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흔들리고 무너질 때 사람은 좌절한다. 일상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자유다. 그 평범함이 무너지는 누군가의 삶을 접하는 순간마다 안타까운 절망을 경험하는 이들 또한 적지 않다. 특히 개인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외부적 상황에 의해 자기감정이나 존재성이 훼손되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될 경우 그 기억은 본능적으로 외면과 회피의 영역 속에 깊이 침잠해버린다. 심각한 두려움 탓에 자신의 존재 의미를 스스로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일상을 무너뜨린 원인 제공처가 범접할 수 없는 거대 권력일 때가 있다. 우리 현대사에 그 증거는 수도 없이 널려 있다. 피해 당사자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 부마항쟁, 1970 ~1980년대 간첩조작 사건 등 정권 침탈과 유지를 위해 과거 군부 정권을 비롯한 정치권력들이 시도하고 조작했던 인권유린의 실체를 기억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용기 있는 이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을 꾸준히 펼친 끝에 이제라도 조금씩 실체가 드러나는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임종진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체포되었던 피해자 7명이 강제 수감되었던 옛 국군광주통합병원 터에서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여러 차례 트라우마를 덜어내는 과정을 거친 뒤에야 되찾은 웃음이다. 왼쪽부터 서정열, 이행용, 박갑수, 이성전, 이무헌, 양동남, 곽희성씨.
거꾸로 된 역사를 바로세우려는 시도들이 일렁이는 근래의 틈을 비집고 나는 사진 심리상담 분야에서 하나의 역할을 찾고 있다. 진상 규명과는 별개로 이른바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무너진 자존감을 어떻게 스스로 일으키고 세울 것인가를 유념하면서 2013년부터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이어온 일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고문을 받거나 수감되었던 피해자들은 예외 없이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 그들은 1980년 5월 이후 지금까지 통째로 자신의 삶을 잃었다고 말한다. 단 한 번 주어진 자기의 생을 국가폭력에 의해 부정당하고 강제된 채 무너지고 사라져야 했던 사람들. 군홧발에 차이고 무릎이 꿇려지며 온갖 고문과 구타 속에서 몸과 정신을 잃어야 했던 바로 그들이다.

나는 대면의 특성을 지닌 사진 행위의 힘을 빌려 피해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감을 어루만지고 잃어버린 자기 정체성을 끌어올리는 시간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사진치유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그 시간은, 자기를 억제하고 침탈했던 기억의 공간들과 직접 마주하면서, 그리고 삶과 꿈을 품었던 ‘원존재’인 자신과 마주하면서 자기 삶에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었다.

기억 속에 잠식된 상처의 감정과 대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함께했던 동지들을 할퀴어댄 악귀와도 같았던 군홧발, 몸을 찌르고 갈랐던 핏빛 서린 눈동자와 다시 대면해야 했다.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 외에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던 무력함을 걷어내며 그 처절했던 기억 속으로 회귀하는 과정은 오히려 당시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되찾아오는 전환의 걸음이었으며, 부끄럽지 않은 자신을 확인함으로써 당당하게 다시 서게 되는 재저항의 시간이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의 심리 회복 기관인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요청으로 시작된 사진치유 프로그램은 만 4년 동안 진행되었고 한 기수에 예닐곱 명씩 두 차례 치렀다. 기수마다 2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릴 만큼 그 과정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행위 중심 사진치료’라는 내 사진치유 기법은 이성 중심인 서구의 사진치료와는 다소 달리 정서적 측면을 강조한 방식이다. 상담자의 주도가 아닌 피해 내담자 자신의 주도로 자기 내면을 살피는 방식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치유 과정 동안 크게 세 가지의 방식을 주된 기제로 활용했다.

첫 번째는 ‘상처와의 대면’이다. 기억의 감정 속에 내면화된 자기 상처의 근원적 상황과 대면하는 과정이다. 공간과 장소의 형태로 존재하는 불안의 실체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대면함으로써 성찰적 긍정성으로 스스로 다시 개념화하는 행위이다. 체포되어 구타를 당하거나 고문받던 순간 그리고 동료들이 죽거나 다치는 상황의 기억과 다시 마주하는 과정이었기에 그만큼 심정적인 고통이 동반된다. 이 행위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이행하면서 의식과 판단의 기준이 전환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두 번째는 ‘원존재와의 대면’이다. 불안 발생의 요인이 있기 전 원래의 자기 존재성과 대면하는 과정이다. 주변 사물과 공간 또는 사람과의 관계성 안에서 자기 존재 의미를 인지하게 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 특히 망각되어가는 자기 ‘내면 아이’와 대면하면서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도록 하는 행위인데, 자신의 가족이나 어릴 적 성장 과정에서 즐거운 순간들을 떠올리거나 아름다운 풍경이나 낚시·등산 같은 유희적 순간과 적극 교감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통해 생의 기쁨이나 성취감 등의 감정을 재취득하도록 한다.

세 번째는 ‘치유자의 시선’이다. 치유자가 프로그램 전반을 진행하며 피해자의 상처 또는 원존재와 대면한 순간들을 집중해 기록하는 과정이다. 참여자 개인의 존재성 부각을 목적으로 두고 치유 프로그램의 선도자가 아닌 보조자임을 지향하면서 참여자가 보이는 행위에 함께 동반하는 것인데, 피해자들이 보이는 대면 과정의 최대 정점 순간을 남기는 것에 주력한다. 이는 피해 당사자들의 쉽지 않은 치유 행위 과정을 증거함으로써 그들의 노고를 달래고 확신하게 하는 것에 목적을 둔다.

“아무리 지옥 같은 고문의 장소라 혀도 여러 번 찾아가 마주허니께 고통의 기억과 마주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을 알게 되었지라. 내가 카메라에 담는 것들은 바로 나 자신이고 내 감정이고 소망이고이~. 썩은 고목나무와 같은 내 모습일지라도, 내 이름 석 자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한번 해볼라고 허니께. 인자~(이성전씨).”

“36년간을 생각과 마음에서 지우고 살았던 고통의 기억과 대면한다는 게 처음에는 죽기보다 싫었지라. 분노가 일고 무섭고 떨렸지만 용기를 내어 그곳을 찾아 자꾸 바라보니께 점차적으로 마음이 안정되어가는 것을 느꼈구만요(서정열씨).”

프로그램을 마치고 소감을 남기는 피해자들의 전언이 귀를 울린다.

사진은 대면의 매개이자 도구

마음이 아픈 이의 곁을 지키는 것은 그리 가벼운 일은 아니다. 말을 건네야 할 때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때를 구분하는 것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 까닭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치유자인 나를 비롯한 외부의 개입 없이 피해자 스스로 자기 회복의 길을 터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슴에 한을 품은 이들을 위한 최선의 도움이라고 생각한다. 곁을 지켜주는 사람으로서 가만히 시선을 두고 귀를 기울여 아픈 이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시간이었다.

사실 완벽한 형태의 치유는 불가능하다. 고통의 기억은 사라지거나 없앨 수 있는 물성의 형태가 아니다. 그러나 고통의 기억을 꺼내는 용기로부터 시작해 재인식의 기회를 스스로 부여하는 행위에서 심적 상처의 일부나마 ‘덜어내기’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을 비롯해 국가폭력 피해자들 곁에 여전히 머물고픈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들에게 사진은 이미지가 아니라 대면의 매개이자 도구이다. 카메라라는 창문으로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고, 그 과정에 집중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자신의 삶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증거이자 절차적 행위이다. 또한 피해 당사자가 다른 이에게 기대지 않고 직접 자신의 힘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교감하고자 하는 적극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힘이 결국 그들 안에 있으며 아마도 그 행위를 조력하기 위한 곁지기로 나의 역할을 한 것으로 믿는다. 아직 할 일이 많다.

기자명 임종진 (사진치유 전문 ㈜공감아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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