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아버지에게 폭행당한 아이는 뇌병변 1급 장애를 입었다. 생후 4개월이었다. 강원도 동해시에 사는 이 아무개씨는 2014년 1월부터 4개월간 젖먹이 딸을 지속적으로 학대했다. 손톱으로 아이 얼굴을 긁고 멍이 들 만큼 배를 꼬집고 아이 머리를 벽에 부딪치다가 급기야 아이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머리뼈가 골절되고 뇌가 상했다. 혐의를 부인하는 남편을 처벌하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엄마 이 아무개씨는 백방으로 뛰었다. 가해자 이씨는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4년이 지난 지금 아이 엄마 이씨는 아직 울고 있다. 아니 4년 내내 울어왔다. 자기 아들 석방을 위해 탄원서를 써주지 않으면 양육비를 10원도 주지 않을 거라고 볶아대는 시집 식구를 피해 두 아이를 데리고 살던 곳을 떠나야 했다. 아이는 일주일에 다섯 번 재활치료가 필요한데 치료비와 생활비를 벌 방도가 없었다. 주민센터에 가서 기초생활수급자를 신청하니 “당신도 근로능력이 있고 (가정법원에서 이혼 조정 중이던) 남편도 있지 않느냐”라며 거부당했다. 수사를 미적대는 경찰·검찰과 싸우다시피 하며 겨우 교도소로 보낸 가해자(전남편)는 내년이면 형기를 마친다. 엄마 이씨는 가해자가 출소하면 자신과 아이에게 해코지할까 봐 매일 전전긍긍하며 거주지가 드러나지 않게 살고 있다.

ⓒ연합뉴스2016년 11월14일 서울 중구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앞 광장에 설치된 학대 피해 아동 이미지 위에서 시민들이 아동 학대 예방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한 해 1만8700건(2016년 기준), 그 많은 아동 학대 피해자와 가족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동 학대 ‘사건’에 대한 언론과 대중의 공분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 피해자의 삶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체계가 그 자리를 채웠을까? 동해시 친부 아동 학대 사건의 피해자 엄마 이씨는 지난해 10월13일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말했다. “아동 학대 사건에 요새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이후의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습니다.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어제오늘 겪은 일 같고 너무너무 생생하게 이 지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 이런 곳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와 저는 너무너무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살아남은 아동 학대 피해자들은 그야말로 ‘각자도생’하고 있다. 2013년 5월 아이 돌보미에게 수차례 머리를 맞아 뇌손상을 입은 서연이(당시 17개월)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머리뼈를 떼어내 냉동 보관했다가 다시 넣는 대수술을 받으며 사경을 헤매고 있었지만 당시 경찰 조사는 제대로 진행조차 되지 않았다. 엄마 서혜정씨가 직접 인터넷 ‘다음 아고라’에 청원 글을 올리고 나서 겨우 공론화되고 수사가 본격화됐다. 당시 가해자 수사를 촉구하는 서씨의 요구에 경찰이 돌려준 말은 “애가 죽은 것도 아니지 않으냐”였다.

아이 치료·재활, 2차 피해 방지 모두 소홀해

미진한 경찰·검찰 수사는 빙산의 일각이었다. 재판, 아이 치료·재활, 2차 피해 방지 등 이후 이어진 모든 과정에서 서씨는 거의 아무런 법적·경제적·의료적·심리적 지원도 받지 못했다. 아동 학대 피해자도 재판 과정에서 국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이라는 것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알음알음 다른 곳에서 정보를 얻었다. 신청하려 하니 경찰·검찰 담당자는 “아 그거 신청하시게요?”라며 요건이나 필수 서류를 갖춰오라고 까칠하게 대했다(원래 아동 학대 등 범죄 피해자 지원제도 고지는 안내가 의무화되어 있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치료비로 건네준 200만원이 서연이가 나라에서 받은 지원의 전부였다.

ⓒ연합뉴스2016년 3월29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아동 학대 방지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으니 결국 나서는 사람은 직접 아동 학대 피해를 겪은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다. 서씨는 학대 후유증이 남은 아이 치료·양육과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아동학대피해가족협의회라는 민간단체를 꾸렸다. 자신이 겪은 답답함이 너무 커서 다른 피해자 가족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아동 학대 피해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도 적지만, 있다 한들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몇 가지 지원제도를 알려주고 법적 조언을 해줬을 뿐인데 ‘언니를 안 만났으면 난 지금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어쩌면 막막해서 다른 마음을 먹었을 수도 있어’라고 우는 아동 학대 피해자 엄마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

여기까지도 그나마 돌봐줄 보호자가 있는 학대 피해 아동들의 이야기다.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학대를 받은 아이의 경우, 아이의 상황을 대변해줄 목소리조차 없다. 가해자(부모)와 격리된 아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전국 58곳에 불과한 학대피해아동쉼터 정도다(2018년 2월2일 기준). 쉼터당 정원은 7명 이내, 전체를 합해도 381명밖에 되지 않는다. 입소해도 2~3개월 이상 머물기가 힘들고 쉼터에서 이들을 돌봐주는 사회복지사 수도 늘 모자란다. 일반 아동보호 시설은 학대 피해 아동을 받기 꺼려해 쉼터를 나온 뒤 갈 곳도 마땅치 않다. 아동 학대 사건을 많이 맡아온 한 변호사는 “피해 아동이 하도 갈 곳이 없어서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이 임시로 자기 집에 데리고 있거나 담당 국선 변호사가 입양을 생각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아동 학대 예방과 처벌뿐 아니라 피해 아동에 대한 사후 지원도 국가의 의무다. 아동복지법 제22조 4항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학대 피해 아동의 보호와 치료 및 피해 아동의 가정에 대한 지원’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각 기초자치단체에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최소 하나씩 두고,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발견하면 아동보호 전담 공무원에게 그 보호자에 대한 상담·지도를 수행케 하며, 아동 학대 등으로 특수한 치료가 필요한 아동은 전문 치료기관에 입원시켜야 한다는 내용도 법에 명시돼 있다.

ⓒ시사IN 신선영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중앙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황판에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학대피해아동쉼터 현황이 적혀 있다.
“국선 변호사가 입양을 생각하기도”

모두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이다. 기초자치단체 수는 253개인데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수는 60개에 불과하다. 아동보호 전담 공무원도 없는 지자체가 부지기수이고 아동 학대 전문 치료기관이라는 데가 있지도 않다. 아동 학대 실태조사 또한 법에 규정된 국가의 의무이지만 기본적인 사례 건수만 집계할 뿐 국가가 나서서 아동 학대 사건의 전말과 그에 따른 제도 개선책을 제대로 조사한 적도 없다. 전 국민을 경악하게 한 울주군 서현이 사건과 대구·포천 입양아 사건에 대해 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지만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아동보호 민간단체, 변호사 등 정부 밖에서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위원회를 꾸린 결과이다.

왜 아동 학대 사후 지원에 관한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을까. 예산이 없기 때문이다. 끔찍한 아동 학대 사망 사건이 잇따르던 2014년과 2016년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아동 학대 방지 종합대책을 내놓았다. 생애주기별 부모교육, 정부 합동 발굴 시스템 구축, 현장 대응 인프라 구축, 재학대 방지 사후 관리, 가족 기능 회복 지원 등 동원할 수 있는 대책 수십 가지가 제시되고 전체 대책 추진 일정표까지 발표됐다. 하지만 딱 하나 빠진 것이 있었다. 바로 ‘예산 확보 방안’이다. 어디에서 어떤 예산을 확보해 그 대책을 실행할지에 대한 내용은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았다.

현재 아동 학대 예방과 사후 관리에 배정돼 있다고 알려진 예산액은 올해 245억원 정도. 지난해 266억원에서 21억원 줄어든 액수다. 이 돈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구성된 일반회계 예산이 아니다. 범죄자들이 낸 벌금으로 조성하는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 판매 사업으로 거둬들인 복권기금이 아동 학대 관련 예산 재원의 전부이다. 올해 일반회계에서 배정된 아동 학대 관련 예산은 ‘아동 학대 인식개선 홍보사업비’ 11억원뿐이다. 실질적인 정책 효과를 낼 만한 금액이 아니다. 사실상 아동 학대 정책에는 국민 세금을 쓰지 않는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게다가 두 기금은 아동 학대 관련해서만 쓰이는 게 아니다. 범죄피해자보호기금은 성폭력·가정폭력 등 모든 범죄 피해자와, 복권기금은 한부모 가정·입양 아동·소외 청소년 등 여러 취약계층 복지 사업과 함께 나눠 써야 한다. 경기 상황에 따라 두 기금의 목표액을 채우지 못할 때도 허다하다. 불안정하고 한정된 돈을 놓고 아동 학대 피해자들이 다른 어려운 형편의 소외계층과 다퉈야 하는 꼴이다.

예산 확보가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아동 학대 관련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담당하지만 그것을 실행할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을 쥐고 있는 곳은 각각 법무부와 기획재정부다. 보건복지부가 아무리 아동 학대 예방·관리 정책에 의욕이 높다 한들 지갑을 들고 있는 다른 부처에 매번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돈을 타내야 하는 처지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의 김봉겸 보좌관은 “지금의 예산 구조로는 아무리 법이 잘 갖춰져 있고 좋은 대책을 강구한다 한들 그것이 제대로 실행되지 못한다. 아동 학대 관련 예산을 보건복지부 일반회계로 전환해 정책을 실행하는 주체가 예산에 대한 권한도 가지도록 바뀌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예산 부족을 온몸으로 견디는 곳은 아동 학대 사건 현장의 최전선에 선 각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들이다. 아동복지법상 규정된 최소 필요 수의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253곳이 필요한데 현재까지 60곳이 설치됨) 전국 637명의 상담원들이 1만8000여 건(2016년 기준)의 아동 학대 사례를 관리하고 있다. 학대 사건이 발생해 가정으로 현장 방문을 가고 있으면 또 다른 현장에서 호출이 온다. 한 사람이 관리해야 하는 지역 면적도 너무 넓어서 아이 한 명을 만나러 한나절 이동해야 할 때도 허다하다.

당연히 아동 학대 피해자들에 대한 사후 관리가 미흡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한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일했던 상담원은 “매번 가정을 방문할 여유가 없으니 그 지역을 순찰하는 경찰에게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사이렌을 한 번씩 울려달라고 부탁해서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식으로나마 사후 관리를 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강원도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은 자신이 10년 전 부모에게 아동 학대 피해를 입어 보호시설에 보낸 한 아동이 최근 범죄자가 돼 소년원에 입소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가해 부모와 격리시킨 아이들이 보호소 등에서 사후 돌봄을 잘 받지 못해 엇나가는 경우를 보면 ‘차라리 한두 대 맞고 살더라도 부모에게 돌려보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생각할 정도로 직업적 딜레마를 느낀다. 아동 학대 사건을 발견하고 처벌하는 것 못지않게 학대 피해 아동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성인이 되도록 국가가 충분히 뒷받침해주는 것이 필요한데 지금은 겨우 생존 정도만 지원해주는 수준이다.”

지난해 5월5일 어린이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발표한 ‘미래의 희망, 어린이를 위한 나라’ 공약에는 아동 학대 관련 정책도 들어 있었다. 어린이 안전보장 구축을 위해 정부에 전담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 학대 전문 상담원을 대폭 확대하며 전문성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8일에도 고준희양 사망 사건을 언급하면서 “아동 학대 대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달라”고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에게 주문했다. 하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의 처우개선비는 올해도 동결됐다. 경력·전문성과 상관없이 일괄 2700여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트라우마가 극심한 사건들에 매일 노출되는 상담원들이 올해 들어 사표를 많이 내고 있다.

5년 전 돌보미에 의한 아동 학대로 한쪽 눈 시력을 잃고 한쪽 다리가 불편해진 서연이의 엄마 서혜정씨(아동학대피해가족협의회 대표)는 “한 아이가 잔인하게 살해당할 때마다 온 나라가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11월 되면 관련 예산을 싹둑 다 자른다. 오죽하면 우리끼리 ‘차라리 사건이 터지려면 예산 정국 때 터지지’라는 소리를 하겠나”라고 말했다. 서 대표는 국정감사장에서 또 다른 피해자 엄마들과 함께 공무원, 국회의원들 앞에 서서 눈물로 호소하며 말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아이들입니다. 저출산 대책 물론 좋습니다. 그런데 낳아놓은 아이도 지금 지키지 못하고 있잖아요. 한 해 평균 2만명의 아이가 부모에게 학대를 받고 있습니다. 아동 학대, 정말 더 이상은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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