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야심한 시각, 저자가 “쓰고 싶은 게 있는데” 하면서 몇 페이지의 짧은 원고를 보내왔다.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한 원고의 도입부였다. 입을 뗀 데 불과한 분량의 초고였지만 즉시 이해했다.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그리고 이 얘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성은 가난하다. 여성은 같은 일을 해도 더 적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은 저평가된다. 세계적으로도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한국은 당당히 성별 임금 격차 1위에 빛난다. 여성 임금이 낮은 이유를 조사했을 때 그 결과가 “그냥”이었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이 지독한 차별은 대수로운 이유도 없이 그저 여성이 짊어져야 하는 일상이다.

이민경 지음
봄알람 펴냄

하지만 이 이야기를 꺼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성별 임금 격차에 대해 말하려고 하면 당장 부딪히는 흔한 반론들이 있다. “여자가 능력이 없어서 적게 받고 남자가 중요한 일을 해서 많이 받는 것이지 성차별과 상관이 없다”가 대표적이다. 가뜩이나 차별받아서 불쾌하고 가난하고 피곤한 여자들이 이런 수준 이하의 인식을 뚫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 얄궂지만 이게 현실이다. 

이 책은 저자의 전작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과 사용법이 같다. 전작이 공기처럼 만연한 여성혐오 속에 살아가는 여성들이 마음을 다잡고 목소리를 내도록 했다면, 이 책은 임금 차별이라는 실존하는 거대한 문제 속에서 그 차별의 크기에 짓눌리거나 길을 잃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는 언어를 준다.

‘임금’에 초점을 맞춘 무거운 주제지만 책은 가볍다.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 잃어버린 임금을 찾아보자”라며 직업 세계, 취업 시장, 학교, 가정까지, 사람들이 지내온 각 장소를 되짚어간다. 모두가 말하지 않았을 뿐 분명히 느꼈을 부조리들이 현실의 임금 불평등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기자명 이두루 (봄알람 편집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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