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선생님께.

무술년 새해 첫날이에요. 선생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불법 시위를 주도한 민주노총 사무총장 이영주’라고 신문에 났지만, 저에게 이런 단어는 어색할 뿐입니다. 선생님은 그냥 우리의 ‘영주 쌤’이죠.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건 문재인 정부가 교육계의 첫 적폐 청산으로 없앤 일제고사 때였어요. 이명박·박근혜표 교육 적폐가 쌓이던 초기, 초등학교 때부터 전국의 학생들을 한 줄로 세우는 일제고사가 시작되었고, ‘이건 아니잖아’라고 분노하던 저희들에게 제안하셨죠. “학생들 시험 보는 날 우리 체험학습 가요. 문제지를 끝까지 읽는 것도 벅찬 아이들에게 고등학생들도 한숨 나오게 하는 모의고사 시험이라니요. 그건 아동학대죠. 이렇게 날씨 좋은 6월에 우리 학생들에게 자연을 만나게 하고, 친구를 만나게 합시다.”

사실 저는 겁이 났어요. 그때 정권은 처음 그 체험학습을 허락한 교사들을 파면하거나 직위 해제시켰거든요. 3년 동안 학생들과 못 만나게 하고 길거리에서 헤매게 했지요. 징계무효 소송에서 이기고 나서야 그 선생님들은 학교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 선생님들이 해직되고 2년째 되는 해 체험학습을 떠난 날, 잔뜩 겁을 먹고 체험학습에 함께했는데 햇빛은 따사롭고 학생들은 행복해했어요. 시험지를 앞에 두고 하얗게 질린, 교실에서 보던 그런 얼굴이 아니었어요. 그때 처음 생각했어요. ‘행복해지려면’ 저항도 필요하구나. 행복해지기 위해 겁먹지 말아야겠구나. 7년이 지나서야 그 시험은 없어졌습니다.

ⓒ김보경 그림

아이들이 제 시간에 과제를 끝내지 못할까 봐, 시험 시간에 커닝할까 봐, 이미 낸 과제를 고친다고 하는 학생들을 보며 전전긍긍하는 저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해주었죠. “학생들한테 빨리빨리 하라고 하면 안 돼요. 저는 학생들이 활동을 할 때 이 세 가지를 강조해요. 천천히 하기, 친구 것 보고 하기, 스스로 끝내도 되겠다고 생각할 때까지 다시 하기.”

영주 쌤이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된다고 했을 때 저는 정말 놀랐어요. 그냥 그렇게 존경받으며 살 수 있는데, 왜 대부분 찬 바닥을 지켜야 할 것 같은 그런 자리에 갈까? 전교조와 민주노총이라면 벌레 취급하던 박근혜 정권의 서슬이 퍼런 때 하필. 그런데 선생님이 어느 날 글을 쓰셨더라고요.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배우고 인권을 배워도 헬조선에서 각자도생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를 그냥 두고 가르치기만 할 수는 없었다.”

“비는 함께 맞는 겁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고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 저항할 기운조차 못 내던 2015년 민중총궐기 때 광화문 사거리가 차 벽으로 모두 둘러싸인 바로 그 앞에 민주노총 사무총장의 이름으로 서 있는 선생님을 봤어요. 10만명이 모여서 물대포를 맞던 때에도 선생님은 마치 첫 체험학습을 이끌던 때처럼 친절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좀 더 힘을 냅시다. 앞에 있는 이들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지금 쓰러지고 있습니다. 뒤에 있는 동지들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비는 함께 맞는 겁니다!” 저는 두렵지만 조금씩 한 발짝씩 나아갔습니다. 그때가 떠오르네요.

그게 선생님이 3년이나 수배자가 될 이유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 불의한 정권이 물러난 뒤에도 선생님이 감옥에 갈 이유가 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우리 곁에 돌아오지 못했는데 저는 왜 촛불을 들었던 걸까요? 선생님을 되찾지 못했는데 제 촛불을 왜 꺼뜨렸던 걸까요? 아! 이영주, 우리의 영주 쌤!

기자명 조영선 (서울 영등포여고 교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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