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채용 비리를 수사한 안미현 검사가 받은 수사 외압의 구체적인 실체가 〈시사IN〉 취재 결과 확인됐다. 안 검사는 채용 비리 사건의 핵심 실체를 보여주는 대포폰(차명 전화) 속 증거를 증거 목록에서 빼라는 요구를 검찰 윗선으로부터 받았다. 대포폰 속 녹음된 통화에는 ‘수사 상황을 챙겨봐줄 사람’으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이 거론된다. 또 안 검사는 권성동 의원을 소환 조사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지만, 검찰 윗선은 오히려 ‘권성동 의원이 취업 청탁을 했다는 증거가 없다’라는 내용을 쓰라고 요구했다. 수사 결과와 반대되는 보고서를 쓰도록 외압을 행사한 것이다. 안 검사는 2017년 2월부터 강원랜드 채용 비리의 수사를 맡았으나 지난 1월 말 배제됐다. 이후 안 검사는 수사 외압 사실을 폭로했고, 권 의원은 안 검사를 고소했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는 1·2차로 나뉜다. 2016년 시작한 1차 수사를 1년 뒤인 2017년 2월 안 검사가 넘겨받았다. 안 검사 측에 따르면, 전임 검사가 인수인계를 하며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 초안과 최종원 당시 춘천지검장(현 서울남부지검장)의 보완수사 지시 사항을 알렸다. 

그런데 두 달 뒤 안 검사는 갑작스레 사건 종결 지시를 받았다. 지난해 4월17일, 당시 최 지검장이 사건처리 예정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구속과 불구속 양쪽 의견을 모두 제출하라고 했다. 4월18일 최 지검장이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을 만났는데, 바로 다음 날인 4월19일 최 지검장은 불구속으로 사건을 처리하라고 안 검사에게 지시했다. 최흥집 전 사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시사IN〉 취재를 종합하면, 1차 수사 과정에서 수사팀은 피의자인 최흥집 전 사장의 대포폰(차명 전화)을 압수수색했다. 이 대포폰이 ‘스모킹 건’이었다. 최 전 사장이 대포폰으로 채용 비리의 핵심 주범으로 지목되는 최 아무개씨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수사 상황을 확인했다. 통화에는 “사장님, 권 의원과 통화해보셨어요?(최○○)” “권 의원하고 내 상황을 이야기했다(최흥집)” “어저께요? 뭐라던가요?(최○○)” “(검찰) 조사받고 왔고 지금 어찌될지 모르겠는데 좀 챙겨봐야겠다고 하니 알겠다고 하더라(최흥집)”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최 전 사장은 바로 이 대포폰으로 권성동 의원과 10여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권 의원실 보좌관, 당시 고검장 등과도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다. 안 검사는 이를 근거로 권성동 의원을 소환 조사할 작정이었다.

ⓒ연합뉴스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채용 부정청탁 관련해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된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

최 전 사장과 통화한, 채용 비리의 주범으로 지목된 최 아무개씨는 이미 해외로 출국한 뒤였다. 최씨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마저 대검에서 반려됐다. 수사를 더 진행하려 했지만 윗선에 의해 번번이 막혔다. 스모킹 건에 해당하는 이 부분이 법정에서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 수뇌부가 증거 삭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검과 춘천지검 등은 “최흥집 전 사장의 변호인과 재판부 쪽에서 공소사실과 관계없는 증거나 수사기관의 판단이 기재된 수사 보고서 등을 정리해달라는 요구가 있어서 수사팀이 어떻게 할지를 두고 논의가 있었다”라고 해명했다.

강원랜드 채용 비리는 2016년 첫 수사 시작부터 말이 많았다. 그해 2월 강원랜드의 수사 의뢰로 시작되었지만 1년 넘게 수사가 진척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인 2017년 4월에야 춘천지검은 최흥집 전 사장 등을 불구속 기소(1차 수사)했다. 그때도 인사 청탁자로 지목된 권성동 의원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1차 수사는 채용 비리 규모만 보더라도 부실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강원랜드는 2013년 두 번에 걸쳐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교육생 518명을 뽑았다. 이 중 493명(95%)이 ‘청탁’으로 합격했다. 평균 연봉이 7000만원에 달하는 공공기관에 합격하기 위해 거의 모두 ‘백’을 동원한 것이다. 강원랜드가 자체 조사해 작성한 ‘수사 의뢰서’를 보면, 2013년 1·2차 교육생 선발 당시 서류 조작은 물론이고 총 2800만원을 들여 실시한 인·적성 직무능력 검사 또한 처음 계획과 달리 참고 자료로만 사용했다. 집단토론 면접도 선발 절차에서 빼버렸다. 이런 단계별 꼼수로 취업 청탁자는 처음 계획한 인원보다 91명이 더 선발됐다.

정원 초과 선발이 채용 비리 드러난 계기

정원 초과 선발은 강원랜드 채용 비리의 전모가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감당할 수 없는 인원을 뽑아 경영 문제가 일어났고, 결국 강원랜드는 교육생을 선발하며 약속했던 전체 정규직 전환에 애를 먹었다. 일단 인턴으로 근무하던 이들 중 244명을 계약 종료하자 반발을 샀다. 탈락이 예정된 교육생들이 “선발 과정에 비리가 있었고 정당하게 들어온 사람은 정규직으로 전환되지 못했다”라고 강원랜드와 감독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진정을 넣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강원랜드에 감사를 지시했고, 그 결과 소문으로만 돌던 대규모 채용 비리가 드러났다. 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2013년 강원랜드 인사팀 내부 문건을 보면 지원자 이름과 청탁자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다. 주로 강원도에 지역구를 둔 정치인이나 지역 유력 인사들의 이름과 직책이 함께 기재되어 있었다(18쪽 사진 참조). 강원랜드 인사의 가족 및 친인척 심지어는 자녀 친구라는 ‘스펙’도 있었다. 강원랜드 인사팀 내부 문건에는 권성동 의원이 10차례 넘게 등장한다. 이훈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인사팀이 당시 최흥집 사장에게 청탁 관련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내부 문건이다”라고 설명했다.  

2013년 뽑힌 교육생 외에도 채용 비리는 또 있었다. 권성동 의원실 5급 비서관이었던 김○○씨의 강원랜드 경력직 부정 입사다. 지난해 감사원의 특정감사로 김씨의 부정 입사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8월 나온 감사원의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흥집 전 사장은 아예 “김○○이 경력직 채용 모집에 지원하니 김○○이 합격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라” “김○○이 문제없이 채용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업무 처리를 잘하라”라는 등의 지시를 내렸다.

강원랜드 실무진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먼저 예정에 없던 경력직 공채가 생겼다. 원래는 ‘워터월드 수질·환경 분야 전문가 채용모집 공고’가 날 예정이었다. 경력직이라 지원 자격은 환경 분야 실무 경력 5년 이상이 필요했다. 환경 쪽 실무 경험이 없는 김씨는 지원 자격조차 없었다.

ⓒ시사IN 신선영이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2013년 강원랜드 인사팀 내부 문건을 보면 지원자 이름과 청탁자 이름이 나란히 쓰여 있다.

하지만 김씨가 지원할 수 있도록 안전 분야 경력까지 포함시켰다. 건설기술자 경력이 4년3개월인 김씨는 지원 자격(5년 이상)이 안 되었지만 문제 삼지 않았다. 강원랜드는 직무 경력 5년 이상을 보유했다고 판단하고 만점을 주었다. 김씨는 서류 전형부터 1등이었다. 모두 33명이 지원한 경력직 채용에서 김씨만 뽑혔다. 나머지는 들러리였던 셈이다. 

감사원 특정감사가 들어가자 최흥집 전 사장은 “김○○의 부탁을 받고, 강원랜드 특별법 기한 연장과 카지노 확충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 등으로 김○○을 뽑기로 했다”라고 주장했다. 감사원은 정상적인 업무 처리가 아니라며 “강원랜드 채용 공고 등에서 정한 자격 요건에 미달하는데도 특정인(김○○)을 채용하기 위해 합리적인 사유 없이 채용 절차를 추진했다”라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7월 이 사건을 검찰에 넘겼다. 당시 최 전 사장은 1차 수사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을 때였다. 감사원의 조치로 춘천지검은 2차 수사에 들어갔다. 안미현 검사는 2차 수사에 박차를 가했다. 안 검사는 지난해 11월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던 최 전 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이 영장을 발부했다. 연이어 안 검사는 지난해 12월8일 권성동 의원에 대한 소환 조사가 필요하다는 보고서(1차 보고서)를 상부에 올렸다.

권성동 의원 소환 조사가 필요한 5가지 이유

〈시사IN〉 취재에 따르면, 12월8일 1차 보고서에서 안 검사는 다섯 가지 이유를 들며 권성동 의원 소환 조사의 필요성을 보고했다. △강원랜드 청탁 명단에 ‘국회의원 권성동’이라고 쓰여 있고 △권성동 의원의 5급 비서관 김○○씨가 권 의원에게 강원랜드 채용을 부탁하는 편지를 작성했으며 △김○○씨가 이직을 하며 권 의원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보기 힘들고 △최흥집 전 사장과 권성동 의원은 동향 사람으로 상당한 친분 관계가 있으며 △당시 최 전 사장은 강원도지사를 준비했고 권 의원은 강원도 국회의원이었기에, 권성동 의원의 관련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내용이다. 안 검사는 권 의원을 소환 조사하지 않을 경우 부실 수사라는 여론의 비판을 살 가능성이 짙다는 내용도 적었다. 게다가 김○○씨의 컴퓨터에서 이직과 관련해 권성동 의원에게 쓴 편지 등이 발견된 점도 소환이 필요한 이유라고 판단했다. 김○○씨는 해당 편지를 권 의원에게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제동이 걸렸다. 안 검사는 이영주 현 춘천지검장에게 질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윗선의 압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까지 조사 결과 권성동 의원은 실제 청탁했다고 볼 증거가 없고,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보고서를 올리라는 지시를 받았다. 안 검사는 자신이 처음 썼던 1차 보고서와 다른 내용이 담긴 ‘2차 보고서’를 닷새 후 새로 써서 올렸다.

또 안 검사는,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의 스모킹 건인 최흥집 전 사장의 대포폰 통화 목록과 통화 내용 등도 증거 목록에서 빼라는 압력을 계속 받았다. 안 검사는 이를 거부했다. 안 검사는 “권성동 의원으로 가는 수사는 번번이 길목이 막혔다. 도저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안 검사는 강원랜드 수사에서 배제되었다. 지난 1월30일 안 검사는 검찰 내부 메신저에 이렇게 남겼다. “저는 도저히 판사가 요청한 김○○에 대한 부분 그리고 피고인별로 증거 목록이 제출되어야 한다는 부분 외에는 어느 것을 빼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것을 빼야 한다면 그것을 빼야 한다고 마음먹으신 분들이 하셔야 된다고 봅니다.”

이에 대해 권성동 의원은 2월7일 안 검사를 통신비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했다. 권 의원은 “안 검사가 무책임한 폭로로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했다. 수사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여러 경로를 통해 항의가 있었고, 나와 관련한 증거 목록 삭제를 요구하였으며, 부장검사가 ‘대검에서 곤란해한다’ ‘권성동이 불편해한다’라고 언급했다는 내용도 허위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기자명 주진우·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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