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과 예술은 어찌 보면 호혜적이다. 예술가들은 참사에서 영감을 얻고, 그들의 작품은 피해자들을 위로한다. 4주기를 맞은 세월호 참사도 그렇다. 전국 각지에서 세월호를 소재로 한 예술작품이 나오고 문화행사가 열렸다. 형식과 내용은 천차만별이지만 ‘기억’이라는 목적은 같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에게 적대적이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이 상영되지 않도록 외압을 가하고, 세월호 시국선언을 한 인사들을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넣었다. 정권이 바뀐 뒤 맞은 첫 4월, 봇물 터지듯 나온 ‘세월호 예술’을 소개한다.

ⓒ극단 창세 제공연극 〈우리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관하여〉에서는 배우와 관객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 연극으로 만난 희생과 침묵

청바지와 흰 티를 맞춰 입은 학생 8명이 등장한다. 대화로 미루어보면 수학여행을 온 것처럼 보인다. 여행지에 간 여느 학생들처럼 ‘얼음땡’이나 ‘가위바위보’ 등을 하며 웃는다. 한바탕 놀이판이 끝나면 각자 좋아하는 음식이나 보고 싶은 사람 얘기를 나눈다. ‘디테일’이 살아 있다. 동전을 모아 분식집에 있는 ‘피카츄 돈가스’를 먹었다거나 뜨거운 순댓국에 혀가 뎄다는 말에 관객들의 웃음이 터졌다. 술 취한 아버지, 용돈을 달라고 조르는 동생 이야기에 어떤 이는 눈을 훔쳤다. 각자 뛰놀던 배우들은 불이 꺼진 뒤 빛이 새어나오는 문으로 퇴장한다. 5분 뒤 이들은 다시 들어와, 무대에 앉아서 20분간 관객들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연극 〈우리의 아름다웠던 날들에 관하여〉는 무대 안에 객석이 있다. 배우들은 관객들과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묻고, 주먹밥을 나눠주고, 플라스틱 공을 던졌다. 작은 상자를 나눠준 뒤 배우들이 무대 한쪽에 쌓는 것을 돕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배우들이 무대에 앉아 침묵을 지킨 20분이 극의 절정이었다(4월10일 공연에서는 무대 가운데에 앉은 어린이들이 배우들에게 플라스틱 공을 계속 던져 침묵이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 장면은 마치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학생들이, 시민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는 듯한 인상을 줬다. ‘희생자들’이 아니라 개별 인격체로서 학생들을 조망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부탁하는 연극이다.

4월12일 막을 내린 이 작품은 ‘세월호 4주기 416 가치 찾기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가 첫 작품이었다. 4월18일부터 22일까지는 연극 〈스프링 어드벤쳐 온라인〉, 뮤지컬 〈앤ANNE〉이 뒤를 잇는다. 안산 문화예술의전당에서 관람할 수 있다.

■ 달라진 4월 극장가의 풍경

배경은 섬이다. 머리를 풀어헤친 노인이 산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다. 섬에 온 망자들에게 떡을 빚어주는 게 노인의 일이다. 노인은 그들에게 “먼 길을 가야 할 테니 떡이나 먹고 가시게”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날 섬에 온 학생들과 선생님에게는 달랐다. 노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학생에게 ‘나이도 어린 것이 여긴 뭐 하러 왔느냐’고 묻는다. 학생 역시 ‘떡’을 요구하지만, 쌀을 빻는 절구와 절굿공이가 부서진다. 노인은 절규한다.

〈눈꺼풀〉은 쉽지 않은 영화다. 거의 모든 장면이 상징으로 가득하다. 노인은 누구인지, 섬은 어디인지, 클로즈업되는 벌레들은 어떤 존재인지 모두 불분명하다. 그러나 영화에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닫아버리는 중요한 장면이 하나 있다. 노인이 2014년 4월16일의 라디오 뉴스에서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는 모습이다.

〈지슬〉로 제주 4·3을 다뤘던 오멸 감독은 “영화가 ‘세월호 영화’ 외에 다른 의미로 해석되길 원치 않았다”라고 말했다(56쪽 상자 기사 참조). 이 틀에 기대어 보면 학생들과 선생님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이다. 노인이 학생에게 ‘왜 왔느냐’고 물은 것은 참사에 대한 애달픔 때문이다. 희생자들의 바람과 달리 노인은 절구가 깨져서 떡을 만들지 못한다. ‘떡 만들기’를 방해하는 존재가 쥐라는 사실은 MB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2014년 제작을 마쳤으나 4년이 지나서야 개봉할 수 있었다. 오 감독은 정권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제작 직후에는 세월호의 ‘세’자도 꺼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눈꺼풀〉과 같은 날 개봉한 〈그날, 바다〉 역시 세월호 참사를 다룬다. 이쪽은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다. 배우 정우성이 내레이션을 맡았다. 개봉 초반 예매율 수위권을 넘나들고 있다. 나란히 개봉한 두 영화는 달라진 4월 극장가의 풍경을 드러낸다.

ⓒ연합뉴스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지였던 제주도에서 전시 〈단원고의 별들, 기억과 만나다〉가 열린다.
■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가 쓴 편지

세월호 참사는 현재진행형이다. 사건 당사자인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가 아이들에게 쓴 편지를 책 〈그리운 너에게〉(후마니타스 펴냄)로 묶었다. 학생 110명의 이름을 목차로 삼고 실제 손편지가 삽화로 들어갔다. 편지의 정서는 읽는 이들에게 낯설지 않다. ‘일반적인’ 고등학생들의 삶과, ‘보통의’ 부모가 그들에게 품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더 처연하게 느껴진다.

생전 어떤 아이였는지 기록하려는 글이 많았다. ‘경찰이 되고 싶었던 아이, 엑소를 좋아하는 아이, 손재주가 많은 아이, 글씨를 예쁘게 쓰는 아이(백지숙).’ ‘여전히 인피니트 우현이의 팬이겠지? 엄마, 아빠가 노래 내려받아 달라고 부탁했더니 인피니트 노래를 모두 받아줬었지. 여전히 잘 듣고 있어. 엄마, 아빠는 우리 딸이 내려받아준 노래가 여전히 최신곡이야(편다인).’

살아 있었다면 어떤 일을 했을지 상상하는 글도 여럿 실렸다. ‘예쁜 아기들 낳으면 마당 있는 집에서 우리 딸이 그토록 키우고 싶어 하던 허스키도 키우고, 아기들 데리고 놀러 오면 고기도 구워 먹고, 최선을 다해 어릴 때 상처를 보상해주리라…(한세영).’ ‘지금은 키가 얼마나 컸을까, 지금은 어떤 옷을 가장 좋아할까, 새로운 핸드폰이 나오면 갖고 싶어 할 텐데, 좋아하던 자동차를 타고 직접 운전하고 가는 모습도 생각해보면 입가에 절로 웃음이 지어져(안주현).’

정부를 규탄하는 글도 적혔다. ‘명명백백하게 진상 규명을 해야만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아. 4·16재단 설립과 선체 직립, 선체 조사 제2기 특조위가 제대로 활동해 너희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했는지 앞으로 밝혀져야 한단다(임요한).’

책 말미 ‘추천하는 글’에서 시인 출신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렇게 썼다. “땅이 꺼지는 고통과 슬픔, 점점 커지기만 하는 그리움을 안고 사는 부모들이 한 글자, 한 글자 피와 눈물로 새긴 편지들을 따라 읽읍시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이미 그 유산을 남기는 역사의 현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 전국 누비는 ‘세월호’ 문화행사

수도권 바깥에서도 여러 문화행사가 진행된다. 단원고 학생들의 수학여행지 제주도에서는 4월18일까지 〈단원고의 별들, 기억과 만나다〉 전시회가 열린다. 도종환·안도현 등 시인 37명이 단원고 희생자 261명 각각에 대해 쓴 시를 선보인다. 세월호가 거치된 전남 목포에서는 화가 정태관의 〈화첩 그림전〉이 열린다. 수묵담채 기법으로 목포신항의 현장을 화첩에 담았다. 원작은 목포 ‘화가의 집 무인카페’에 있고, 유튜브·블로그·인스타그램 등 SNS에도 공개되어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인권사무소는 사진가 주용성의 〈소리 없는 밤, 짙은 어둠으로 남았다〉 전시를 열었다. 세월호 참사 뒤 팽목항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5월27일까지 부산인권전시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생존자 가족으로 이뤄진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4월18일 진주, 4월20일 경주 등 전국 여러 곳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4월7일 인천, 4월12일 광화문에서 공연한 ‘416합창단’ 역시 4월27일까지 각지를 누빈다. 상세한 일정은 4·16 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홈페이지(416family.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자명 이상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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