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가르치는 중국과 베트남의 관료 출신 유학생들은 과연 언제 남북한 사이에 평화가 정착되고 북한이 자신들을 따라올 것인지 궁금해한다.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것이라 대답하지만, 현실은 전쟁 위기까지 이야기되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남북 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발표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최근의 급속한 변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희망을 부풀어오르게 만들고 있다.
북한이 대결에서 협상으로 돌아선 내부적 요인은 역시 경제다. 이미 북한의 시장경제는 상당히 발전되었는데, 경제제재가 계속되어 경제가 악화되면 정권에 대한 지지도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현재 당국이 인정하는 종합시장만 480여 개, 전체 시장은 800여 개에 이른다.
북한은 2002년 이후 시장화를 촉진하다 2007년부터 노선을 바꾸어 시장을 억누르려 했지만, 2010년부터 다시 허용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집권 이후 ‘우리식 경제관리 방법’이라는 이름으로 농업과 공업 부문에 자율성을 높이는 개혁을 도입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북한의 가계소득 중 시장 활동과 관련된 비중이 70% 이상이고 무역의존도가 약 50%에 달하며, 최근 성장률의 약 70%가 시장과 무역에서 나온다.
그러나 핵실험으로 강화된 경제제재로 북한 경제는 점차 악화되었다. 특히 석탄 수출을 제한한 유엔 안보리 제재 2321호와 광물 수출을 금지한 2371호로 인해 지난해 북한의 대중국 수출이 37% 감소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인민들을 위한 자신의 능력이 모자라 안타깝다고 이야기했고, 올해 4월에는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 대신 경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 발표했다. 결국 경제 발전이 급선무인 김정은 위원장은 완성한 핵을 지렛대로 협상의 장에 나선 것이다.
비핵화를 통해 북한이 정상 국가가 된다면 북한은 중국과 같은 개혁·개방의 길에 나설 것이다. 이는 급속한 민영화와 시장 자유화를 통한 빅뱅식 이행이 아니라, 공산당의 지배하에 국가가 주도하는 점진적인 이행 전략이다. 주변 환경도 나쁘지 않다. 제재가 풀리면 경제특구를 중심으로 외국 자본의 투자가 확대되고, 국제기구를 통한 개발자금 지원도 추진될 것이다. 특히 북·일 수교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전후보상금이 유입되고 일본 기업의 진출이 이루어질 것이다. 한반도 신경제지도로 대표되는 남북 경제협력의 진전은 북한 경제에 도움이 되며, 개성공단과 같은 경험은 시장경제에 핵심적인 제도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러한 이행 과정에서 북한은 장기적으로 동아시아 경제발전 모델의 핵심을 배워 자신의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일본에서 시작되어 한국과 타이완이 성공했고, 동남아 그리고 중국과 베트남이 따르고 있는 이 모델의 핵심은 시장만을 강조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질서)’와 달리 국가와 시장을 효과적으로 결합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다.
“베트남의 발전 모델을 벤치마킹하겠다”
박정희 정부는 산업정책과 금융 지원을 통해 국내 산업을 육성하며 수출 성과를 통해 기업을 규율했고, 산업별 생산수준에서 자금 조달까지 명시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했다. 중국은 향진기업과 경제특구를 통한 시장경제 확대와 더불어 국유기업을 유지하는 국가자본주의 체제를 수립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또한 제조업 수출을 촉진하면서도 유치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은 억제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활용함과 동시에 규제를 부과했으며, 금융자본 투자는 통제했다. 이와 같은 동아시아의 국가 주도적 발전과 세계화 전략은 북한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과거 중국이나 베트남 관료들은 한국의 발전 모델을 자세히 학습했고, 2007년 김정일 위원장도 베트남의 발전 모델을 벤치마킹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 북한이 동아시아 경제발전의 막내가 되어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이 선순환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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