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기까지 19년이나 걸렸다.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경비소대 241 GP에서 김훈 중위가 숨졌다. 아버지 김척씨(예비역 중장)와 정희상 〈시사IN〉 기자의 진실 찾기도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군 당국은 3차례에 걸친 조사에도 김 중위가 자살했다며 순직 결정을 미뤘다. 대법원과 국민권익위원회·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은 ‘자살로 단정할 수 없다(진실 규명 불능)’고 보았다. 그사이 김훈 중위 유해는 아버지가 1군단장으로 재임하며 관할했던 헌병대 영현창고에 방치되었다.

지난 8월 국방부는 19년 만에 순직 결정을 내렸다. 김훈 중위의 현충원 안장식이 열린 지난 10월28일 김척씨는 정 기자에게 “고맙다”라고 말했다. 정 기자는 “순직 결정을 넘어 진실을 밝혀야죠”라고 답했다. 김훈 중위의 어머니 신선범씨는 아들의 유골함을 들고 오열했다.

ⓒ시사IN 신선영19년 동안 경기도 벽제 1군단 헌병대 영현창고에 보관됐던 김훈 중위의 유골함이 생전 그가 다닌 육군사관학교에 도착해 추모 미사가 열리는 성당으로 들어서고 있다.
ⓒ시사IN 신선영1998년부터 김훈 중위 사건을 취재 보도한 정희상 〈시사IN〉 기자가 헌화하고 있다.정 기자는 〈시사IN〉에서만 22차례에 걸쳐 김훈 중위 사건을 보도했다.원 〈시사저널〉 기사까지 합치면 책 한 권 분량이다.
ⓒ시사IN 신선영국립대전현충원 안장식에서 김훈 중위의 유골함이 안치된 후 묘지 옆에 태극기가 꽂힌 화분이 놓였다.묘소 번호는 58861번이다.
ⓒ시사IN 신선영안장식이 모두 끝난 후 김척씨와 김훈 중위 육사 동기생(52기) 및 군 관계자들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경례 순간 김척씨는 눈물을 꾹 참았다.

기자명 신선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ssy@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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