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17일, 전북 군산시 장미동의 한 주점에서 술을 마셨던 이 아무개씨(55)는 술집 주인이 자신을 무시하고 바가지 씌운 것에 복수하겠다고 술집 입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뒤 출입구를 막았다. 이 사고로 4명이 사망하고 30명에 이르는 부상자가 생겼다. 같은 달 22∼23일, 나이지리아 중부 플래토 주 등에서는 이슬람교를 믿는 유목민 풀라니족이 기독교도인 베롬족 마을들을 기습해 최소 86명을 살해했다. 이 사건은 그보다 앞선 6월21일 베롬족이 이동 중인 풀라니족의 트럭을 기습해 5명이 실종된 것에 대한 복수였다. 1999년 4월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총기 사건의 열쇳말도 복수다.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평소 학교 운동부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동성애자라고 조롱당한 것에 대한 분풀이로 총을 난사해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이 살해됐다.
‘원수를 갚는다’는 간명한 뜻을 지닌 복수는 법과 매우 다른 것 같지만, 실제로 그 뿌리는 같다고 할 수 있다. 1901년, 프랑스 발굴단은 이란 서부의 고대 유적지 수사에서 높이 3m가 넘고 무게가 4t에 달하는 돌기둥을 파냈다. 이 비석은 바빌로니아 왕조 함무라비 왕 때의 법전으로, 함무라비 법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동해보복법을 명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왕은 이 법전을 통해 복수를 국가의 전유물로 책정했지만, 앞서 본 사례들은 그토록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인간의 사사로운 복수 욕망을 공권력이 모두 회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지은이는 복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장류의 출중한 기억력이라고 말한다. 기억은 누가 자신의 비위를 상하게 했는지, 또는 누가 나에게 친절을 베풀었는지 잊지 않고 있다가, 그것을 되갚아줄 기회를 기다린다. 복수와 보답은 서로 다른 되갚음이지만, 둘 다 기억력에 기반한다. 여기 덧붙일 사항은, 비비원숭이와 달리 인간은 인위적으로 기억을 유지하게 해주는 기술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와 관련된 역사 공부는 매우 중요하다.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를 잘못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복수심을 팔레스타인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원서도 번역서도 스티븐 파인먼의 책보다 훨씬 먼저 나온 마이클 매컬러프의 〈복수의 심리학〉(살림, 2009)은 전자가 복수를 “원초적 욕망” “암묵적 관습법”이라는 설명에 안주하고 말았던 인간 사회의 복수 시스템을 좀 더 사회학적으로 분석한다. 이를테면 어느 사회는 복수를 적절하게 순화하고, 어느 사회는 도리어 복수를 권장한다. 마이클 매컬러프는 그 이유를 유무형의 자원에서 찾는다. 즉 재정과 자원이 풍부하고 직업의 기회가 많으며 안전한 공공 공간을 조성한 사회는 “느긋하며 다정하며 관대한 사회적 상호 신용 작용”을 특성화시킨 ‘체면 코드’를 발달시킨다. 반면 그 모두가 부족한 사회는 “자기 과신과 용기, 기술, 혼자 힘으로 돌보는 능력”을 구축하면서 ‘명예 코드’를 발달시킨다.
복수는 입법 노력보다 비용이 크다
동구권이 해체되면서 불붙은 발칸반도의 내전이나 아프리카 여러 곳에서 벌어진 인종(부족) 간의 복수에는 보통 한 종족 전부가 가담하곤 한다. 이때 이성을 가진 누군가가 이 광기를 중단시킬 수 없는 이유는, 복수가 “애써 일한 결과를 아무 노력도 들이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협력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집단 복수에 참여하지 않은 무임승차자는 임무가 끝난 뒤 공동체로부터 육체적 해를 당하는 것에서부터 벌금 부과, 사회적 추방, 창피 등의 처벌을 받게 된다.
스티븐 파인먼은 결론에 이르러 “통제 불능의 복수”가 문제일 뿐, “복수는 사회적 부정을 노출시키고 바로잡는 순기능도 한다. 불평등한 억압 관계에서는 보복이 오히려 칭찬받고 환호”받는다고 주장한다. 콜럼바인 총기 사건으로 트라우마를 간직하게 된 미국의 청소년들이 총기 규제 촉구 운동을 주도하는 ‘총기 난사 세대(mass shooting generation)’의 주역이 되고, 임차인이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두른 ‘궁중족발 사건’이 상가 임대차보호법 개정 추진을 이끌어낸 것을 가리킨다면, 지은이의 말도 어느 정도는 맞다. 하지만 적절한 복수와 통제 불가능한 복수를 가늠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복수의 실행자도 대상도 모두 개인적의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점에서 복수는 입법 노력보다 비용이 크다.
강남순의 〈용서에 대하여〉(동녘, 2017)는 지은이가 서문에도 밝혔듯이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가 2001년 발표한 〈용서에 관하여〉라는 33쪽짜리 논문을 읽고, 자신이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천착한 글이다. 용서에 대한 데리다의 핵심은 “진정한 용서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라는 데 있으며, 이것은 “만약 용서가 오직 용서할 수 있는 것만을 용서하는 것이라면 용서라는 개념 자체는 사라진다”라는 또 다른 핵심을 동반한다. 데리다에게 진정한 용서란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려는 시도’다.
데리다와 지은이의 숙고에 따르면, 대부분의 용서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조건을 교환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용서에서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와 변화는 중요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용서의 경제’ 또는 ‘교환으로서의 용서’는 용서의 ‘순수한’ 의미를 왜곡시킬 가능성과 함께 “조건적 용서는 그것이 최선의 용서든 불완전한 용서든,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받는 사람 사이의 윤리적 위계를 형성”하여 ‘우월한 자’와 ‘수혜자’라는 낙인을 영원히 남겨놓는다. 두 사람의 논의는 조건적 용서를 무의미하게 여기면서 무조건적 용서만 용서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적 용서와 조건적 용서가 이분화되었을 때의 한계와 위험성을 지적한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했던 예수님 말씀 역시 ‘490번’이 아니라 ‘용서의 무한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적인 용서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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