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믿음직한 선생은 수십 가지 ‘리스트’였다. 해외건 국내건, ‘명반 순위 100’ 같은 것을 입수해 하나씩 지워가면서 앨범을 모았다. 나를 포함해 주변에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 모두가 그렇게 했다. 리스트를 보면서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줬는지 파악했고, 힘들게 구한 원서를 탐독하면서 계보를 써내려갔다. 우리 시대 음악 듣기의 바탕이다. 계보는 그렇게 형성되었고, 다들 이를 통해 음악의 역사를 조감했다. 영화 〈스쿨 오브 락〉을 혹시 봤는지? 잭 블랙이 칠판 위에 뭔가를 빼곡히 적어놓고 가르치는 장면 기억날 것이다. 그러니까 계보란 곧 권력구조 비슷한 걸 의미했다.

계보가 쓰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새 음악이 지속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딴지를 걸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진정한 의미에서 새로운 음악은 없었던 거 아니냐고 말이다. 그럼에도 2000년대 이전에는 거대 서사와 비슷한 음악 조류가 당대를 장악하는 게 가능했다. 로큰롤의 시대가 있었고, 디스코의 시대가 있었으며, 그런지·얼터너티브의 시대가 있었던 게 이를 증명한다. 2000년대 이후는 그렇지 않다. 어떤 한 장르가 시대를 견인하는 현상 따위는 앞으로도 벌어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이런 흐름을 가속화한 주역이 스트리밍이다. 수십 년간 쌓인 곡들을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으로 언제든 접속할 수 있는 시대. 선택지는 우리 앞에 무한대로 펼쳐져 있다. 굳이 계보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 와중에 중요한 건,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다.

ⓒ연합뉴스밴드 혁오(아래)가 최근 새로운 음반 〈24〉를 내놓았다.

음악 만들기도 마찬가지. 1990년 이후 태어난 젊은 뮤지션들은 시대별로 음악을 듣지 않는다. 계보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를 상징하는 밴드가 바로 혁오다. 어떤 유명 뮤지션이 혁오 공연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친구들은 장르로 정의할 수가 없는데?” 그는 뮤지션이 장르로 정의되는 게 당연한 시절에 음악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혁오라는 밴드를 통해 신선함을 느꼈다고 한다. 

“모든 게 디지털로 쌓여 있어서 그 많은 것들 중 내가 뭘 골라내서 선보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웹진 〈아이즈〉와 인터뷰하면서 리더 오혁이 한 말이다. 혁오의 신보 〈24〉를 들어보라. 사운드의 기조는 1970년대를 연상케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여전히 장르적으로 명확히 포착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매력적이다. 심지어 혁오는 앨범 전체를 영어 가사로 불렀다. 목표인 무국적성을 강화한 것이다.

음악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혁오만이 아니다. 이건 전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다. 케이팝? 케이팝은 장르가 아니다. 심지어 케이팝은 현재 유행하고 있는 음악들 중 가장 복잡하고 역동적인 음악으로 인정받는다. 내 주장이 아니다. 케이팝을 작곡하는 동시에 해외 스타들과도 작업하는 창작자들의 증언이다. “전반적으로 케이팝은 다른 어떤 음악보다 다채로운 요소를 지니고 있다.”

〈모던 팝 스토리〉의 저자 밥 스탠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에디슨 이전의 19세기에도 그랬던 것처럼 음악은 지금도 마치 공기 같은 것이다. 그러니 걱정 마시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각그림 퍼즐을 갖고 놀듯 우리의 미래 세대는 팝을 도둑질하고, 큐레이팅하고, 엮어보고, 이렇게 엮은 걸 다시 엮어보면서 마음껏 즐길 것이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