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모토 하지메 지음
장주원 옮김
메멘토 펴냄
마쓰모토 하지메의 〈가난뱅이의 역습〉 (이루, 2009), 〈가난뱅이 난장쇼〉(이순, 2010),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메멘토, 2017)을 나온 차례대로 읽었다. 세 권의 제목에는 공통적으로 ‘가난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본문을 보면 지은이와 지은이의 친구들은 가난뱅이라는 말보다 더 자주 ‘얼간이’나 ‘멍청한 녀석들’이라는 말로 자신들을 부른다. 궁금증을 풀고자 가장 최근작인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의 원제를 알아보니 실제로 ‘세계 얼간이 반란 핸드북:악희(惡戱)적 장소 만드는 법’이다. 출판사와 번역자가 가난뱅이로 뒤바꾼 일본어 단어(まぬけ)는 사전에 ‘① 바보짓을 함 ②멍청함 ③얼간이’로 나온다.

자학처럼 비치는 명칭에는 항상 역설적인 깨우침이 있다. 예컨대 전태일은 스물한 살 때이던 1969년,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현실에 맞서 싸우려는 목적에서 재단사 친구들을 모아 친목회를 만들었다. 이때 그는 멋있고 과시적인 이름을 물리치고 하필이면 ‘바보회’로 명칭을 정했다. 근로기준법에 8시간만 노동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태껏 그것을 몰랐으니 바보가 아니었느냐?’라는 깊은 각오가 전태일로 하여금 저 이름을 짓게 했다.

지은이는 1974년 도쿄에서 태어나 2001년 호세 대학을 졸업했다. 그가 사회에 첫발을 디뎠을 때, 일본인 모두가 중산층이라는 ‘1억 총중류 사회’는 환상이 되었고, 대신 ‘격차(양극화)사회’가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물려받은 것 없는 청년들은 한순간이라도 페달을 밟지 않으면 소리 없이 쓰러지는 자전거와 같은 반면, ‘갓물주’처럼 “잠깐 일을 쉬거나 몇 년쯤 아무것도 안 해도 저절로 돈이 굴러 들어오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놈”들도 있는 것이다.

‘1억 총프리카리아트(precariat· 실업과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계급) 사회’에서 90%는 가난뱅이로 살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10%는 그런 청년들을 향해 ‘사회를 위해 고생이 되더라도 노력한다→세상이 나아진다→떡고물을 얻어먹는다’라는 설교를 태연하게 늘어놓는다. 대학 시절부터 온갖 소동으로 유명했던 지은이는 이런 설교에 속지 않았다. 그는 비정규직이나 프리터(freeter·아르바이트나 시간제 노동자로 살아가는 청년층)를 하면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라’고 충고하는 설교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모범수냐 문제아냐 그런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은 강제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거야. 그렇다면 탈출해야 하는 거 아냐? 이기는 사람도 없는 경쟁 사회에 휘둘리기는 죽기보다 싫으니 말이야! ‘떡고물을 얻어먹는다’는 부자들이 듣기 좋으라고 내뱉는 말이지. 그렇게 하면 우수한 노예가 될 뿐이야. 그에 비해 ‘하고 싶은 일을 한다→좀 곤란한 일에 부딪힌다→ 어떻게든 된다(무슨 수든 쓴다)’는 생각을 해봐. 이게 세상을 살아가는 일반적인 방식 아냐? 시시한 놈들이 지껄이는 말은 듣지 말고 씩씩하게 살아보자. 우리 가난뱅이가 이 세상을 한바탕 걸지게 뒤집어보자! 축제란 말이다!”

지은이는 호세 대학에 다닐 때, 여러 가지 기발한 시위로 유명했다. 학생들 사이에 ‘학생 식당의 밥값이 비싸면서 양과 질은 형편없다’는 원성이 돌자, 그는 당장 학생 식당을 응징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친구들에게 쌀과 채소를 제공받고, 학교 식당 앞이나 학교 광장에 전기밥솥과 난로를 동원해 카레밥을 만들어 나누었다. 학생 식당으로 몰려가 구호를 외치는 시위에는 시큰둥했을 학생들이 카레밥을 만드는 시위에는 적극 동참했고, 학교 식당을 개선하는 성과를 얻었다.

ⓒ이지영 그림
마쓰모토 하지메는 카레밥을 만들어 축제성 시위 혹은 시위성 축제를 벌였던 최초의 경험에서 굉장히 많은 영감을 받았던 모양이다. 이후 학교를 졸업한 그는 ‘자전거 수거 반대 시위’ ‘월세 시위’ ‘원전 반대 시위’ 등 뚜렷한 목표가 있는 시위는 물론이고 그저 재미있게 놀기 위해 갖가지 시위를 벌일 때마다 광장이나 골목에서 찌개를 끓이거나 생선을 구웠다(운행 중인 지하철 열차 안에서도!). 이렇게 해서 소수의 동료와 함께 노상에서 즉석 유입된 사람들까지 모여서 음식과 술을 나누고 시위에 돌입하는 마쓰모토 하지메 스타일의 시위 형식이 만들어졌다(여기서 유의할 점은, 지은이가 조직한 시위를 한국의 촛불시위 규모와 동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사회운동이나 혁명은 마쓰모토 하지메가 벌이는 ‘난장쇼’의 목표가 아니다. 그는 ‘가난뱅이일수록 만나야 한다’라는 신념 아래, 서로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시위를 벌인다. 이런 전도된 접근은 시위 자체를 새롭게 만든다. 가난뱅이들에게 시위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인적 연대는 물론 정보와 물적 교류를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2005년 도쿄 변두리인 고엔지에 중고 재활용 가게인 ‘아마추어의 반란’ 1호점을 연 다음, 동료들과 함께 12호점까지 확장했다. 시위가 그랬듯이 이 공간 역시 상업적인 목적보다 가난뱅이들의 인적 연대와 정보·물류 교환을 꾀하는 것이 목적이다.

세 권의 책에는 가난뱅이들이 어떻게 시위를 조직하고, 인적 연대를 맺고 활용하며, 어떻게 그들의 근거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경험적인 정보들이 가득하다. 돈 없는 가난뱅이 청년들이 무슨 수단으로 도시에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겠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이나 도쿄 같은 거대 도시는 자본주의 구조상 뜨는 지역과 지는 지역이 동시에 있으므로, 얼마든지 퇴락하는 지역에서 거의 공짜로 쓸 공간을 찾아낼 수 있다.

‘모여야 한다,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마쓰모토 하지메와 그의 동료들이 스스로를 ‘얼간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자기도 모르게 자본주의를 유지시켜주는 노예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얼간이들은 노동과 소비를 거부함으로써 자본주의에 저항한다. 이들이 중고 재활용 가게를 차린 까닭도 신제품을 사지 않는 것이 ‘반체제 행동’, 곧 ‘봉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을 평가해주어야 할 지점은, 얼굴을 맞대는 공간보다는 인터넷 공간을 선호하고 혼자 스마트폰을 즐기는 청춘이 대세인 이 시대에 ‘모여야 한다,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들의 실천은 순진 소박하기는커녕 시대를 거스르는 굉장히 격렬한 사회운동이다. 모리 요시타카의 〈스트리트의 사상〉(그린비, 2013)은 1990년대 이후 공공영역의 담지자였던 지식계와 대학이라는 두 축이 무너지면서부터, 생활과 거리에 밀착한 이런 ‘대안 좌파’가 나오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기자명 장정일 (소설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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