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글은 흠잡을 데 없었다. 각 장은 ‘풍경’과 ‘대화’로 나뉘었다. 과녁이 또렷해지자 곧 속도가 붙었다. ‘자이니치’라는 친숙하지 않은 주제였지만, 책은 큰 조명을 받았다. ‘호모 사케르의 삶’ ‘2급 시민의 표정’ 같은 리뷰가 달렸다.
저자는 ‘읽어두기’(일러두기가 아니라)에 촬영한 사진 수와 취재 기간, 인터뷰 분량을 밝히면서, “한 글자도 빼지 않고 모두 문자화했다”라고 꾹 눌러 적었다. 숨 막히도록 더운 오사카의 여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왜 그곳에 있었을까. 귀국한 그는 앙상한 몸에 눈빛만 형형했다. 저자는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없이 사람을 배제하는 사회에서, 말라죽지 않고 살아남은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고 했다. 육체적 한계를 찍은 모습이었다.
한 공중파 책 읽기 프로그램에 단독 소개되면서, 곧바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광복 70주년 되던 해 8월이었다. 프로그램 작가의 섭외 전화를 받던 때도 생각난다. 스튜디오에서 패널들과 함께 앉아 있는 저자의 모습은 언제 봐도 낯설었다. 판매는 일사천리였다. 2쇄가 출간 석 달이 못 되어 바닥났다.
‘이 책을 쓰는 데 영향을 준 영화와 음악, 장소’, 책 말미에 이런 제목의 별면도 만들었다. 아마 〈대부〉와 〈무간도〉, 조용필과 로비 윌리엄스, 일본 걸그룹의 낯선 노래였을 것이다. 해안도로는 시마나미였던가, 그곳에서도 꾸준히 달렸을 것이다. 저자는 풀코스 (42.195㎞)를 3시간 이내로 달리는 마라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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