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7일,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특임위원회가 ‘12·28 합의’에 ‘이면 합의’가 있었음을 밝혔다. 당장 일본 정부와 언론은 합의 이행을 촉구하며 이면 합의를 함부로 공개한 한국 정부의 외교상 결례를 비난하고 나섰다. 적반하장이다. 2015년 12월28일 합의가 발표된 직후부터, 기시다 후미오 외무장관과 하기우다 고이치 관방 부장관 등 일본의 고위 관료들이 주한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때마다 국내에서는 이면합의설이 떠돌았고, 한국 정부는 그것을 부인하느라 급급했다.

이면 합의를 일본이 먼저 발설한 극적인 사례가 2016년 9월7일, 라오스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있었다. 이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소녀상 철거를 포함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이행을 독촉했고 일본 언론은 일제히 이 소식을 보도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한국 국민을 향해 12·28 합의에 소녀상 철거를 비롯한 그 어떤 이면 합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뺌해왔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천연덕스레 합의에도 없는 소녀상 철거를 이행하라고 압박했던 것이다.

일본은 12·28 합의를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불가역적 해결로 확정한 다음, 이면 합의를 내세워 한국 정부로 하여금 국내의 위안부 관련 단체들이 그 어떤 위안부 관련 운동이나 기념 행위도 하지 못하도록 관리해줄 것을 요구했다. 한국 정부는 소녀상 철거, 각종 위안부 단체 설득, 제3국에서 세워지는 기림비 지원 불가, ‘성노예’ 표현 폐기 등 일본이 요구하는 이면 합의 조항을 고스란히 수용함으로써 국내 위안부 운동을 억압하려는 일본 정부의 위탁 사무소가 되었다. 실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합의 직후인 2017년 1월, 여성가족부가 추진했던 위안부 피해자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사업의 정부 지원을 끊었다.

ⓒ이지영 그림

일본이 공들였을 이면 합의의 핵심은 ‘망각’이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5년 8월14일 아베 총리가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를 잘 뜯어봐야 한다.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한 일본 정부의 노력에 이정표가 되어온 ‘고노 담화(1993)’와 ‘무라야마 담화(1995)’를 계승했다는 저 담화에서 아베 총리는 무척 모순되는 다짐을 한다. 그는 “우리는 과거 20세기 전시하에, 많은 여성들의 존엄과 명예에 깊은 상처를 준 과거를 영원히 가슴에 새기겠습니다”라고 맹서하는 동시에, “일본에서는 전후 세대가 바야흐로 인구의 80%를 넘고 있습니다. 그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자손, 그리고 그다음 세대 후손들에게 계속 사죄해야 하는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공표한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영원히 가슴에 새기겠다’라는 다짐과 ‘전쟁범죄와 무관한 다음 세대에게는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하지 않겠다’라는 다짐은 하나의 담화 속에 담기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매우 정당하게 여겨지기도 하는, 이처럼 가혹한 모순은 일본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를 거느렸던 모든 제국주의 국가와 반인륜적 전쟁범죄를 저지른 전범국은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앞 세대의 죄를 뒤 세대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에 부담을 느낀다. 이 때문에 일본과 똑같은 전범국이었던 독일의 역사 교육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 ‘위안부’ 항목이 사라진 지 10년이 되어가는 일본의 역사 교육과 곧잘 비교된다.

독일에서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등학교에서 매우 체계적으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교육과 학습을 시킨다. 최호근의 〈독일의 역사교육〉(대교출판, 2009)은 만 3~10세부터 시작되는 홀로코스트 조기교육 과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독일 교육자들은 이 나이의 어린아이들에게 아우슈비츠가 초래할지도 모를 정서적 부담감을 배제하면서 아우슈비츠를 교육하는 지혜를 모은 끝에 온정과 공감 능력을 키우는 ‘아우슈비츠 없는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을 개발했다. 이후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면서 시청각 교재와 현장 방문 등을 통해 점차적으로 홀로코스트라는 실체와 만나게 된다.

기억하려는 독일 vs 망각하려는 일본

“독일 사회가 오랫동안 홀로코스트 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온 이유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반인도적 사건의 궁극적 원인을 시민들의 정치의식 부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과 선택에는 갈등이 있을 수 있지만, 자유·인권·평화·관용·참여와 같은 보편적 가치에서는 양심이 문제가 된다. 이처럼 독일에서 홀로코스트 교육은 단순히 과거사 교육이나 역사 교육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교육이다. 현재나 미래와의 연관이 없다면, 역사 교육은 힘을 잃는다. 우리가 독일인들에게 왜 홀로코스트를 가르치고 배우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대답할 것이다. 현재 직면해 있는 인종과 문화 간의 갈등을 해결하고, 앞으로 인권과 평화가 살아 숨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바다를 건너간 위안부〉
테사 모리스 스즈키 외 지음, 임명수 옮김, 어문학사 펴냄
과거사를 대하는 독일과 일본의 차이를 루스 베네딕트가 명명한 ‘죄의 문화’와 ‘수치의 문화’로 이해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이안 부루마의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한겨레신문사, 2002)는 두 나라의 차이를 문화인류학이나 민족성의 차이로 환원하는 것에 반대한다. 이안 부루마는 일본이 독일과 달리 자신이 저지른 전쟁범죄를 망각하는 방향으로 퇴행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아시아·태평양 전쟁을 일으켜놓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은 천황, 천황을 면죄해주고 보호해준 미국 등을 지목한다. 이안 부루마가 미국과 전후 일본 보수 우파의 끈끈한 결탁을 파헤친 이 대목과, 12·28 합의가 한국·미국·일본 3국 간 안보 협력이 절실했던 미국의 압박에 떠밀려 이뤄진 합의였다는 것을 밝힌 특임위원회의 보고서는 완벽한 데칼코마니다.

현재 일본은 아베 총리를 중심으로 한 우파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위안부 문제를 비롯해 일본 식민주의나 전쟁 책임을 부정하는 ‘역사전(歷史戰)’을 펼치고 있다. 일본 학자 네 명이 우파의 역사전을 비판하고 있는 〈바다를 건너간 위안부〉(어문학사, 2017)에서 테사 모리스 스즈키는 12·28 합의를 이렇게 질타한다. “일본 정부 및 일본 국민은, 한국 측이 ‘또다시 문제 삼지’ 않으면,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없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그야말로 21세기 세계 조류를 무시한 사고방식이며 동시에 잘못된 생각이기도 하다.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하여’ 몇 번이고 이 문제를 ‘가슴에 새기는’ 것이야말로 ‘똑같은 실수를 절대로 되풀이하지 않는’ 길로 이어진다고 나는 믿는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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