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내뱉으면 소중한 뭔가가 빠져나가버릴 것만 같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있었습니다(〈책으로 가는 문〉, 현암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어린 왕자〉를 처음으로 다 읽었을 때의 기분”을 표현했던 문장 하나 용케 생각해내고는, 그 마침맞은 말에 마음을 기댄 채 과묵한 저녁을 보냈다. 내 안의 ‘소중한 뭔가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배를 깔고 엎드린 그날 밤. 결국 참지 못하고 SNS에 글을 올렸다. “아… 행복하다. 그냥 ‘행복하다’고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 없는 이 기분.” 이렇게 시작한 내 짧은 감상평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이 영화와 나의 연애는 오늘부터 1일. #안녕나의소울메이트.”

“열세 살 때부터 열다섯 살 때까지 칠월과 안생은 3년을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다. 어떨 땐 칠월이 안생의 그림자였고 어떨 땐 안생이 칠월의 그림자였다. 둘은 책에서 보았다. 누군가의 그림자를 밟으면 그 사람은 평생 떠나지 않는다는 얘기를.”

이 내레이션과 함께 짧은 유년기 장면이 끝난 뒤, 열일곱 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칠월(마쓰춘)과 안생(저우둥위)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칠월은 늘 안생의 자유를 부러워한다. “난 이번 생엔 떠돌아다닐 거야.” 호기롭게 뱉은 말을 실천하며 정말 전 세계를 유랑하는 유목민 친구가 부럽다. 하지만 안생은 칠월을 내심 부러워한다. “스물여섯 살에 결혼을 하고 스물일곱 살엔 아이를 낳고 서른 살쯤엔 집을 살 거야” 하고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정착민 친구의 ‘예측 가능한 내일’이 부럽다.

그러다 한 남자. 함께 떠난 여행. 목걸이. 기차역. 이별. 편지. 아주 오랫동안 아주 먼 곳에서 보내온 안생의 편지. 아주 오랫동안 어디로 보내야 할지 몰라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칠월의 편지. 서로의 그림자를 밟은 채 각자의 그림자만 껴안고 울던 두 친구. 나란히 스물일곱 살이 된다. 나날이 친구가 더 그리워진다.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 따지고 보지 않아도 특별할 게 없기는 마찬가지. 신파이자 흔해 빠진 통속극. 그런데도 나는 대책 없이 이 영화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뻔한 이야기를 전혀 뻔하지 않게 풀어가는 감독 쩡궈샹(증국상)과 얼마든지 뻔해질 수 있는 캐릭터를 단 한 번도 뻔하지 않게 연기하는 배우 저우둥위(주동우)의 팬이 되고 말았다. 아주 가끔 이런 영화를 만난다. 비평과 평론의 외풍을 온몸으로 막아주고픈, 지극히 개인적이고 편파적인 ‘애호’의 대상. 남들이 시시하다고 할지라도 나만은 지지해주고픈, 말하자면 나의 ‘소울메이트’ 같은 영화.

멋진 여성영화이자 섬세한 성장영화

유명한 인터넷 소설을 여성 작가 네 명이 공동 각색했다. 두 명은 안생 편을 들고 두 명은 칠월 편에 서서 함께 토론하며 썼다. 그렇게 쓴 각본을 ‘두 여자의 우정’이 아닌 ‘한 여자의 성장기’로 해석해 연출했다는 감독. “어떤 나이에는 안생에 더 가까웠다가 자라면서 칠월에 가까워지는” 여성의 이야기로, 그렇게 “여성이 자신과 싸우며 스스로를 이해하는 과정”으로 보이길 원했다. 다행히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고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더 좋아졌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세련된 ‘통속극’이자 섬세한 ‘성장영화’이며 무엇보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멋진 ‘여성영화’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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