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자가주〉 퀜틴 블레이크 지음, 김경미 옮김, 마루벌 펴냄
어린이책 수백 권에 그림을 그리고 글도 제법 쓴 작가가 있다. 그는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없다. 독일 작가 에리히 캐스트너는 결혼은 안 했지만 아이는 있었다(‘갑자기 웬 에리히 캐스트너?’ 싶을 텐데, 두 작가가 꽤 닮은 것 같다. 외모뿐 아니라 유머와 풍자도 닮았다). 아이가 없다뿐인가, “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다음 말이 걸작이다. “나는 아이를 창조한다.” 작가가 창조한 아이는 특별할 것 같지 않은가? 그는 대담하고 파격적이고 자유롭고 통쾌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퀜틴 블레이크이고, 그가 창조한 아이의 결정판은 ‘자가주’이다.

옛날 옛적 어느 행복한 부부에게 이상한 소포 꾸러미가 배달된다. 상자 안에는 앙증맞은 분홍빛 생물이 들어 있고, 이렇게 쓰인 쪽지가 목에 걸려 있다. “내 이름은 자가주예요.” 꽤 사랑스러웠던 이 생물은, 어느 정도 자라자 끊임없이 변신한다. 울음소리가 끔찍한 새끼 대머리독수리, 코에 닿는 것은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는 새끼 코끼리, 진흙처럼 보이면 아무것에나 달려들어 뒹구는 멧돼지, 불을 뿜어 옆집 할머니 스웨터를 태우는 새끼 용, 커튼에 거꾸로 매달리는 박쥐, 이상하고 낯선 털북숭이 괴물….

부모는 서로를 쳐다보거나 쩔쩔매며 머리를 쥐어뜯기만 한다. ‘어떻게든 해봐!’ ‘우리 흰머리 늘어나는 것 좀 봐!’ 그런데 어느 날, 괴물이 예의바르고 말끔한 청년으로 변한다. “어머니, 아버지. 뭐든지 말씀만 하세요. 제가 다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퀜틴 블레이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이를 부모가 만드는 줄 알았지? 아니야, 어디선가 만들어진 아이가 배달되어 오는 것뿐이지. 아이는 자기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정했어. ‘내 이름은 자가주’라잖아. 아이가 인간인 줄 알았지? 아니야, 아이는 용이고 멧돼지고 대머리독수리고 코끼리고 박쥐고, 괴물이야. 당신들과 같은 생각이고 같은 느낌인 줄 알면 큰코다칠걸?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한숨 쉬며 늙어가는 것밖에는. 하지만 절망할 것도 없지. 아이는 그 모든 과정을 다 거쳐 결국 번듯한 인간이 되니까.

그렇게 인간이 된 아이는 연인을 만나고 언제까지나 함께 있고 싶어 한다. 손을 꼭 붙잡고 그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러 가는 두 사람. 이야기는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지만 그걸로 끝이면 퀜틴 블레이크라고 할 수 없다. 자가주의 부모가 펠리컨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당신이 여전히 인간일 줄 알았지? 아냐, 턱살이 축 늘어지고 깃털 듬성듬성 빠진 늙은 펠리컨이야.

그렇게 심술궂은 펀치를 날린 블레이크 경(그는 2013년 훈작 Knight Bachelor 서훈을 받았다. 그에게 딱 어울리는 작위다). 마지막 페이지는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한 쌍의 젊은 인간과 한 쌍의 늙은 펠리컨의 뒷모습에다 “인생은 정말 굉장하다니까요!”라는 감탄이 폭죽처럼 터지는 장면이다. 작가의 파안대소가 들리는 듯하다. 이렇게 명료하고도 유쾌하게 인간 일생의 본질과 핵심을 그려내다니, 퀜틴 블레이크는 정말 굉장하다.

기자명 김서정 (동화작가∙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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