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남학생이 불만을 털어놓았다. “중학교 때까지는 몰랐는데, 고등학교 오니까 공부 잘하는 애들한테 특혜가 너무 많이 가니까 짜증나요.” 그 학생이 다니는 학교는 시험 등수대로 교실 내 자리를 배치했다. 학교 안의 시설 좋은 독서실을 사용할 수 있는 인원도 전교 30등까지로 제한했다. 교내 대회 참가를 독려받는 학생들은 언제나 내신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었고, 그들을 위해 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같은 학교에서 자기가 공부를 못하니까 이런 대접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수긍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이 학생은 그게 용납되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가 양아치 같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해당 학교가 이런 전략을 취한 것은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였다. 이 학교는 지역 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낮은 평판을 받아왔다. 한 여학생은 이 학교에 배정되자 “인생이 망가진 것 같다”라며 울었다. 학교도 이를 모르지 않았고, 지역 내 기피 학교를 탈피하기 위해 ‘진학 실적 올리기’를 택했다. 한정된 자원을 공부 잘하는 소수 학생에게만 투자하는 것이다. 모든 학생에게 공평한 교육 기회를 줘야 하는 평등 원칙과 어긋나긴 하지만, 지역의 신뢰를 회복하고 성적 좋은 학생을 유치하고 싶은 학교의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학교 교육의 목표가 사실상 소수를 위한 맞춤형으로 바뀌면서 많은 낙오자가 생겼다. 중학교에서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굳이 이 학교로 진학한 학생들도 있었다. 공부를 할 의지가 없었든 패자부활전을 노렸든, 이들은 입학하고 3년간 학교로부터 어떤 새로운 기회도 투자도 받지 못한 채 내버려졌다. 학교에서 투자받지 못하는 학생들은 공교육의 빈칸을 사교육으로 채우고 있었다.

ⓒ김보경 그림

이렇게 진학 실적으로 학교 이미지를 쇄신해 성적 좋은 학생을 유치하고자 하는 일은 서울의 목동·대치동 같은 곳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지방의 경우 그 욕구가 더 심하게 나타나기도 한다. 이른바 ‘SKY’나 서울 내 대학 진학 실적을 홍보하는 몇몇 지방 고등학교는 입학 설명회에서 성적 상위권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특혜를 공공연히 말하곤 한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위해 방과후 수업을 별도로 개설하고, 동아리 활동을 지원하며, 유수의 대학에 진학하면 학비를 지원한다는 식이다. 지자체가 나서서 차별을 장려하는 경우도 있다. 

‘명문고’가 되고 싶은 고등학교의 욕망

그런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들은 “예산을 이렇게 분배하면 아이들한테 잘못하는 것이다”라고 죄책감을 토로한다. 또 “SKY 진학해서 여길 떠날 아이들이 아니라 이곳에 남아서 지역 경제를 이끌어갈 아이들에게 교육이 더 투자되어야 하는 것인데 예산 집행이 거꾸로 됐다”라며 안타까워하는 교사도 적지 않다. 그들은 해마다 교문 위에 명문대 입학생 명단이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면서 이 아이들이 다시 지역에 돌아와 자신이 받은 혜택만큼 지역을 위해 일해주기를 바란다. 현실은 대학 졸업 후 돌아와서 지역을 위해 할 수 있는 직업적 인프라조차 거의 없다.

공교육의 빈자리를 채우는 사교육 역시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받기가 쉽지 않다. ‘명문대’에 가(보내)고자 하는 학생(학부모)의 욕망과 그곳에 학생을 많이 보내는 ‘명문고’가 되고 싶은 고등학교들의 욕망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된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전부터 계속 학력에 의한 차별을 받고 있다.

기자명 해달 (필명·대입 학원 강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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