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국어사전을 펴 ‘예의(禮儀)’를 찾았다. ‘남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하는 존경심의 표현과 넘어서는 안 되는 말과 몸가짐.’ 자신이 존중받으려면 남에게 공손하고 삼가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예의를 벗어나면 자신도 존중받기 어렵다. ‘염치(廉恥)’도 찾아보았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염치를 알면 부끄럽지 않게 행동한다. 예의를 지키고 염치만 차려도 남에게 손가락질받지 않는다.

2009년 5월23일 아침 모두 얼얼했을 것이다. 뉴스를 보고도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더라도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며 예의를 갖춰 조문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염치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호소는 기자인 나를 부끄럽게 했다. ‘언론에 호소합니다. 저의 집 안뜰을 돌려주세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부탁합니다. 그것은 제게 남은 최소한의 인간의 권리입니다(2009년 4월21일).’ 예의를 갖춘 묵직한 부탁이었다. 하지만 과도한 취재에 대한 기자들의 자성과 반성은 오래가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대형 오보와 유가족들에 대한 예의도 염치도 없는 취재는 2009년 안뜰까지 빼앗은 보도의 연장선에 있었다.

그때도 권력의 기획수사였음을 누구나 알았다. 광장의 촛불을 덮기 위해 이명박 정부의 국세청과 검찰 정예부대가 나섰다. 혐의 유무와 무관하게 수사 의도가 분명했다.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 책임자 가운데 한 명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라는 걸 모두 다 알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1월17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검찰 수사를 규정했다. 그의 죽음과 무관치 않은 이 전 대통령이 입에 올릴 단어는 아니었다. 이 전 대통령에게 이 지면을 통해 알려주고 싶다. 적어도 다스와 관련한 수사는 주진우 기자의 ‘MB 프로젝트’가 시발점이었다. 이 전 대통령 쪽은 MB 프로젝트 Ⅰ~Ⅳ까지 이어지는 동안 어떤 반론도 법적 대응도 하지 않았다.

염치없기는 〈조선일보〉도 마찬가지다. 2009년 〈조선일보〉는 ‘박연차 수사 끝을 봐야지 도중에 접어선 안 된다(4월7일)’, ‘전직 대통령 부부는 검찰 수사 이런 식으로 받나(5월2일)’ 같은 사설을 쏟아냈다. 그런 〈조선일보〉가 1월19일 ‘국가적 위기 속 現 대통령과 前前 대통령 정면충돌’이라며 ‘정치 보복 프레임’을 설파하고 있다. 염치를 차릴 사이도 없을 만큼 급했나 보다. 〈조선일보〉는 이번에 ‘이 전 대통령 시절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는 정치 보복이었다’라고 자기부정 사설을 쓰기도 했다. 수사를 지켜보며 자주 예의와 염치를 국어사전에서 다시 찾아볼 것 같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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