공평하게’ 제시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정부의 경쟁 정책이 훨씬 더 세련되어져야 할 때가 되었다.

 

 

기자명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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