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기 고백부터 해본다. 나는 나라는 인간이 진짜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심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 취향에 대해 노력하고 쌓아온 것들에 대한 작은 자부심 정도는 지니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음악을 듣고, 영화를 봤으며, 만화책을 읽었다. 대중음악 쪽에서는 필수과목이라 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뭐랄까.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취향을 갈고닦기 위해 발버둥을 쳐온 셈이다.

여기서부터 중요하다. 나는 이 둘이 결코 양립 불가능하지 않으며, 도리어 양립 가능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이 두 극단 간의 거리가 곧 내 취향 설계의 동력이 되어준 까닭이다. 취향만이 아니다. 인생에서 진정한 동력은 하나의 극단만으로는 발생하지 않는다.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개 왜곡되었거나 건강하지 못하다. 생각해보자. 열등감에만 휩싸여 있다면 악플러가 되기 십상이다. 반대로 우월감에만 젖어 있으면? 속된 말로 재수 없는 인간이 되기 딱 좋다.

이 두 유형의 공통점. 그건 바로 타인의 취향에 ‘겐세이’를 놓는다는 거다. 젊은 시절 들었던 음악만이 최고라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어린 친구들의 취향에 시비를 건다. 이런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음악’을 챙기는 건 당연하다. 음악을 포함해 현재의 문화를 소화하려 노력하다 보면, 장담컨대 그것이 과거 못지않게 풍성하다는 걸 알 수밖에 없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모르더라도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게 부끄러운 거다.” 내가 아니고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한 말이다.

ⓒ김작가 제공‘현재의 음악’은 과거 못지않게 풍성하다.
아래는 라이브 클럽데이 모습.

희소식 하나 전해볼까. 음악가이자 물리학자인 존 파월의 저서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에 따르면, 인간은 ‘언제든지 새로운 장르를 포함하여 취향을 넓힐 수 있다’. 중요한 건 이 책에 서술되어 있는 기본형이다. 수많은 실험을 거친 결과, 우리 안에 내재된 음악 기본형은 4가지로 분류된다고 한다. 즉, 우리 각각은 최소 기본형 1개씩은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음악가이자 물리학자인 존 파월이 강조하는 말

당신이 새로운 음악을 접하게 되었다고 치자. 이 새로운 곡이 기본형에 들어맞을수록 당신은 그것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당연한 이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걱정 마시라. 당신의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인간의 뇌는 즐기는 음악의 복잡함에 대해 ‘적당한 수준’을 취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처음 들을 때는 생소하고 복잡하다 느끼는 음악도 몇 번 듣다 보면 친숙해져서 적당함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반대로, 너무 좋아서 자주 들었던 음악이 어느 순간 지루해지기도 한다. 음악이 기준점 아래로 뚝 떨어져버린 결과다.

조심스레 권장하고 싶다. 당신이 기본형을 더 많이 지닐수록, 당신은 더 다채로운 음악을 즐길 수가 있다. 존 파월이 강조했듯이 ‘처음에 마음에 들지 않은 곡도 몇 번 참고 들으면 새로운 기본형이 뿌리를 내려 틀림없이 보상을 안겨줄 것이다. 평생 누릴 수 있는 음악의 즐거움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결코 타인의 취향에 ‘겐세이’ 놓지 않는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웃음 주는 것도 모자라 글에 영감까지 제공한 이은재 의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오랜만에 당구 한판 치고 싶다.

기자명 배순탁 (음악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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