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무리는 늘 그랬듯 ‘고기’였다. 1심 선고 후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는 익숙한 걸음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근처 고깃집을 향했다. 오후 3시가 가까운 때라 이미 점심을 먹었다는 일부 변호인단의 이야기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고기는 시기를 가리지 않는다. 재판의 끝은 항상 고기다”라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6년을 끌어온 재판의 1심이 끝난 2월2일이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주진우 〈시사IN〉 기자와 김 총수의 1심 선고가 6년 만에 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주 기자와 김 총수에게 각각 벌금 9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1월12일 결심공판에서 홍희영 검사는 “두 피고인은 선거의 공정성을 해쳤다”라며 각각 벌금 200만원의 형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한 바 있다.

이 사건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검찰은 주 기자와 김 총수가 크게 세 가지 점에서 공직선거법을 어겼다고 보았다. 언론인의 선거운동 금지(공직선거법 제60조 1항 5호), 선거운동 시 확성장치 사용 제한(제91조 1항), 누구든 선거 기간 집회나 모임 개최 금지(제103조 3항) 위반이다.

ⓒ시사IN 조남진2월2일 서울중앙지법 선고공판에 출석하는 주진우 〈시사IN〉 기자(왼쪽 두 번째)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왼쪽 세 번째)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12년 4월 총선 직전 두 사람은 서울과 부산에서 토크 콘서트를 열며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우리 명박이가 사라졌습니다” “4년 동안 민생을 파탄 낸 그런 당과 정부를 심판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김용민(당시 민주통합당 노원갑 후보)을 심판하고 있습니다” “김용민은 노원구민이 본인들의 판단에 따라 심판할 거예요. 각하는 여러분들이 심판해주셔야 돼” 등. 또 2012년 3월 ‘박근혜·손수조 카퍼레이드’를 패러디해 4월에 서울광장에서 ‘삼두 노출 대번개’를 벌였다.

두 사람은 재판 과정에서 당시 발언이나 행동이 투표 독려이고 선거에 대한 의견 개진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김용민 심판론’ 프레임이 퍼져 이에 맞서기 위해 ‘이명박 심판론’을 제기했다고 주장했다. 또 ‘박근혜·손수조 카퍼레이드’가 공직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해석에 따라 자신들도 삼두 노출 퍼포먼스를 벌였다고 말했다.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부산 사상구에서 정치 신인 손수조 후보와 만나 차를 타고 시민들에게 인사했다. 손 후보는 당시 유력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총선에서 맞붙었다. 박근혜 위원장과 손수조 후보가 등록되지 않은 차량을 이용해 금지된 선거운동을 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다”라고 해석했다.

ⓒ연합뉴스선관위와 검찰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손수조 후보의 카퍼레이드(위)는 불법으로 보지 않았지만,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총수의 카퍼레이드는 불법으로 보았다.
그런데 선관위와 검찰은 주진우·김어준 두 사람의 카퍼레이드는 불법 선거운동으로 보았다. 선관위가 두 사람을 고발했고 검찰이 기소했다. 표적 수사라며 반발한 두 사람은 검경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지난 1월12일 최후진술에서 김어준 총수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동영상만 보면 왜 우리가 저런 태도와 행동을 했는지 전달이 안 될 것 같다. 누군가가 보기에 막돼 보이는 행동을 한 이유는 ‘당시로서는 할 수 있는 만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다. 법과 함께, 각자 위치에서 쪽팔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선택한 가치도 기여하는 바가 있다는 점을 봐주길 바란다. 좀 거칠더라도 그런 선택들이 사회를 지탱하는 면도 봐주길 부탁드린다.”

1심 재판부는 검찰이 기소한 혐의 가운데 일부만 유죄로 인정했다. 특히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조항인 공직선거법 제60조 1항 5호에 대한 2016년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위헌 결정은 일부 공소사실 자체를 뒤흔들었다(〈시사IN〉 제460호 ‘전 세계를 다 뒤져도 없는 법이었다’ 기사 참조). 두 사람은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 조항은 위헌이라며 당시 재판부(부장판사 김환수)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여 2012년 12월 헌재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했다. 헌재는 2016년 6월, 7(위헌)대 2(합헌)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언론인이 언론 매체를 이용하지 않은 선거운동까지 전면 금지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직업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게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을 근거로 1심 재판부는 관련 혐의 3건을 아예 공소기각(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해 법원이 공소를 무효로 함)했다. 증거능력이 없어서 무죄가 나오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삼두 노출’ 부분이었다. 당시 검찰이 증거로 낸 영상은 누가 촬영했는지도 불분명하고 조작이 없는 원본 그대로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민주주의 달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

김진동 부장판사는 일부 유죄를 선고하며 “이들의 행위가 공직선거법 입법 취지를 해하는 것으로 책임이 가볍지 않다”라고 말했다. 다만 김 부장판사는 “두 사람이 이명박 정권에서 소수자·약자 지위에 있었는데도 이명박 대통령의 비위와 실정을 지적했다. 민주주의 달성에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라며 양형 사유를 밝혔다.

ⓒ시사IN 자료선관위와 검찰은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손수조 후보의 카퍼레이드는 불법으로 보지 않았지만,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총수의 카퍼레이드(위)는 불법으로 보았다.
두 사람이 재판 과정에서 추가로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은 이번 재판부(부장판사 김진동)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2016년 언론인 선거운동 금지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난 다음, 공직선거법 제103조 3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누구든 선거 기간에 집회나 모임을 개최할 수 없다’는 조항 역시 결사·집회의 자유 등 헌법 가치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되자 아쉬움을 나타냈다. 제103조 3항에서 규정한 ‘집회나 모임’의 범위가 너무 넓어 유권자의 자유로운 의사 교환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면 당장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선거나 특정 후보·정당에 관련된 발언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다. 검경의 자의적 법 집행을 경계해야 한다며, 두 사람은 개인 자격으로 헌법 소원을 낼 예정이다.

법정을 나온 주진우 기자는 “법이 저희를 특별대우해줘서도 안 되고 그럴 리도 없다. 하지만 권력이 법을 이용해 특정인을 얼마나 괴롭힐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다. 2012년 4월 벌어진 일이 6년 만에 1심 판결이 났다. 지난 6년이 너무 길었고 또 괴로웠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판결문을 꼼꼼하게 살핀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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