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책을 사서 읽고 자기 시간을 써서 독서토론을 한다. 그러고는 회사에다 돈을 낸다. 넉 달 동안 네 번 모이는데 싼 상품은 19만원, 비싼 상품은 29만원이다. 그 돈을 낸 고객도 정해진 시간까지 독후감을 내지 않으면 토론에 못 들어가게 막는다. 요즘 승승장구하는 독서토론 스타트업 ‘트레바리’의 비즈니스 모델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 스토리처럼 들린다. 현란한 신기술의 경연장인 스타트업 세계에서, 트레바리는 ‘책과 모임’이라는 고색창연한 아이템으로 성공 모델을 개척하는 중이다.

ⓒ시사IN 양한모

1년에 20만원짜리 읽을거리를 파는 회사에 있다 보니, 손에 쥐는 물건 하나 없이 그저 책을 같이 읽겠다고 돈을 내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마침 제안이 들어왔다. 여름부터 트레바리에서 독서클럽 두 개를 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반년 관찰로 비밀을 알아냈다고 할 수는 없어도 흥미로운 포인트는 많았다.

누가 이곳에 올까. 남자보다는 여자가 많다. 30대가 주력이다. 29만원이 부담 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크게 무리는 아닐 정도는 번다. 여기에 오는 이유로 가장 자주 들은 말은 이랬다. “책 읽고 얘기 나눌 사람을 주위에서 찾기가 정말 어렵다. 그 정도 돈을 내고 올 사람들이라면 책도 토론도 진지하게 대할 것 같아서 마음이 움직였다.” 가격은 장벽이 아니라 유인책이 된다.

트레바리는 핵심 상품의 품질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책과 독서토론과 네트워킹의 품질은 근본적으로 회사 밖에서 결정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꺼이 이 회사에 돈을 낸다. 손에 잡히지도 않고 품질을 예측하기도 어렵지만, 그 불확실성이 오히려 매력이 된다. 사람들은 이제 제품이 아니라 경험을 산다. 예측 가능하고 품질이 균일한 경험은 돈을 낼 만큼 매력 있지 않다.

활자 매체는 당연히 정보를 파는 상품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면 활자 매체의 독자들도 사실은 경험을 사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는 너무 예측 가능하지는 않나? 포장을 뜯지 않고 쌓여가는 책은 몇 개나 될까? 우리는 〈시사IN〉 독자여서 즐겁거나 뿌듯하다는 경험을 주기 위해 무엇을 했을까? 트레바리를 하는 날이면 ‘〈시사IN〉이 어떤 경험을 독자에게 주고 있나?’라는 질문이 오래 맴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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