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일본 오사카에서 대규모 박람회가 열렸습니다. 이 박람회에서는 오늘날 상상하기 어려운 전시가 진행됩니다. 박람회의 ‘학술 인류관’에서 타이완 원주민 2명, 아이누인 7명, 터키인 1명, 그리고 조선인 2명 등을 포함한 총 28명의 살아 있는 사람을 전시했습니다. 부스별로 다양한 지역의 거주 형태를 재현한 건물을 세웠고, 그 건물에서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전시를 보게 된 조선인은 모욕감을 느낍니다. 조선인들은 일본 정부에 항의했고, 일본 외무성은 조선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조선인 전시를 중단시킵니다.

당시 청일전쟁을 통해 타이완을 식민지로 거느리며 제국이 되는 야심을 품고 있던 일본과, 머지않아 식민지가 되는 조선 사이 힘의 불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살아 있는 인간을 전시하는 것은 제국주의 시대 서양 국가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던 방식입니다. 이러한 전시 뒤에는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하고, 진화의 정도에 따라 인종을 분류하던 세계관이 있습니다. 제국의 국민인 백인들은 더 진화된 사람으로, 식민지의 유색인종은 덜 진화된 인종으로 취급받았지요. 그 논리 속에서 ‘미개한 이들을 문명화’하기 위한 식민 지배가 정당화되었습니다.
 

ⓒEPA일본은 ‘중국인이나 조선인보다 우월하다’고 증명하기 위해 혈액형을 이용하여 인종계수를 측정했다.

인종주의 과학을 바라보던 일본의 속내는 복잡했습니다. 일본은 서구 열강의 논리를 마냥 수용할 수 없었습니다. 서구 제국주의 논리 속에서는 조선·일본·중국 모두 ‘부족한’ 유색인종이었으니까요. 당대 체질인류학에 따르면 일본인은 신장이 작고, 코는 낮고 폭이 넓었으며 대부분 쌍꺼풀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서양인의 눈에 일본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은 진화가 덜 된 인종이었습니다. 특히 몽고반점에 대한 기록은 그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원숭이는 몽고반점을 피부 전체에 걸쳐 가지고 있고 나이가 들어도 없어지지 않는다며, 일본인 대부분이 엉덩이에 몽고반점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여기서 일본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시기별로, 또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논리는 달라지지만, 일본제국주의가 가진 인종주의적 딜레마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왜 아시아 국가들을 하나의 나라로 묶어야 하나.’ ‘일본과 나머지 아시아 국가는 어떻게 다른가.’ 첫 번째 질문은 아시아 국가들을 하나의 제국으로 만들기 위해(특히 1940년 이후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함께 전쟁을 치르기 위해), 후자는 그 제국을 왜 일본이 통치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를 만들기 위해 던져집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일본의 입장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유색인종이 모든 면에서 열등하다는 서구 인종주의 과학의 비논리성을 지적해야 했습니다. 서양인들은 자신의 몸에 털이 많은 것을 두고 ‘인간의 털은 동물의 털과 다르다’는 식으로 일관성 없는 논리를 펴고 있다고 꼬집습니다. 아시아인 신체에 털이 많았다면 분명 진화가 덜 되었다고 해석했을 테니까요.
 

ⓒ눈빛출판사1939년 일제가 조선인들을 강제징용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진행하는 모습.

그와 동시에 인종마다 고유의 장단점이 있기에 서구 열강에 맞서 아시아의 국가도 하나로 묶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논리는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 속에서 더욱 강력하게 대두됩니다. 교토 제국대학 교수였던 기요노 겐지는 1944년 이렇게 말합니다. “대동아공영권 결성의 인종학적 설명의 근원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동아공영권에는 일본인 외에 지나·인도지나·적도제도·오스트레일리아·남태평양에 걸쳐 수백 종 혹은 그 이상의 다수 인종이 존재하며, 각 인종에는 각각의 장점이 있다. 이들 인종은 서로 관련하여 일환(一環)을 이루어 그 특장으로서 타 인종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그럼으로써 공존공영의 결실을 거두어야 한다.”

일본인이 ‘진화’한 인종이라 말하기 위해

그런데 이렇게 인종별로 장단점이 상호 보완된다면, 굳이 일본이 지배 계층이 될 이유가 없습니다. 일본 처지에서는 ‘우리가 중국인이나 조선인보다 우월하다’라는 논리가 있어야 하지요. 이 과정에서 체질인류학이 등장합니다. 키, 팔다리, 머리 등 신체의 각 부분을 계측하고 그 결과를 인종끼리 비교하는 작업입니다. 각종 연구 결과는 그 기대를 배반합니다. 키도, 호흡기관도, 비뇨생식기도 조선인이 일본인보다 더 크다고 나타났으니까요. 일본으로서는 조선인이 더 ‘진화’한 인종이라고 인정할 수 없으니, 다른 논리를 만들어냅니다. 문명이 미개해 정신적인 활동을 하지 않아서 신체가 과도하게 발달했다거나, 조선의 위생 상태가 열악해 약한 사람들이 어릴 적에 사망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이들은 신체 조건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식이지요. 일본인은 자신들의 인종적 우월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길이 절실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A형·B형·AB형·O형으로 나뉘는 혈액형은 1901년 오스트리아의 카를 란트슈타이너 박사가 처음 발견했습니다. 란트슈타이너 박사 덕분에 외과수술 시 발생하는 출혈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생겨났습니다. 혈액형에 대한 정보를 이용하면 부족한 피를 외부로부터 안전하게 수혈할 수 있었으니까요.
 

루드비크 히르슈펠트(왼쪽)는 A형을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더 진화한 인종이라고 주장했다. 백인제(오른쪽)는 조선인과 조선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혈액형을 조사했다.

이후 독일의 내과의사 에밀 폰 둥게른은 한 걸음 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동물의 혈액형을 조사해 당시 대다수 포유류는 B형이고, A형은 침팬지와 사람에서만 발견된다는 점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혈액형과 진화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둥게른은 그의 제자 루드비크 히르슈펠트와 함께 독일인 348명의 혈액형을 조사한 후 혈액형이 세대 간에 유전된다는 점을 보고합니다. 개인의 혈액형은 일생 동안 바뀌지 않으며 그것이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유전되고, 집단 수준에서는 혈액형 분포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현상이 관찰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독일의 국가주의적 사고와 맞물려, 민족의 피는 유전되는 것이고 보존되어야 한다는 사고로 이어집니다.

히르슈펠트는 ‘독일인의 피는 자신들이 지배하고자 하는 인종들과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합니다. 1918년 학술지 〈랜싯(Lancet)〉에 발표된 논문 〈상이한 인종들 사이 혈액의 혈청학적 차이(Serological difference between the blood of different races:the result of researches on Macedonian Front)〉가 바로 그 대답입니다. 히르슈펠트는 마케도니아 전장에서 16개 국가의 군인 8500명의 피를 뽑아 혈액형을 확인합니다. 그 혈액형 분포를 분석하여 ‘생화학적 인종계수(Biochemical Race Index)’라는 새로운 지표를 만들어냅니다.

이 지표는 둥게른의 연구를 기반으로 B형을 가진 사람에 비해 A형을 가진 사람이 더 진화한 형태라고 가정합니다. 이 계수의 분자는 ‘A형과 AB형을 가진 사람의 숫자’이고 분모는 ‘B형 또는 AB형을 가진 사람의 숫자’입니다. 이 지수가 높으면, 그러니까 A형을 가진 사람이 더 많으면 더 진화한 인종이라는 주장입니다. 히르슈펠트의 논문에 따르면 이 수치는 유럽 제국주의 국가에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납니다. 영국인은 4.5, 프랑스인은 3.2, 독일인은 2.8이었습니다. 식민지 유색인종인 베트남과 인도에서는 0.5였습니다.

오늘날 시각으로 바라보면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입니다. 적혈구는 혈액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세포이고, 혈액형은 그 적혈구에 붙어 있는 단백질의 종류에 따라 달라집니다. 당연하게도 그 단백질의 종류는 사회에서 ‘우월성’이라고 불리는 다른 어떤 형질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혈액형이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 정도를 나타낸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지요. 그러나 당시 혈액형의 분포와 인종의 우월성을 이야기하는 가설은 과학자들 사이에 널리 받아들여졌고, 히르슈펠트의 논문은 과학의 이름으로 당대 제국주의 권력이 원하던 백인 우월주의의 근거를 만들어줍니다.

이 연구는 일본에게 조선을 식민지로 통치할 ‘과학적’ 명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랜싯〉에 인종계수를 다룬 논문이 게재되고 고작 4년 뒤인 1922년, 경성의전 외과교실의 기리하라와 백인제는 조선인과 조선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혈액형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합니다. 전남(171명), 충북(112명), 경기(311명), 평북(354명)에 거주하는 조선인과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 502명의 혈액형을 확인했습니다. 그 결과 조선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1.78이고, 일본과 가까운 전남은 1.41, 일본과 가장 먼 평북은 0.83으로 나타납니다. 일본인이 가장 높은 인종계수를 가지고 있고, 일본과 지리적으로 멀어질수록 그 크기는 줄어들었습니다.

혈액형을 이용해 인종계수를 측정하는 일은 계속됩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한 사토 다케오는, 경성제대 법의학교실 교수라는 자신의 입지를 이용해 대규모 조사를 실시합니다. 조선 남부, 중부, 북부로 나눠서 각 지역별로 이동이 적은 사람들을 모아 측정을 합니다. 그 수가 무려 2만4026명에 달합니다. 1935년 발표된 이 결과는 13년 전 발표된 결과를 보다 엄밀히 확인해줍니다. 인종계수가 조선 남부는 1.25, 중부는 1.05, 북부는 0.99로 나왔습니다.

‘과학’의 이름 빌린 권력관계

일본 처지에서는 반가운 결과였습니다. 인종계수가 높을수록 진화한 인종이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 수치는 제국을 통치하는 주체로서 자신의 입지를 합리화할 논리가 됩니다. 조선 남부는 일본과 교류가 상대적으로 많았던 곳이기에 인종계수가 더 높다는 설명을 하게 되지요. 그래서 만주·몽골·조선·일본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함께 운영되는 공영권을 구축해야 한다는 논리를 만듭니다. 동시에 그중 진화의 정도를 나타내는 인종계수는 일본이 가장 높다는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특히 이러한 논리는 대동아공영권을 기치로 내걸며 서양 제국의 지배로부터 아시아가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일본의 정치적 견해에 부합합니다. 물론 실제로는 공존이 아니라, 조선을 포함한 식민지의 주요 자원과 노동력을 수탈하는 것이었지만요.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죠. 1903년 오사카 박람회에서 조선인을 전시했던 공간의 원래 이름은 ‘학술 인류관’이 아니었습니다. 본래는 ‘인류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있는 청나라 사람도 조선인과 함께 전시하기로 기획되었습니다. 전시 계획을 사전에 알게 된 청나라 측의 항의로 청나라인 전시를 포기하면서 동시에 전시관 이름 앞에 학술이라는 단어를 붙입니다. ‘학지(學知)’를 기치로 내걸은 것이지요. 다른 인종을 학대하거나 유린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한 과학적 탐구라고 주장합니다. 전시를 하는 사람이 누구이고 전시를 당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묻는 순간, 이는 과학의 이름을 빌렸을 뿐 당대의 권력관계를 반영한 현상일 뿐이라는 점이 명확해집니다. 생화학적 인종계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증적·정량적 측정이라는 점에서 과학의 외피를 둘렀지만, 연구의 결론은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 결론에 맞춰 통치 대상이던 ‘이웃집 원주민’ 조선인에 비해 일본인의 인종적 우월함을 보여주는 근거를 찾는 작업이었지요.

실제로 이러한 ‘과학적 근거’는 조선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경성의전 의학부를 전 학년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자, 조선인에 대한 차별에 반발해 1919년 3·1운동을 주도하고 10개월 옥살이를 했던 젊은 백인제조차 예외가 아니었으니까요. 경성의전에서 혈액형 조사 연구를 수행한 백인제는 일본인은 진화의 중간형이고, 조선인은 그보다 못하다는 말을 남깁니다(〈동아일보〉 1927년 7월21일자). 당대 최고의 수재 중 한 명이었던 그조차 ‘과학적 권위’에 굴복했던 것이지요.

과학은 인류가 찾아낸 가장 합리적인 사유 양식입니다. 사람들은 지식 생산 과정에 대한 신뢰 속에서 과학의 목소리에 권위를 부여합니다. 과학이 힘이 센 이유이지요. 그 때문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종종 과학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욕망을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과학은 과학 아닌 ‘다른 것’이 됩니다. 일본제국주의 지배 과정에서 생산된 인종주의 지식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도구였습니다.

* 참고문헌  
1. 김옥주. (2008). '경성제대 의학부의 체질인류학 연구'. 의사학, 17(2), 191-203.
2. 마쓰다 교코 (2013). '세기 전환기 식민지 표상과 인간전시-제국 '일본'의 박람회를 중심으로'. 역사와 문화 26호. 184-219
3. 서홍관, 신좌섭. (1999). '일본인종론과 조선인'. 의사학, 8(1), 69-79.
4. 박순영. (2006). '일제 식민주의와 조선인의 몸에 대한 "인류학적" 시선'. 비교문화연구, 12(2), 57-92.
5. 정준영. (2012). '피의 인종주의와 식민지의학'. 의사학, 21(3), 513-549.

 

기자명 김승섭(고려대 보건과학대학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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