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업계’에서 흔한 전공은 아니다 보니 종종 주목을 받는 편이다. 마이너스가 되지는 않는다. 조직도 취재원도 내 전공을 듣고서는 비슷한 기대를 내비친다. ‘법을 배웠으니 더 잘 쓰지 않겠나.’ 그러나 스스로에게 정직해질수록, 이 추론이 법학 학사의 평균적 이미지에 기댔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전공 첫 수업에 들어간 지 10분 만에 법학이라는 분야에는 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상황을 바꾸려는 의지도 크지 않았다. 10년 입시에서 탈출했기에 어느 정도는 쉬어 마땅하다고 여겼다. ‘어느 정도’의 기준이 남들보다 많이 후했다는 건 아주 늦게 깨달았다. 수업은 친구들 말만 듣고 수강했다. 대체로 ‘출석 체크를 한다’ ‘쪽지 시험을 본다’ 따위가 기피 수업의 이유였다. ‘교수가 소수설만 판다’는 이유는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게 왜 나쁜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은 것 같아서 듣지 않았다. 당시 문제의 교수가 박상기 현 법무부 장관이다.
‘소수설’의 정체를 알게 된 건 11년이 지나서였다. 최근 미투 운동과 관련된 기사(〈시사IN〉 제548호 ‘성폭력 피해자 울리는 멀고 높은 법’ 기사 참조)를 쓰면서 형법을 새로 (혹은 처음) 공부하게 된 것이다. 수험서와 논문을 뒤적이다 우연히 박상기 교수의 연구를 접했다. ‘피해자의 진지한 거부 의사 표시가 있다면, 폭행·협박이 반항을 억압하거나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라도 강간죄에 해당한다’는 견해였다. 이러한 ‘최협의설 비판론’ 내지 ‘협의설’의 선구자 중 한 명이 박상기 교수였다. 조국 서울대 교수(현 민정수석), 한인섭 서울대 교수(현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 위원장) 정도만이 수십 년간 이 외로운 학설을 주창해왔다. 통설이 강간죄의 문턱을 높게 정하는 동안 어떤 판례들이 쏟아져 나왔는지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소수설 신봉자’들이 요직에 있다는 것은 정권에 희망을 걸 논거가 된다. 지난 10년간, 어쩌면 70년간 고위 관료가 된 연구자들은 대개 다수파에 속했다. 하지만 적폐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에 어울리는 동력은 소수설일 수밖에 없고, 저항 역시 필연이다. 바뀌어가는 세상을 관찰하자니 게을리 배운 대학 시절이 더 아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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