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31일부터 6월9일까지 10일간 영국 런던에서 ‘또 하나의 월드컵’이 열렸다. ‘코니파 월드 풋볼 컵(CONIFA World Football Cup).’ 코니파는 ‘Confederation of Independent Football Associations(독립축구연맹)’의 줄임말로 2013년 설립되었다. 코니파는 국제축구연맹(FIFA·피파)에 가입하지 않은, 혹은 가입할 수 없는 나라나 민족, 지역과 도서 벽지 거주인의 축구팀이나 협회의 국제조직이다. 피파의 가입 승인 요건은 ‘주권국가로 승인되었고 유엔에 가입한 나라’의 축구협회로 제한된다. 복잡한 정세로 인해 피파에 가입할 수 없는 나라도 있다. 유엔 미승인 국가의 축구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며 경력을 쌓을 길은 좁다. 또한 피파 가입국에 살고 있어도 그 나라의 국적과 자신의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축구인도 많다.

ⓒUKJ 제공2018년 6월9일 UKJ와 티베트 팀이 최종전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티베트 팀 선수들이 주로 앞줄에 앉아 있다.
코니파를 창설한 페르안데르스 블린드는 스칸디나비아 원주민 사미족이다. 세 살 때 부모와 함께 노르웨이로 이주한 그는 형언하기 힘든 차별과 박해에 시달렸다. 벼랑 끝에 몰려 낙오자가 된 그를 구한 건 축구였다. 그는 축구공 앞에선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팀은 민족을 넘어 구성원을 하나 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경험이 코니파의 설립 이념이 되었다. 2014년 제1회 대회 때는 상황이 열악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각 자치정부의 지원 등으로 매년 가입 팀이 늘어서 현재 유럽 24개, 아시아 10개, 아프리카 9개, 북미 2개, 오세아니아 2개로 총 47개 지역의 축구협회와 공동체 팀이 가입해 있다.

2018년 제3회 코니파 월드컵 런던 대회의 주최는 아프리카 소말리아 동부 해안지역 바라와에 뿌리를 두고 영국에 거주하는 바라와인 축구협회다. 출전 팀들을 보자. 중국 정부가 출국을 허용하지 않아 티베트 자치구에서는 참가 선수가 없었지만, 인도에 망명해 있는 티베트인 2세나 3세와 유럽 거주 티베트 축구 선수로 꾸려진 티베트 팀처럼 독립을 꿈꾸는 공동체가 출전했다. 독립은 했지만 승인받지 못한 국가의 대표팀인 아브하지아(조지아의 자치공화국), 북키프로스(1983년 키프로스공화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지만 국제사회의 승인을 받지 못한 북키프로스터키공화국) 등이 출전했다. 이 밖에도 서아르메니아(오스만튀르크에게 박해를 당한 역사를 지닌 아나톨리아의 아르메니아 후예 팀), 카르파탈랴(우크라이나 서부에서 헝가리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의 팀), 카빌리(알제리 북부 소수민족 베르베르인 팀), 타밀·이람(스리랑카 내전으로 조국을 떠나야 했던 타밀인의 팀), 파다니아(이탈리아 북부 지역 팀), 펀자브(인도 북서부와 파키스탄 동부 펀자브 지방 팀) 등 총 16개 팀이 본선에서 승부를 겨뤘다. 복잡한 처지와 배경에도 굴하지 않고 축구로 희망을 그려내고 있는 다채로운 팀 중에는 안영학이 이끄는 ‘United Koreans In Japan(UKJ, 일본의 통일 코리안들)’팀도 있었다.

ⓒUKJ 제공지난해 현역에서 은퇴한 재일 조선인 안영학씨(위)가 UKJ 팀에서 선수 겸 감독을 맡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다리를 놓는다’

지난해 현역을 은퇴하고 축구 교실 ‘Junistar Soccer School’을 운영 중인 안영학은 코니파로부터 홍보대사 취임 제안과 UKJ로부터 코니파 출장 제안을 받았다. 은퇴 뒤여서 솔직히 망설였다는 그를 움직인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 다리를 놓는다’라는 대회의 이념이었다. 이 이념은 한국·일본·북한 세 나라를 축구로 잇고 싶은 자신의 꿈과 일치했다(〈시사IN〉 제520호 ‘한·북·일 이은 안영학, 그의 마지막 슈팅’ 기사 참조). 한국과 일본, 북한 사이에서 ‘재일’로서 조선인이자 축구인의 삶을 살고 있는 그에게 어느 한 나라의 국가대표가 아니라 ‘재일의 대표’로 국제대회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이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고 J리그와 K리그에서 활약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국가대표로 월드컵에 출전한 그가, 이번에는 ‘재일’의 대표로 코니파 월드컵에 현역 복귀한다는 소식에 일본 언론의 관심이 컸다. 남북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정세가 크게 움직이면서 영국 현지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UKJ의 선수 겸 감독까지 맡은 안영학은 선수 영입, 대회 출전 경비 마련과 엠블럼의 디자인까지 직접 챙겨야 했다. 안영학은 ‘재일 조선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싸워줄’ 선수들을 직접 모았고 총 17명이 흔쾌히 승낙했다. 소속 팀의 경기 일정 때문에 참가하지 못한 선수는 매우 아쉬워했다. 출전 선수들 중에는 1999년생으로 영국 ‘스테인스타운 FC’의 U-19로 활약 중인 리동성 선수나 홍콩 프로 리그 ‘리만 FC’의 손민철 선수처럼 해외에서 활약 중인 선수도 있었다. 나머지 대부분은 아마추어 선수다. UKJ 대표 선수 18명은 조선 국적이 2명, 한국 국적이 15명, 일본 국적이 1명으로 제각각이다. 일본 내에서 무국적인 조선을 국적으로 선택한 안영학은 이번에도 영국 비자를 받기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기 위한 자료를 제출하고 한 달 이상 기다리는 불편을 겪었다.

코니파 월드컵은 현지 체재비 외 항공료나 유니폼 제작비 등 소요 경비는 각 팀에서 부담해야 한다. 적지 않은 팀이 경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안영학도 선수들 몸 관리와 우승 전략을 세우는 한편으로 운영비 700만~800만 엔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을 찾아다니며 스폰서와 협찬을 부탁했다. 팀의 얼굴인 엠블럼 디자인 콘셉트에도 적극 관여했다. 엠블럼 중앙의 붉은색 호랑이는 조선 민족의 상징이자 긍지를 나타낸다. 강인함과 민첩성을 갖춘 호랑이로 그려진 한반도에 휴전선은 없다. 제주도 자리에 그려진 축구공 위로 세계를 향해 도약하는 호랑이 모습에 ‘재일’의 희망을 담았다. 또한 상단부 UKJ와 엠블럼의 테두리에 재팬 블루를 넣어,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일본, 자신들을 응원해주는 서포터에 대한 고마움도 담았다. 개막 전날인 5월30일이 되어서야 UKJ 대표팀은 영국 현지에서 처음으로 전원 참가 연습을 했다.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해 아리랑을 부른 UKJ 대표팀은 아쉽게도 목표로 삼은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비슷한 역사를 안고 사는 팀을 만나 시야가 넓어지고, 축구를 통해 자기가 누구인가를 확인하는 값진 경험을 했다.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월드컵. 그러나 한반도와 일본의 경계를 사는 재일 조선인 축구 꿈나무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자신을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안영학은 그들과 함께 코니파 월드컵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