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법 개정으로 생겨난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는 해기사(항해사와 기관사 등을 통칭해 부르는 말) 자격을 가진 이들이 상선이나 어선에 36개월 동안 승선하며 병역을 대신하는 대체 복무 제도다. 매해 1000명씩 선발하는 승선근무예비역은 병무청과 해양수산부가 유관기관(선박관리협회·선주협회·해운조합·원양협회·수협중앙회 등)으로부터 업체별 신청을 받아 배정 인원을 분배한다.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는 해운·수산회사로서는 젊은 해기사를 선발해 안정적으로 승선시킬 수 있는 구조다. 졸업과 함께 자격증(3급 해기사)을 얻는 해사고·해양대 학생들이 주로 승선근무예비역에 편입된다. 이들 학교도 ‘졸업하면 병역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학생을 모집한다.
배에 오르는 선원은 크게 해기사와 부원으로 나뉜다. 해기사는 국립해사고등학교, 국립해양대학교 등 국가가 지원해 양성하는 해상 엘리트다. 매년 신규 해기사가 배출되지만, 실제로 배를 타는 해기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승선 기간이 길고 일과 생활의 균형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그나마 1990년대까지는 지상직에 비해 임금이 많다는 유인 동기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임금 격차가 줄어들면서 업계 전반이 인력난을 호소한다.
해운·수산업계는 승선근무예비역 제도가 젊은이들이 해기사라는 직업을 선택할 유인 동기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통계는 오히려 승선근무예비역이 끝난 후, 해기사가 업계를 떠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2015년 말 현재를 기준으로 한 패널 조사에서, 그해(2015년) 해양대학교를 졸업한 이들은 84.3%가 배를 타고 있지만, 2006년에 졸업한 선배 해기사는 23.9%만 승선 중이었다. 본격적으로 승선근무예비역에 편입되기 시작한 2009년(2007년 개정 병역법의 시행 시점) 졸업생도 승선율은 37.1%에 불과하다. 아래 〈표〉에서 졸업 연차별 승선율은 2012년 졸업생부터 2010년 졸업생 구간에서 급격히 떨어진다. 승선근무예비역 복무 기간이 3년에서 5년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졸업생 다수가 승선근무예비역이 끝나면 배를 떠난다는 의미다. 승선근무예비역 도입 취지와 달리 장기적인 선원 양성에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단기 필요 노동력을 채워줄 뿐이다. 2016년 기준, 50대 이상 해기사는 총 1만3118명이다. 매해 1000명씩 유입되는 20대 노동력이 나머지 세대를 지탱하는 구조다. 허리가 모자란, 모래시계형 인력 구조다.
승선근무예비역이 업계를 떠받치다 보니, 일각에서는 배정 인원과 의무 복무 기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한다. 현재 승선근무예비역 배정 대상이 아닌 쌍끌이 어선, 여객선 업계도 승선근무예비역을 배정해달라고 요구하는 중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정치권에서는 여객선까지 승선근무예비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젊은 선원 부족 현상이 세월호 참사의 이유 중 하나라는 주장이다. 2014년 9월 황주홍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이 승선근무예비역의 내항여객선 배정을 주장했다. 2016년 12월에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승선근무예비역의 내항여객선 배정을 내용으로 하는 병역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조합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5월21일에 만난 전국선박관리선원노동조합 관계자는 “구민회씨의 자살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승선근무예비역 제도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조선·해운 전문지 〈로이드 리스트〉는 2017년 11월23일 한국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에 대한 기사를 내고, 승선근무예비역이 고용주에 의해 악용될 수 있으며 인권침해 사례가 간과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 사례를 살펴보더라도, 한국의 승선근무예비역과 유사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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