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퍼블리카(ProPublica)
설립 : 2008년규모 : 약 100명(편집국 50명)출판 방식 : 웹사이트, 앱독자 : 홈페이지 월간 순방문자 220만명 해외 독자 비율 15%재정 : 후원금 운영 2016년 후원금 총액 1723만 달러 2016년 후원자 총 2만6000명수상 : 2010 퓰리처상 탐사보도 부문 2011 퓰리처상 국내보도 부문 2013 피보디상 2015 에미상 최고의 탐사보도 롱폼 부문 에미상 최고의 리서치 부문2016 퓰리처상 해설보도 부문2017 퓰리처상 공공보도 부문 피보디상 라디오/ 팟캐스트 부문 피보디상 웹 부문 외 350개 이상
미국 뉴욕 맨해튼 6번가 155번지에는 1928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 있다. 13층에 가면 〈프로퍼블리카〉 로고와 마주하게 된다. 흰 벽에 푸른 돋보기로 ‘공공(Public)’의 머리글자 ‘P’를 확대한 로고가 걸려 있다.
사무실에는 트로피 수십 개가 놓여 있다. 2008년 설립된 이후, 지난 9년간 〈프로퍼블리카〉가 걸어온 길을 증명한다. 〈프로퍼블리카〉는 2010년 온라인 언론사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데 이어 퓰리처상만 4개, 에미상 2개, 방송·온라인 매체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보디상 3개를 수상했다. 이 외에도 탐사보도, 롱폼 저널리즘(Long-form Journalism:1000자 이상의 긴 기사), 데이터 저널리즘, 인터넷 보도 부문에서 각종 언론 관련 상을 휩쓸고 있다.
단기간에 명성을 쌓은 〈프로퍼블리카〉는 놀랍게도 전혀 수익을 내지 않는, 100% 후원으로 운영되는 비영리 매체이다. 처음 3년간은 유일한 후원자인 금융가 허버트 샌들러·매리언 샌들러 부부한테 연간 1000만 달러(약 113억4500만원)를 후원받았다. 이후 후원자가 늘어나, 2017년 현재 샌들러 부부의 후원금이 전체 후원금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로 줄었다.
〈시사IN〉은 탐사보도의 강자로 자리 잡은 〈프로퍼블리카〉의 스티븐 엥겔버그 편집국장을 만났다. 엥겔버그 국장은 〈뉴욕타임스〉에서 18년간 일하며 1995년 퓰리처상을 받은 탐사보도 기자 겸 편집자로, 2008년 〈프로퍼블리카〉가 만들어질 때 편집팀장(Managing Editor)으로 합류했다. 그는 2013년부터 편집국장을 맡고 있다.
2018년이면 10주년을 맞이한다. 그동안 〈프로퍼블리카〉가 이룩한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인가?
미국 언론계에서 인정받았고, 각종 상도 받았다. 〈프로퍼블리카〉의 창립자가 말했듯이, 우리의 목표는 상을 받는 게 아니다. 〈프로퍼블리카〉의 성과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기사를 썼다는 것이다. 텍사스에 사는 한 남자가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을 다룬 기사 덕분에 그는 감옥에서 석방됐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간호사들을 감독하는 문제를 다룬 연재 기사로 간호위원회 위원들이 전원 해고됐고, 새로운 규정이 도입됐다. 제약사들이 의사들의 연설문을 써주고, 의사들은 그 대신 제약사의 약을 처방해주는 관행을 폭로하는 기사도 썼다. 이 외에도 변화를 이끌어낸 많은 기사들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기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궁금하다.
모든 것은 기자들로부터 시작된다. 〈프로퍼블리카〉는 다른 누구도 하지 않을 이야기를 취재한다. 우리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가 이미 쓴 기사를 조금 더 잘 쓰거나 약간 다르게 바꿔서 쓸 생각이 없다. 기획 단계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 한 기사를 쓸 때 보통 여러 달이 걸린다. 기자들이 매우 깊이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취재 단계부터 디자인팀과 소셜 미디어팀이 합류해 협업을 한다. 디자인은 온라인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사람들이 우리 기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최근에는 동영상과 웹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인력을 추가로 고용했다. 동영상을 만드는 내부 팀을 갖춘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는 외부 전문가와 협력해서 동영상을 만들었다. 앞으로 동영상은 우리 기사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 더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소셜 미디어팀은 어떤 구실을 하나?
소셜 미디어는 온라인 매체에 매우 중요하다. 소셜 미디어로 기사를 퍼뜨리기도 하고, 소셜 미디어를 취재에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지난 9년간 우리가 알아낸 아주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주요 취재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커뮤니티 개발팀’을 따로 구성했다. SNS를 통해 우리가 취재하는 영역의 사람들을 찾고, 연락하고, 조직해서 커뮤니티를 만들었다. 이 방식으로 우리는 많은 성공을 거뒀다.
지난 10여 년간 〈프로퍼블리카〉가 겪은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계속해서 넘어야 하는 산이 있다. 기사의 퀄리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탐사보도는 정말 어렵다. 다른 언론사에서는 탐사보도를 시도하다가 잘 안 되면 “관둬. 인물 기사 좀 쓰고, 특집 기사 좀 쓰자”라고 한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탐사보도를 하다가 안 되면, 그냥 못하는 거다. 그게 가장 큰 난관이다.
그렇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로 소액 기부자들이 크게 늘었다. 10달러, 20달러, 100달러씩 매달 기부하겠다는 사람들이 늘었다. 〈프로퍼블리카〉가 처음 시작했을 때는 첫 기부자이자 창립자인 허버트 샌들러·매리언 샌들러 부부의 기부금에 100% 의지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좋은 기사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금은 여러 고액 기부자와 수천명의 소액 기부자 덕분에 창립자 부부의 기부금 비율이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프로퍼블리카〉는 기부자들이 원하는 기사를 쓰려고 노력하는가?
〈시사IN〉 같은 잡지도 광고주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기부자들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논쟁적인 주제를 취재하는 독립심과 용기다. 어떤 고액 기부자에게도 우리가 작성하고 있는 기사에 대해 미리 말해주지 않는다. ‘돈이 어디서 오는가’와 ‘저널리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철저히 구분하려 한다.
그렇다면 편집국장이 경영 문제에 전혀 개입하지 않는가?
나는 편집국장 겸 공동 CEO다. 우리는 편집국과 모금의 분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편집국 사람들 중 유일하게 모금에 관여한다. 그렇다고 협상에 직접 나서는 건 아니고, 잠재적인 기부자들을 만나 우리가 하는 일을 설명한다. 또 다른 공동 CEO인 딕 토펠이 우리 회사의 최고경영자다. 모금, 기부자와의 관계, 재단 관련 업무는 그의 소관이다. 기자들과 편집자는 기부자들을 절대 만나지 않는다.
앞으로도 100% 후원 모델을 유지할 계획인가?
사실 나는 구독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좀 더 지속성이 있다고 본다. 〈시사IN〉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10년 전만 해도 세상에 없었던 매체다. 당시로서는 기부 모델이 최선이었다. 미래에는 구독과 기부 혼합 모델이나, 구독 중심 모델로 변화할 가능성도 있다. 10년 전 〈프로퍼블리카〉 창립 당시의 저널리즘 환경을 돌아볼 때 지금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처음 〈프로퍼블리카〉에 왔을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인터넷이다. 나는 여기 오기 전까지는 프린트 미디어(종이 신문)에서만 일했다. 2008년만 해도 신문사마다 웹사이트가 있었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워졌다. 우리 모두 웃으면서 “우리는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데, 140글자로 할 수 있는 게 있겠나?”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는 트위터가 사람들이 긴 탐사보도 기사를 읽도록 하는 훌륭한 수단이라는 걸 몰랐다. 두 번째는 데이터 저널리즘의 진화다. 〈프로퍼블리카〉를 시작할 때만 해도 데이터 저널리즘이 엄청나게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초창기 멤버 중 데이터 저널리스트는 단 한 명이었다. 이제는 5~6명이 여러 방면에서 데이터 저널리즘을 전담한다. 정말 큰 변화다.
〈시사IN〉과 〈프로퍼블리카〉가 10년 후에도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언론이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독자에게 필요한 보도를 하는 것이다. 언론이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놀랍고 특이하고 특별한 것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저널리즘의 미래다. 저널리즘의 미래는 탐사보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