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파리에 살고 있는,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젊은 부부가 완벽한 보모를 들이게 되면서 벌어진 이야기다. 또한 이 이야기는 평생 여기저기 전전하며 여러 가정의 아이들을 완벽하게 키워온 보모가 드디어 정착하고 싶은 가정을 만나면서 벌어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불가능한 꿈이 된다. 두 아이의 엄마 미리암은 정착할 수 있는 일터를 꿈꾸고, 평생 일터에서 살아온 루이즈는 안정된 가정을 꿈꾸지만 ‘뱀처럼 사악한 운명’은 두 여자가 각자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참혹한 불행만 남은 ‘비탈의 나쁜 쪽’으로 이들을 밀어붙인다.
“누군가 죽어야 한다. 우리가 행복하려면 누군가 죽어야 한다.” 루이즈는 되뇐다.
소설은 두 아이 ‘밀라’와 ‘아당’의 충격적인 죽음에서부터 시작한다. 질문은 ‘누가 두 아이를 죽였는가?’가 아니라 ‘왜 두 아이가 죽어야 했을까?’이다.
우리는 미리암을 안다. 꼭 현대사회를 사는 워킹맘이 아니더라도 이 사회에서 자기 존재의 이유를 찾는 현대인은 모두 ‘미리암’이다. 하지만 루이즈는 조금 다르다. 미리암처럼 익숙한 인물이 아니다. 우리는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루이즈를 읽지만 소설이 끝났을 때 우리는 루이즈의 나이조차 모른다. 게다가 괴상한 논리 세계와 동물적인 욕망만을 가진 루이즈. 그녀가 솔직하게 의사 표현을 하면 할수록 그 창의적으로 섬뜩한 표현 방식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밀어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이즈의 이야기가 끝나고 마지막 책장을 덮은 뒤 밀려오는 외로움과 슬픔은 대체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니나 경감은 루이즈가 마지막으로 지나간 욕조 안, 이해 불가한 그녀의 심연과도 같은 그 차갑고 흐린 물속으로 손가락을 넣고 저도 모르게 팔을 넣고 어깨까지 집어넣는다. 어느새 흠뻑 젖은 니나 경감처럼 나도 이해 불가한 쓸쓸함에 젖어 마지막 장을 덮은 뒤 루이즈를 다시 생각한다.
누군가 죽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루이즈. 그러나 결국 그녀에게 남겨진 ‘행복’의 의미 안에 그녀는 없다. 이게 다 뭘까. 어쩌면 가끔씩 우리가 행복한 이유는, 그때마다 어디서 루이즈가 죽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니 또다시 섬뜩하고 사무치게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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