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파도 위의 여성들〉과 웹사이트 위민온웹(Women on Web)으로 잘 알려진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 레베카 곰퍼츠가 7월5~7일 방한했다. 때마침 유산 유도약 도입에 관한 국회 토론회와 낙태죄 폐지 집회까지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임신 중단권’은 아무리 이야기해도 충분치 않다. 지금껏 사회적 논의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약물(인공) 유산이란 약제를 투여해서 유산을 유도하는 방법을 뜻한다. 임신 유지를 위해서는 프로게스테론이라는 호르몬이 필요한데, 미페프리스톤은 우리 몸에서 나오는 프로게스테론을 억제하여 임신을 유지할 수 없게 한다. 미페프리스톤을 투약하고 24~48시간 지난 뒤 자궁을 강하게 수축시키는 미소프로스톨을 복용하면 임신 산물이 배출되어 유산이 유도된다.

미소프로스톨은 1973년에, 미페프리스톤은 1988년에 개발됐다. 이후 이들 약물의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되어 점점 그 사용량이 많아지고 있으며, 마취와 입원이 필요 없기 때문에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유용하다. 두 약물은 2005년 세계보건기구 필수의약품 목록에도 등재됐다. 임신 중단 성공률은 임신 8주 이내에는 98~100%, 8~9주에는 96~100%, 9~10주에는 93~100%에 달한다. 67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승인을 받아 공식 사용하고 있고, 임상시험 등을 위해 사용하는 나라까지 하면 100개국이 넘는다. 미국과 뉴질랜드에서는 시민단체가 설립을 주도한 제약회사에서 미페프리스톤을 수입했고, 중국은 국영 제약회사가 직접 생산하고 있다.

ⓒ정켈 그림

레베카 곰퍼츠가 설립한 위민온웹은 선박으로, 기차로, 드론으로, 또 인터넷 상담을 통해 임신 중지가 불법인 나라에 미소프로스톨과 미페프리스톤을 보낸다. 5월25일 국민투표로 12주까지 임신 중지가 합법화된 아일랜드의 경우, 위민온웹 이용이 늘면서 임신중절수술을 받기 위해 영국으로 원정 가는 여성 수가 감소했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위민온웹 이용자 1000명의 자료를 모아 그 안전성과 효과성은 물론 아일랜드 여성의 현실을 연구한 논문이 아일랜드 의회에 소개되며 합법화 결정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비아그라보다 합병증 위험이 낮은데

한국에서 이 사이트를 이용해 유산 유도약을 배송받은 여성은 2010년부터 2018년 6월까지 2726명이다. 특히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 2015년 2월과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가 시작된 2016년 10월 이후 이용량은 큰 폭으로 증가했다. 위민온웹이 아닌 불법 사이트와 암시장을 이용하는 여성까지 합치면 유산 유도약 복용자와 수요는 훨씬 많을 것이다. 안전한 약이지만 의료 시스템 내에서 쓰지 않는 한, 불법이라는 위협과 혼자라는 두려움, 합병증이나 불완전 유산 시의 책임 소재 같은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점점 더 많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위해 위민온웹을 찾고 있다.

지난해 10월, 23만명이 서명한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국민청원에 청와대는 약 이야기만 쏙 빼놓고 답변했다. 낙태반대운동연합은 유산 유도약이 위험하다며 도입 반대 성명을 발표했고,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안전성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은 ‘불법 낙태약 유통’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음성적인 거래 실태를 보도하며, 불법 유통의 위험성과 약의 안전성을 혼동해서 다뤘다.

임신 중지는 가슴 아픈 일임에 틀림없으나, 위험한 일은 아니다. 미페프리스톤은 비아그라보다 합병증 위험이 낮다. 그렇다면 무엇이 임신 중지를 위험한 것으로 만드는가. 공론화를 어렵게 하는 낙인과 터부, 교육도 모니터링도 표준지침도 없이 불법으로만 규정하고 처벌하는 정부가 임신 중지를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

기자명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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