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에 열과 같은 충격이 가해지면 세포는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단백질을 만든다. 열충격 단백질(HSP)이다. 1960년대 초, 초파리나 대장균을 40℃의 고온에서 생육할 때 이런 현상이 처음 알려졌다. 질병 치료에 접목하는 연구가 1980년대 이후 본격화했다. 서울대학교병원 안과 박기호 교수(왼쪽·56)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대학 전자과 배성태 교수(오른쪽·50)가 열충격 단백질을 안과 치료에 응용하는 공동연구를 10년 동안 진행했다. 지난 2004년 안압 센서 공동개발부터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은 열충격 단백질 생성에 성공했다. 2017년 10월24일자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s)〉 온라인판에 게재된 두 사람의 논문에 발열성 나노 물질인 MSIO가 열충격 단백질을 생성하는 과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나노 입자가 39~40℃에 도달하자 시신경 세포와 그 주변 세포에서 단백질이 형성돼 시신경을 보호하는 것이 확인됐다. 배 교수는 “900초(15분)가량 지났을 때 단백질이 가장 많이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신선영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안과의 최대 숙제인 녹내장 치료에 응용할 수 있다. 안압이나 혈류 이상으로 시신경이 일단 훼손되면 복구가 되지 않는 병이 녹내장이다. 열충격 단백질을 이용하면 시신경을 복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뇌신경 이상으로 발생하는 치매나 알츠하이머, 파킨슨병에도 적용할 수 있다. 루게릭병 치료를 위해 연구하는 곳도 있다.

나노 입자를 이용한 발열 치료는 적용 범위가 넓다. 배 교수가 최근 개발한 나노 입자는 기존 물질보다 발열 능력이 100배에 이른다. 암 치료에 활용할 수 있다. 암세포는 보통 45℃에 죽는다. 세포나 신경의 재생을 통한 치료와 달리 암 치료는 고열을 일으켜 암세포를 죽이는 방식이다. 반대로 인체 면역세포를 활성화해 암을 치료하는 방법도 연구 중이다. 순간적인 고열을 일으키는 나노 물질로 지혈제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2016년 6월 1차 발표에 이어 2017년 10월24일자 국제학술지 발표와 언론 보도로 두 사람의 연구가 알려지면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뉴욕에서 발행하는 〈월드 바이오 메디컬 프런티어〉지가 매년 선정하는 12대 기술의 하나로 선정했고,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공동연구를 제안하기도 했다. 아직까지 연구 단계라 갈 길이 멀다. 박기호 교수는 “언론 보도를 보고 환자들이 문의하는데 조심스럽다. 아직은 가능성을 확인한 수준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배성태 교수는 “병은 자꾸 진화하는데 기존 의학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혔다. 다른 분야와 융합해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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