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는 11월28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었다. 이번에도 방송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과방위에 소속된 한 국민의당 의원은 “민주당이 사실상 사보타주(태업)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자유한국당·바른정당·국민의당은 한목소리로 방송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그런데 야 3당이 처리를 요구한 방송법 개정안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다. 민주당이 야당 시절 발의한 법안에 민주당은 소극적인 데 비해 야당이 공격적으로 나서는 이 광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일명 ‘언론장악방지법’이라 불린 방송법 개정안은 지난해 7월 발의되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공영방송 장악이 가속화되자 이를 제어하기 위해 방송사 지배구조를 개혁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개정안의 골자는 공영방송 이사회를 여당 추천 7인, 야당 추천 6인으로 구성하고 사장 선출 시 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해 여야 동의를 두루 받은 사람이 공영방송 사장에 임명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행 방송법은 이사 추천 규정을 따로 두고 있지 않지만, KBS 이사회와 MBC 사장 임면권을 가진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관례에 따라 각각 여야 추천 이사가 7대4, 6대3으로 구성된다. 사장은 과반수 찬성으로 임명한다.

지난해 7월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한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민주당은 2012년 개원한 19대 국회부터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담은 방송법 개정에 주력해왔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이 법안에 반대했다. 자유한국당이 태도를 바꾼 건 정권이 바뀐 이후이다. 야당 추천 이사를 늘리고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개정안은 야당이 된 자유한국당에 이제 유리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8월22일 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어느 쪽 거부도 받지 않는 온건한 인사가 사장에 선임되겠지만, 소신 없는 사람이 될 가능성도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방송법 개정안을 재검토해보라는 지시였다. 직후 열린 민주당 워크숍에서 과방위 간사인 신경민 의원은 “대통령의 지적이 적절하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을 더 논의해보겠다”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8월 발언에도 ‘맥락’은 있다. 방송법 개정안이 방송 독립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여야 비율만 조정했을 뿐 공영방송 이사회 이사진을 국회에서 추천하도록 해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발의 당시부터 언론·시민사회에서 우려를 표명했고 언론노조는 최근 여야 구도가 반영되는 이사회 구성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개정안 재검토 주문

민주당 과방위 소속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자유한국당이 방송법 개정안을 원안 그대로 받겠다는 게 아니다. 개정안에 노사가 동수로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는 조항이 있는데 독소 조항이라고 부르면서 반대한다. 이 조항을 양보하면서까지 목을 맬 필요가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논의 과정을 잘 아는 한 국민의당 의원은 “사실 작년에 법안을 공동발의할 때 자유한국당에서 반대를 하면 편성위원회 조항은 빼기로 당시 야 3당 간에 내부 방침을 세웠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제 와서 편성위원회 원안 고수를 핑계로 논의를 지연시키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방송법 개정안과 공영방송 정상화는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방송법 개정안 통과가 지연되면서 MBC는 여당 추천 이사의 동의만 얻는 ‘관행대로’ 사장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기자명 김연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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