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11일도 변함없었다. 중국 친구들은 2~3주 전부터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타오바오를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이날 사야 할 물건 중 빠뜨린 것은 없는지, 평소 비싸서 못 샀던 제품이 혹시 할인에 들어가는지 등을 꼼꼼히 점검했다. 쇼핑 장바구니 코너를 드나드는 진지함이 마치 시험을 코앞에 둔 수험생 같았다. 컴퓨터를 전공하는 한 친구는 이날 공짜로 받고 싶은 사은품 가방이 있다며 자정(0시0분 정각)에 해당 상점을 ‘미친 듯이’ 자동으로 클릭하는 프로그램까지 짜놓았다. 친구야, 평소에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해보렴….

11월11일 정확히 자정이 되면 슬슬 SNS에 각종 쇼핑 인증샷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아이템은 중국산에 한정되지 않는다. 한국 화장품부터 미국과 유럽의 각종 명품 브랜드까지 대폭 할인된 가격에 산 뒤 기뻐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 항저우 알리바바(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본사에서 일하는 친구는 긴장과 환희가 뒤섞인 회사 내부 현장을 본인 위챗 모멘트에 올림픽 생중계하듯 찍어 올렸다. ‘40분12초, (매출액) 500억(위안) 돌파.’ ‘2시간15분, 800억 돌파!’ ‘저녁 9시30분, 1500억 돌파!’

ⓒ연합뉴스올해 광군제 쇼핑 이벤트 매출은 1682억 위안을 기록했다.

중국에서 11월11일은 원래 광군제(光棍節·솔로데이)였다. 숫자 ‘1’ 네 개가 외롭게 서 있는 독신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데서 유래했다. 수억명이 쇼핑을 하겠다며 이날 자정 전부터 휴대전화를 붙들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채 안 되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2009년 ‘솔로의 날 쇼핑 이벤트’를 벌인 게 시초다. 당시 애인이 없는 직원들이 “솔로의 날 실컷 먹고 마시며 배나 채우겠다”라고 하는 대화를 우연히 듣고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연인들을 위한 소비의 날은 많지만 독신을 위한 소비의 날은 아직 없다는 데서 마윈은 그 가능성을 봤다. 2009년 당시 타오바오의 첫 광군제 쇼핑 이벤트에 참여한 판매상은 27개뿐이었다. 하지만 당일 매출은 5000만 위안(약 83억4200만원)을 넘었다. 이후 광군제 이벤트 매출은 가파르게 올라 9년째인 올해는 1682억 위안(약 28조 3000억원) 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작년 기준 한국 전자상거래 매출 규모 절반에 해당하는 액수를 중국에선 하루 만에 달성했다.

중국 친구들이 단순히 매출액 때문에 알리바바를 찬양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별것 아니던 광군제를 중국 전역의 축제일로 만든 알리바바의 추진력, 쇼핑에 재미와 긴장감을 불어넣는 알리바바의 ‘밀당’ 스킬을 높이 샀다. 11월11일 당일에 쓸 수 있는 적립금인 훙바오(紅包)를 받을 수 있는 게임 등이 그 예다. 할인 행사 전 가격을 미리 올려놓는 상인들의 꼼수를 알면서도 훙바오를 모으다 보면 뭐라도 꼭 하나 사게 된다.

알리바바는 광군제를 시스템 및 서버 점검 기회로 활용

그렇다고 알리바바가 수익 창출에만 목을 매는 것은 아니다. 광군제를 클라우드시스템 및 서버 점검, 판매 데이터 수집, 물류 능력 점검의 기회로 활용한다. 마윈은 “사실 광군제는 우리에게 별다른 수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소비자와 상인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우리에게는 기술력과 인재 조직력의 향상을 가져다준다”라고 말했다. 마이크 에번스 알리바바 사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광군제는 유통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엿보는 기회의 날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언론에 ‘광군제는 되고 왜 코세페(코리아세일페스타)는 안 될까’라는 기사들이 나온다. 민간이 아닌 정부가 주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대부분이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진 않는다. 민간이 주도했어도 재미와 철학이 없다면 ‘페스타(축제)’ 분위기는 나지 않는다. 중국 광군제는 바다 건너에서 보기만 해도 재미있고 감탄스럽다.

기자명 허은선 (캐리어를끄는소녀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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