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이민호군이 현장실습을 나갔다. 원예를 전공했으나 생수 공장에서 기계를 관리하며 하루 11시간 넘게 일했다. 정직원이 하던 일을 일주일도 배우지 못한 채 혼자 떠맡았다. 기계가 자꾸 멈췄다. 회사에 알렸다. 사람을 붙여달라고 했다. 그사이 일하다 휴대전화 액정이 깨졌고, 1.5m 높이에서 떨어져 다쳤다.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11월9일 혼자 일하던 이군의 목과 가슴이 기계에 끼었다. 업체는 이군의 잘못이라 했다. 이군은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다 열흘 만인 11월19일 숨졌다. 이군은 열여덟 번째 생일을 나흘 앞두고 눈을 감았다(〈시사IN〉 제534호 ‘모든 것을 맡겨놓고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기사 참조). 이군의 부모는 업체 등에 사과를 요구하며 장례를 미뤘다. 전국의 특성화고등학교 학생들이 매일 촛불을 들었다. 11월24일 교육부는 고용노동부와 합동진상조사단을 꾸려 진상 규명에 나서겠다고 했다. 학교장은 도의회에서 질타를 받은 다음 날인 11월28일 학부모들에게 사과 문자를 돌렸고 교육감도 11월29일 뒤늦게 머리를 숙였다. 교육부는 12월1일 조기취업형 현장실습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업체 ‘제이크리에이션’ 대표는 12월4일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사과했다.

12월6일 이민호군의 영결식이 제주도교육청장으로 엄수됐다. 사고가 난 지 27일, 이군이 숨진 지 17일 만이다. 이군의 모교인 제주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체육관에 이석문 제주도교육감과 원희룡 제주도지사, 학교 선생님과 친구 등 300여 명이 모였다. 이군은 현장실습 4개월여 만에 영정 사진이 되어 교실로 돌아왔다. 화장된 민호군의 유해는 제주시 양지공원 봉안실에 안치됐다.

ⓒ시사IN 이명익


ⓒ시사IN 이명익학생들의 가슴에는 검은 리본이 달렸다. 너무 이른 나이에 죽음을 접한 제주 서귀포산업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이민호군의 관을 운구하기 위해 연습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학교로 들어오고 있는 장례 차량.
ⓒ시사IN 이명익영결식에는 학교 선생님과 친구 등 300여 명이 모였다.
ⓒ시사IN 이명익 이군의 아버지는 영결식 내내 정채봉 시인의 시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가 적힌 액자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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