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송파구 소재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격이 3.3㎡(1평)당 3000만원을 돌파했다. 강남구의 아파트 가격 역시 재건축 단지들의 무한질주에 힘입어 평당 4000만원을 넘어섰다. 그 뒤를 서초구가 3700만원대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하긴 강남구나 서초구의 아파트 가운데서는 평당 6000만원을 넘어가는 단지들이 속출하고 있으니 그리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일반 시민들은 ‘평당 매매가격 3000만원, 4000만원, 6000만원’ 같은 문구 자체가 실감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음과 같이 설명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34평 아파트 기준으로 평당 매매가격이 3000만원이면 10억2000만원에 거래된다. 평당 매매가격이 4000만원이면 13억6000만원, 평당 매매가격이 6000만원이면 20억4000만원이다.  

서울 강남(강남구·서초구·송파구)의 집값이 대한민국에서 단연 높게 형성된 것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강남은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와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를 건설하면서 ‘대한민국 발전의 축(서울과 부산을 잇는)’에 편입된 지역이다. ‘영동 개발(강남은 개발 초기에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영동이라 불렸다)’은 허허벌판에 이루어진 탓에 계획적인 도시설계와 개발이 용이했다.
 

ⓒ시사IN 이명익2018년 1월 초, 서울 강남(강남구·서초구·송파구)의 부동산 가격은 명목가격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위는 서초구와 강남구 일대.

이처럼 서울과 부산을 잇는 ‘발전 축’의 입구에 강남은 계획적으로 설계되었다. 무계획적으로 발전된 강북과는 출발부터가 완연히 다르다. 경제·교통·교육·문화 등에서 인프라의 집적도가 한국의 다른 모든 지역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우월하다. 단적인 예로 서울 강북에 있었던 경기고 같은 명문 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대거 이전했다. 지하철 노선이 가장 촘촘하게 형성된 곳도 강남이다. 2호선, 3호선, 7호선, 9호선, 분당선 등이 빈틈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촘촘히 강남 전역을 뒤덮고 있다. 그 덕분에 비정규 교육시설들도 강남으로 몰렸다. 이 지역에 소재한 ‘대치동’이 입시학원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다.

대한민국 발전의 중심축인 경부 축선의 출발점이라는 지리적 축복, 계획도시로서의 이점, 역대 정부들의 아낌없는 인프라 투자(예컨대 교통과 교육) 등이 서로 화학작용을 일으키면서 강남에는 기업과 일자리가 넘쳐났다. 교통과 교육, 일자리 부문 등에서 대한민국의 압도적 1위인 강남의 집값이 ‘넘사벽’ 수준에 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남의 집값이 ‘그들만의 리그’가 된 것은 의외로 오래되지 않았다. 강남의 집값은 전 세계적 유동성 과잉과 김대중 정부의 무차별적 부동산 규제 철폐에 힘입어 200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질주를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노무현 정부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2007년에 최고점(2007년 1월 강남구 평당 평균 매매가 3550만원, 서초구 2883만원, 송파구 2596만원)을 찍었다. 이 시기의 강남 아파트 가격의 폭주는 그야말로 기록적이었다. 그러한 까닭에 강남은 ‘초부유층만의 리그’로 자리매김했다.
 

ⓒ연합뉴스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투기 심리를 부추겼다는 평을 받는다.

흔히 ‘강남 불패(강남의 집값은 절대 하락하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강남의 아파트 매매가도 크게 떨어진 적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부터 2013년 사이다. ABR(Anything But Roh:‘노무현식 정책만 아니면 된다’)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 아래서도 살아남은 ‘노무현표 부동산 시장 질서유지 대책’도 당시의 강남 집값 하락에 한몫했을 터이다. LTV(주택담보대출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 관리, 재건축 규제 등이 노무현 정부의 대표적인 부동산 정책이다. 2011년에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2.2% 하락한 데 비해 강남·송파·강동구에서는 3.41~4.69%나 하락하는 등 낙폭이 훨씬 컸다. 2012년에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6.6% 하락하는 동안 강남구는 무려 9.46%나 떨어졌다. 서초구·송파구·강동구 등도 7~10% 폭락하며 부동산 시장에 충격과 공포를 안겼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규제가 약한 데다 가격도 싼, 그래서 기대수익률이 높은 대구·부산·광주 같은 지역에서는 2010년 이후 투기 광풍이 불면서 가격이 폭등했다. 심지어 대구 수성구 같은 경우 아파트 평당 평균 매매가가 2000만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비싼 집 가진 만큼 세금 더 걷으면 된다

이처럼 비수도권을 누비던 부동산 시장의 유휴자금은 2014년 무렵부터 강남과 서울로 다시 집결한다. 서초구 아파트 가격은 2016년 가을쯤 전고점(이전의 최고 가격)을 회복했다. 강남구와 송파구도 2017년 초에는 전고점을 돌파했다. 2018년 1월 초, 서울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명목가격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렇게 투기 세력과 유휴자금이 강남과 서울 등으로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직접적 계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이른바 ‘초이노믹스(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의 경제정책)’였다. 최경환 전 부총리는 LTV 및 DTI 완화, 재건축 관련 규제 형해화(유명무실화) 등을 통해 사실상 ‘빚을 내서 집 사라’고 권유했다.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는 명분 아래 투기 심리 부추기기에 열중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정책이야말로 강남 집값 상승의 일등공신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지금의 대한민국 경제가 양과 질 모든 면에서 2000년대 초반과 완전히 다른 것처럼 강남도 그때의 강남과는 다르다. 경제·교통·교육·문화 등 강남 인프라는 한국 내 다른 모든 지역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하다. 강남의 ‘압도적인 집값’ 역시 허깨비나 거품이 아니라 교통이나 교육 인프라 등 튼실한 물질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 강남의 부동산 가격은 2000~2007년의 1단계 점프와 2014~2017년의 2단계 점프를 통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다.

다만 이처럼 높은 가치가 역사적으로 공공 차원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도 유념해야 한다. 이미 서술했다시피 박정희 시대부터 지속된 공공 부문의 정책이 강남을 대한민국에서 차별적으로 양질의 사회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발전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강남이 다른 지역과 근본적으로 다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철저히 인식해야 한다. 강남 집값과 싸우려는 생각은 버려라. 발상을 전환해서 부동산 관련 세제들을 철저하고 치밀하게 실행하면 된다. 강남 땅값을 떨어뜨리는 데 정책 목표를 맞추기보다 보유세, 양도소득세, 임대소득세,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을 원칙대로 현실화하고 시행하면 된다는 이야기다. 물론 강남 시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집을 소유한 만큼 다른 지역의 시민들보다 더 많은 보유세 등을 납부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연하고 보편적인 일이다. 부동산 당국도 이제 강남 집값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라. 문재인 정부의 관심사는 강남이 누리는 서비스에 상응하는 비용을 강남이 납부하게 하는 것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기자명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토지정의센터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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