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기술 플랫폼 회사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글로벌투자책임자)는 네이버를 ‘기술 플랫폼 회사’로 규정했다. 언론이 아니라는 의미다. 지난해 10월3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네이버가 자사의 언론 기능과 영향력을 인정하고 그 지위에 걸맞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해진 창업자는 네이버가 청탁에 따라 뉴스를 재배치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으나 ‘언론 여부’에 대한 답변은 피했다.

창업자의 발언에서 드러나듯 네이버는 회사 이미지를 검색 포털로 한정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네이버 서비스가 ‘검색 결과 보여주기’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네이버에 어떤 검색어가 선정되고 뉴스가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여론이 춤을 춘다. ‘사실상의 언론’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네이버가 국정 농단 사건 관련 검색어를 다수 삭제했다’는 보도(1월7일)가 나오면서, 네이버의 언론사적 성격이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한창이던 2016년 10~11월, ‘김동선 정유라 마장마술’ ‘박근혜 7시간 시술’ 등 네이버의 연관 검색어가 삭제되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해당 내용은 사라졌다.

ⓒ시사IN 이명익네이버는 한화그룹의 요청을 받고 김승연 회장의 3남 김동선씨의 연관 검색어 일부를 삭제했다.
네이버는 인터넷 업계의 자율규제 기관인 KISO(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를 통해 자사 검색어 삭제를 검증받는다. 감시 기구를 외부에 두는 방식으로 ‘검색어 투명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인 셈이다. 국내 인터넷 사업자 중에서 유일하다.

‘중립적인’ 교수·법조인 등으로 구성되는 KISO의 검색어 검증위원회는 자체 기준에 따라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연관 검색어’ ‘자동완성 검색어’ 등을 감시하고 문제점을 지적한다. 번번이 논란의 대상이 된 네이버 검색어 조작 시비 가운데 상당 부분은 KISO 기준에 따른 조치로 설명할 수 있다. 네이버 관계자는 “언론 보도에서 확인되지 않은 검색어는 ‘루머성 검색어’로 판단해 연관 검색어에서 제외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박근혜 7시간 시술’은 제외됐지만 (언론 보도로 확인된) ‘박근혜 세월호 7시간’ ‘박근혜 성형시술’ ‘박근혜 주사’ 등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음란성, 욕설, 오타, 개인정보 유출, 명예훼손 등에 해당되는 검색어 역시 걸러내도록 규정되어 있다.

KISO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2016년 하반기 네이버 노출 제외 검색어에 대한 검증 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는 2016년 10~11월, 2개월 동안 연관 검색어 1만5584 개를 삭제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명예훼손 등 피해 당사자의 신고에 따라 제외되었다. 그러나 네이버가 판단해서 제외한 연관 검색어 역시 1만1000여 개에 달한다. 같은 기간 자동완성 검색어 2만3217개가 삭제됐는데, 그중 2만2600여 개가 네이버 자체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연합뉴스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는 청탁에 따라 뉴스를 재배치한 사실을 인정했다.
문제가 된 국정 농단 관련 검색어에 대한 네이버의 해명에는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예컨대 ‘박근혜 7시간 시술’을 비롯해서 ‘최태민 박근혜 아이’ ‘박근혜 혼외자’ ‘최순실 대리모’ ‘박근혜 마약설’ 등은 ‘루머성 검색어’로 삭제의 타당성을 완전히 부정하긴 힘들다. 그러나 ‘김동선(한화그룹 회장의 3남) 정유라 마장마술’ 같은 검색어는 어떨까? 네이버 측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한화그룹 측의 요청을 수용해 이를 삭제했다. 이에 대해 KISO 검증위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김동선 김앤장’ 키워드는 노출되지 않아

올해 들어 김동선씨와 관련한 네이버 검색어를 보면 미심쩍은 흔적이 드러난다(1월11일 기준). 다른 검색 포털인 다음의 경우, ‘김동선’을 검색하면 ‘김동선 김앤장’ ‘김승연 셋째아들 술집 폭행사건’ 등이 연관 검색어로 제시된다. 구글에서도 ‘김동선 김앤장’ ‘김동선 폭행’ 등이 뜬다. 김동선씨는 지난해 9월 국내 굴지의 로펌인 김앤장 변호사들을 폭행했다가 2개월 뒤인 11월 언론 보도로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그러나 네이버의 경우, 김동선 연관 검색어 10개 중 ‘김앤장 변호사 폭행’ 사건 관련 검색어는 하나도 뜨지 않는다. 네이버 관계자는 “‘김동선 김앤장’ 키워드는 지난해 11월 연관 검색어에 노출돼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고 다른 검색어가 많아지면서 바뀌게 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지난해에는 네이버가 청탁을 받고 뉴스를 재배치해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엠스플 뉴스〉는 2016년 10월3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요청으로 네이버가 연맹 비판 기사를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보도했다. 당시 축구연맹 홍보팀장은 네이버 스포츠 이사에게 ‘K리그의 기사 관련한 부탁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한번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시사IN〉이 공개한 장충기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차장(사장)의 문자 중에도 네이버가 삼성의 지시에 따라 기사를 배치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 있다. 장 전 차장이 받은 문자에는 ‘어제 네이버·다음 양 포털 뉴스팀에 미리 협조 요청해놔서인지 조간 기사가 전혀 포털에 노출되지 않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있다(제517호 ‘삼성 장충기 문자 전문을 공개합니다’ 기사 참조).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도 네이버가 ‘언론사적 성격’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16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가 포털을 언론으로 인식한다. 52.9%는 인터넷 포털에서 본 기사가 어느 언론사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이 본 글은 〈한겨레〉 〈조선일보〉 등이 아니라 네이버나 다음의 기사로 인식되는 식이다. 70%에 달하는 검색 시장 점유율까지 고려하면 여론이 형성되는 주요 통로를 네이버가 틀어쥐고 있는 셈(포털 뉴스 이용에서 네이버의 비중은 67.6%)이다.

그렇다고 해서 네이버 등의 포털을 직접 규제하기도 힘들다. IT 시민단체 오픈넷의 김가연 변호사는 “정부가 규제를 하면 최악의 경우 방송 장악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자율규제가 현실적으로 가장 나은 방안이다”라고 말했다.

네이버는 이용자·시민단체·학계·정계·언론계 등 외부 인사로 구성된 ‘네이버 뉴스 기사배열 공론화포럼’을 발족할 계획이다. 모바일의 뉴스 서비스 배치에서도 인공지능(AI) 기능을 강화한다고 밝혔다. ‘여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자의적으로 뉴스 배치를 결정한다’는 의혹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장치들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여론시장에서 네이버가 획득한 독점적 지위를 얼마나 완화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 네이버의 자율규제가 시행 중이지만 끊임없이 조작 의혹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을 보면 낙관적으로 전망하기 어렵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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