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지 않은 편집자 생활에서 ‘영광’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작업을 했다는 것, 어디에서나 자랑스럽게 내놓을 만한 책을 만들었다는 것. 이보다 더한 행운, 나아가 더한 행복이 있을까. 고은 시인의 깊은 곳까지 들여다본 대담집 〈고은 깊은 곳〉이 그 주인공이다. 하지만 가장 아쉬운 작품이기도 하다.

2017년 9월 말에 출간한 이 책은, 10월 초에 발표 예정이었던 노벨문학상을 다분히 겨냥했다. 고은 시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그 어느 때보다 높이 점쳐졌기에 그에 맞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거라는 상업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고은 시인의 진면목을 알아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다.

〈고은 깊은 곳〉
고은·김형수 지음, 아시아 펴냄

책의 구상은 이미 2015년부터 진행되었다. 대담자인 김형수 작가가 기획했고, 계간지에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순서였다. 다만 고은 시인의 삶과 시는 2012년에 이미 〈두 세기의 달빛〉(한길사)이라는 책으로 자세히 다뤄진 바 있다. 그래서 이 책에는 확고한 목적을 두었다. 하나는 ‘인간 고은의 생애를 읽고자 하는 분들에게 필요한 실록이 되게 하자’, 다른 하나는 ‘문학의 길을 가는 후학을 위해 고은 정신의 약도를 그려보자’. 고은 시인의 깊은 곳에 닿는 가장 명확한 길이자 안내였다.

책을 보면, ‘고은 시인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 것이다. 그는 왜 시인이 되었는가, 왜 네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는가, 왜 출가하였고 다시 환속했는가, 왜 순수 시인에서 참여 시인으로 나아가게 되었는가. 고은 시인이 직접 밝힌 생생한 이야기는 차라리 파란만장한 대서사시 같다. 그의 삶이 바로 시 자체가 아닌가 말이다.

〈고은 깊은 곳〉을 빌려 “내 묘비에는 내 이름 대신 ‘시’라는 한 자만 새겨질 것”이라고 말하는 고은 시인. 언제까지고 시와 함께 대한민국 대표이자 아시아의 긍지, 이 시대의 상징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이 그에 일조하길.

기자명 김형욱 (아시아 편집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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