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극장
노명우 지음, 사계절 펴냄

“어느 시대를 사는 사람이나 부모가 물려준 유산과 씨름해야 한다.”

학교에서 1980년 광주항쟁과 1987년 민주화운동을 배운 날이면 나는 엄마에게 기대에 차서 묻곤 했다. “엄마는 그때 뭐 했어?” 엄마도 당연히 ‘역사’의 한자리, 적어도 한 귀퉁이쯤은 차지하고 있었을 거라고 기대했다. “그런 거 잘 몰라. 미싱이나 돌리고 있었던 나 같은 사람이 뭘 아니.”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물론 이제는 안다. ‘그저 그런’ 인생을 살아왔던 엄마의 삶이야말로 내가 가장 이해해야 할 역사임을.
사회학자 노명우는 이번 책에서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아버지를 대신해 자서전을 쓴다.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은 부모의 삶을 복원하기 위해 저자는 당시 대중영화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부모를 이해하기 위해 분투한 자리마다 기록되지 않았던 한국 현대사의 지근거리가 읽힌다.


지구의 절반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지구의 절반을 생명에게 양보하라.”

어린 시절 “땅·불·바람·물·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캡틴 플래닛”이 나타나던 만화영화를 보며 환경오염의 심각성과 지구의 소중함을 깨쳤다. 이제 캡틴 플래닛을 대신해 저자가 ‘여섯 번째 대멸종’이 임박했다고 경고한다. 앞선 다섯 번의 멸종과 달리, 인간 때문에 빚어진 재앙인데도 문제의식조차 갖지 않은 사람을 비판한다. 저자가 보기에 주어진 단 하나의 대안은 생물 다양성이다. 다른 종과 공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지구의 절반을 인간 이외 생물에게 할애하자는 제안을 내놓는다. 인류를 위한, 인류에 의한, 인류만의 지구라는 개념은 허상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지구의 정복자〉 〈인간의 존재의 의미〉에 이은 ‘인류세(人類世) 3부작’ 마지막 편이다.


거의 모든 재난에서 살아남는 법
성상원·전명윤 지음, 따비 펴냄

“안전이란 결코 영원할 수 없는 상태다.”

아웃도어 활동을 많이 해서 재난 대비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 〈최악의 상황에서 살아남는 법〉 등 다양한 재난 대피서가 출간되었는데 나오는 족족 사 모았다. 재난 대비 마니아의 눈으로 볼 때 이 책은 재난 대비계의 ‘아이돌’이다.
왜? 아웃도어 활동은 경험치의 세계다. 머리로 배우는 것보다 몸으로 배우는 게 훨씬 많다. 저자는 누구보다도 많이, ‘해보고 싶었던 경험을 했고, 절대로 당하고 싶지 않은 사고를 당해’ 보았다. 항공기 사고, 화산 폭발, 열차 폭탄 테러, 버스 전복 사고 등 경험을 통한 저자의 깨침은 절실했다.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관심을 끌어모은 뒤, 전문가들의 검수를 받아 과학적 근거를 보강한 대비책을 설명한다.


#성 소수자_LGBT(Q)
강병철·백조연·이주원· 오승재·효록 지음, 알마 펴냄

“나와 내 사랑을 부정하지 않는 세상,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삶.”

세 살 아이는 트랜스젠더일 수 있다. ‘성적 지향’이 아닌 ‘성적 정체성’은 세 살 전후로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는 동성애자 아니야?”라고 질문한다면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강병철 소아과 전문의가 정리해둔 젠더 용어집부터 읽길 권한다. 우리가 얼마나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다. 다양한 개념을 알고 나면 존재를 인정하기가 쉽다. 동성애를 두고 찬반을 묻는 질문이 나오고,
성 소수자 특집을 내보낸 방송 프로그램이 조기 종영하는 사회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무엇일까? 〈#혐오_주의〉 이후 두 번째 해시태그 시리즈인 이 책은 저자 5명이 각자의 전문 지식과 경험으로 성 소수자에 대한 시야를 확장시켜준다.


조난자들
주승현 지음, 생각의힘 펴냄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잠재적인 조난자의 운명을 배면에 깔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에서 심리전 방송요원으로 복무했던 저자는 스물두 살, 비무장지대를 가로지르는 죽음의 노정을 거쳐 남한에 귀순했다.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조난자라고 정의한다. 한반도의 분단체제 아래서 수많은 이들이 길을 잃고 조난자가 되었다.
그의 자전적 에세이를 읽고 있노라면 이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경험할 수 없는 낯선 한국의 풍경도 보인다. 남측의 심리전 방송을 통해 희망을 가지고 휴전선을 넘었지만 말처럼 달콤하지 않았다. 탈북민이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데다, 귀순자는 탈북민 사회에서조차 주변부로 밀려났다. 대학에 가야겠다 결심했고 귀순 10년 만에 통일학 박사가 된다. 통일을 이루지 않고서는 모두 잠재적으로 조난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한다.


세계철학사 1·2
이정우 지음, 길 펴냄

“네 영혼을 돌보라.”

한국 철학자의 손으로 쓴 최초의 세계철학사가 나왔다. 그동안 시중에 출간되어 읽힌 세계 철학사들은 사실상 ‘서구 철학사’였다. ‘그리스 사유의 재발견’을 근대화의 추동력으로 삼아 지구를 지배해온 서구인들에게, ‘다른 세계(아시아)’의 철학 전통은 ‘그리스 이전’일 뿐 독자적 가치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자 이정우는 3부작으로 구상한 〈세계철학사〉의 1권을 ‘지중해 세계의 철학’에, 2권을 ‘아시아 세계의 철학’에 할애하는 방법으로, 아시아의 독자적 철학 전통을 명확히 했다. 근대 이후를 다루는 3권(미출간)에서는 양 지역을 구분하지 않고 함께 서술할 것이다. 출판사 측은 “객관성과 보편성에 한발 더 가까이 간 진정한 철학사”라고 이 책을 소개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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