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2015년 7월1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전원합의체 선고가 나온 대법원 대법정.

정보기관 개혁·적폐 청산은 국가정보원 개혁으로 끝날 줄 알았다. 법원에도 ‘정보기관’이 있었다. 법원행정처가 그곳이다.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가 1월22일 발표한 조사보고서는 법원행정처가 법원 내 정보기관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정보기관의 국내 정치 개입은 사찰과 사건 조작으로 드러났다. 법원행정처도 똑같이 동료 법관을 ‘사찰’하고 ‘사건 조작’을 시도했다.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조직적으로 동료 법관을 사찰했다. 개인 내면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생각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고 배제했다. 국정원이 국민을 사찰하고 분류한 것과 같다. 그 자체로 권한 남용이고 불법행위다.

법원행정처는 법관의 자발적 모임을 뒷조사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이 모임 내부 ‘인권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에 대해 발언자의 발언 내용과 취지, 모임 분위기, 참석자의 반응 같은 정보를 수집했다. 사법행정과 아무 관련이 없는 정보다. 이 모임을 해체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했다. 연구회 중복 가입을 이유로 탈퇴 조치, 예산 등 지원 삭감 및 해외 출장 제한, 일반 회원의 동요와 탈퇴 유도, 공동 학술대회의 고립 분위기 조성, 다른 인권 행사 개최로 법관의 관심을 다른 연구회로 유도하는 방안 등을 수립했다. 모두 법원행정처의 권한을 넘는 직권남용이고 불법행위다. 같은 문건에서 법원행정처는 “어떠한 경우에도 법원행정처 차원에서 불이익을 부과하는 후속 조치가 있을 것임을 암시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한다. 자신들도 불법행위임을 알았다는 이야기다.

법원행정처는 ‘사건 조작’도 시도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이후 법원행정처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했다. 우 전 수석은 “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상고심 절차를 신속히 진행하고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했다. 이후 이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되고 우 전 수석의 희망대로 처리되었다.

이 사건에서 법원행정처가 “발상을 전환하면 대법원이 이니셔티브를 쥘 수도 있다”라고 “정무적 대응 방향”으로 언급한 점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사건의 실체 관계 판단에 개입하려고 한 것이다. 법원의 이익을 위해 사건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보이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대법관들은 사건 조작은 없었다고 펄쩍 뛴다. 법원은 사건 조작을 하지 않아야 할 뿐 아니라 사건 조작을 했다는 인상조차 주어서는 안 된다. 법관이 사건과 형식적 관련만 있어도 재판을 할 수 없는 제척 제도는 이 때문에 존재한다. 사건 조작 여부는 이후의 진상 규명 작업을 거쳐 밝혀져야 할 것이다.

사건 조작은 군부독재 시절 단골 메뉴였다. 1974년 인혁당 사건, 1982년 송씨 일가 사건에서도 사건 조작이 있었다. 당시 대법원은 사건 조작에 깊숙이 개입했다. 특히 송씨 일가 사건에서는 대법원이 나서서 기존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고 무고한 사람을 처벌했다(송기복씨 등 송씨 일가는 1982년 국가보안법상 간첩죄로 기소되었다. 불법 구금과 고문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되었음에도 지방법원(유죄)→고등법원(유죄)→대법원(무죄 취지 파기환송)→고등법원(유죄)→대법원(무죄 취지 파기환송)→고등법원(유죄)→대법원(유죄 인정 상고기각)을 거치는 등 무려 7차례 재판 끝에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2009년 27년 만에 재심으로 무죄판결을 받았다). 추악한 과거사를 청산하고 반성하지 않으니 같은 사태가 계속 발생한다.

또 하나 이번에 지적되어야 할 것은 법관의 양심이다.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법관의 양심은 헌법·법률과 함께 재판의 기준이다. 법관의 양심은 헌법과 법률만큼 지켜야 하고 지킬 가치가 있다. 그래서 법관의 신분을 보장한다.

이 사건에서 법관의 양심은 형편없이 땅에 떨어졌다. 이 사건 관련 법관은 두 가지 면에서 법관의 양심을 팔아먹었다. 하나는 동료 법관을 사찰했다는 점에서, 다른 하나는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다. 보통 사람은 하지 않는 비양심적인 일을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인이라면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의 당사자는 법관이다. 법관들은 일반인처럼 주장하면 안 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법관의 신분보장이라는 보호막 속에 숨으면 안 된다. 양심은 법관의 존립 근거다. 초등학생도 아는 초보적 윤리다.

진실 은폐는 더 큰 위기 초래할 뿐

ⓒ연합뉴스1월24일 김명수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 사찰 사건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그럼에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은 진상 규명에 나서기는커녕 진상을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법원행정처도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들을 법관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법원과 개인의 출세를 위해서 재판을 하는 양심 없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힘으로 덮을 수 없다. 대법관이 아니라 전·현직 법관들이 모두 부정하더라도 덮을 수 없다. 명백한 물증이 있기 때문이다. 진상 규명은 불가피하다. 다만 그 방법론이 문제일 뿐이다.

첫째, 문제가 된 법관들을 모든 재판에서 배제해야 한다. 동료 법관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사건을 조작하려고 한 법관, 법원 조직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고 자신은 출세하려고 한 법관에게 재판을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의 생명·자유·재산을 비양심적 법관에게 맡길 수는 없다. 모든 국민은 헌법에 규정된 양심적 법관으로부터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 둘째,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진상 규명은 법원 외부가 주축이 되어야 한다. 공평한 제3자가 법관이 되듯, 법원 외부의 진상규명위원회가 필요하다. 진상규명위원회에 이 사건과 관련한 전권이 주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범죄 혐의가 있다면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면 된다. 셋째, 철저한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비양심적 법관을 법원에서 추방하고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개혁이 철저하게 이뤄져야 한다.

위기는 위기일 뿐, 기회는 아니다.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더 큰 위기를 막기 위함이다. 법원은 위기를 힘으로 덮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진실 은폐는 더 큰 위기를 초래할 뿐이다. 불법은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사후의 해석으로 불법을 합법으로 만들 수도 없다. 불법을 불법으로 인정하고 진상을 규명하는 것 이외에 다른 위기 극복 방법은 없다.

기자명 김인회 (변호사·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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