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 학대 신고 전화가 급증한다. 옷차림이 얇아지면서 두꺼운 외투 속 감춰진 아이의 상처가 발견되고, 방학이 끝난 학교·학원·유치원 등에서 아이를 보는 ‘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아직 날이 풀리려면 한참 남은 이 겨울, 집에 있는 아이들은 안녕할까? 2016년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처리한 아동 학대 사례는 모두 1만8700건, 이 가운데 80.5%는 부모가 가해자이다. 학대로 숨진 아이의 86%도 가해자가 부모이다. 아이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생명까지 위협받는 곳이다.

사지(死地)에 내몰린 아이들을 가장 먼저 발견하고 구조하는 곳이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이다. 전국 61개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들이 학대받은 아동의 발견·보호·치료를 수행한다. 이들을 지원하고 아동 학대 예방 사업을 총괄하는 일은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맡고 있다. 지난 1월12일 서울 역삼동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장화정 관장을 만났다.

ⓒ시사IN 신선영장화정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가정 안에는 CCTV가 없다”라며 아이가 위험하지 않게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들은 특수한 사람일까?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이다. 부모가 순간의 분노를 아이한테 완전히 투사할 때 가정 내 아동 학대가 일어난다.

그런 부모에게서 어떻게 아이를 보호할 수 있을까?

노동시장이 안정되고 빈곤 문제가 없으며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면 문제가 없다. 이것은 이상적이다. 모든 가정이 그럴 수 없다. 지금 상황에서 아동 학대 위험 가정은 모니터를 해야 한다. 지금은 과거처럼 친족과 이웃 공동체가 살아 있는 사회가 아니다. 대문을 닫는 순간 오직 부모와 아이만 남는다. 나는 ‘가정 안에는 CCTV가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또 아이는 제대로 진술할 수 없다. 지금 엄마 아빠가 하는 행동이 학대인지, 나를 사랑해서 그러는 건지도 아이는 모른다. 특히 미취학 아이를 위해서는 가정방문을 통한 모니터가 최선이다.

체벌과 아동 학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나?

학대 부모들을 만나보면 모두 “아이가 문제를 일으켜서 훈육했을 뿐이다” “내 양육 스타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 행동이 문제라는 판단을 누가 내리나? 부모가 마음대로 틀을 만들어놓고 아이가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때리고 학대한다. 최근 어린이집 등 보육 교사들의 아동 학대 사건이 많이 불거졌다. 부모들은 보육 교사를 비난한다. 그런데 많은 부모가 자신에게 들이대는 잣대와 남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너무 다르다. 어린이집·유치원 교사들이 아이를 때리면 안 되는 것처럼 가정에서도 때리면 안 된다. 부모도 그럴 의무가 있다.

ⓒ시사IN 신선영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상담사들이 상담 전화를 받고 있다.
고립되고 미숙한 부모가 일으키는 아동 학대 사망 사건도 잇따른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예전부터 의무적으로 예비 부모 때부터 시작하는 부모 교육을 강화하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정부가 보육비나 양육수당을 신청할 때 온라인으로 동영상을 보게 하는데, 아직 부족하다. 혼인과 임신, 출생, 유치원·어린이집 입소, 초등학교 입학 등 생애주기별로 아이의 성장 발달에 맞는 부모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또 예방접종이나 영유아 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아이, 어린이집 입소를 안 한 아이, 단전·단수된 가정의 아이들을 발견해 위험에 다다르지 않도록 조기에 개입해야 한다.

빅데이터를 통해 아동 학대 위험 가정을 찾는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곧 가동되는데?

발견이 중요하지만 사후 대책 없이 발견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아동 학대의 위험이 높은 가정을 발견한다 해도 그 가정 내 아이와 부모를 사후 관리하는 게 더 중요한데, 그러한 대책이 없다. 당장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이 가동되면 각 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엄청나게 신고가 몰리고 업무량이 늘어날 텐데 별다른 인력 보충이 없다.

현재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 1명이 아동 6300명을 담당한다는데?

업무량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당장 종사자들 이직률로 볼 수 있다. 이직률이 30%가 넘고 평균 근속 연수가 1.5년이다. ‘전문’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무색할 정도이다.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거다. 한 사람이 맡는 담당 구역을 좁혀줘야 피해 아동을 더 빨리 찾고 자주 보호해줄 수 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종사자들의 인건비도 갓 들어온 신입이나 박사 학위 갖고 20년 경력이 있는 사람이나 상관없이 똑같이 금액이 책정된다. 노하우가 쌓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아동 학대를 막기 위한 예산은?

올해 우리나라 아동 학대 관련 예산은 254억3200만원이다. 전체 나라 예산(428조원)의 0.006%이다. 예산이 나오는 구조도 매우 불안정하다. 아동 학대 관련 사업은 보건복지부가 맡지만 돈은 다른 곳에서 나온다. 대부분 범죄 피해자 기금과 복권 기금에서 나오는데 이 두 기금은 각각 법무부와 기획재정부가 예산 편성권을 갖고 있다. 특히 범죄 피해자 기금 같은 경우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 등과 나눠 써야 하고 재원이 범죄자들의 벌금 등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목표액에 도달하기도 쉽지 않다. 아동학대 관련 예산은 보건복지부 일반회계에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산을 늘리자는 주장은 늘 있어왔지만 아무도 나서서 챙겨주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는 투표권이 없다. 국회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에 도로 하나 더 까는 게 낫지, 당장 눈에 보이는 이득도 별로 없는 아동보호 사업을 늘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아동 학대 방지 예산은 저출산 예산에서 나오는 게 맞다. 있는 아이를 먼저 잘 자랄 수 있게끔 해야 엄마들도 안심하고 아이를 낳는다. 아이를 한 명 더 낳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나온 아이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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