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타이틀을 달고 있는 전문가와 대화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느끼는 답답함이 있다. 세부적인 이야기로 들어가면 “그 부분은 내 전공이 아니라서 내가 이야기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라며 꽁무니를 빼는 식이다. 그때마다 묻고 싶은 질문을 삼켰다. “아니, 그걸 전공했으면 당연히 이런 부분도 궁금하지 않은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왜 알아보지 않았나?” 학위는 학문적 소심함의 핑계처럼 보였다.

〈훔볼트의 대륙〉울리 쿨케 지음
최윤영 옮김을유문화사 펴냄
‘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이 이어지지 않는 것일까?’ ‘왜 학문적 관심이 확장되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지녔을 무렵 만난 이름이 독일의 지리학자·지질학자·천문학자·생물학자·광물학자·화학자 그리고 해양학자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였다. 그는 학문계의 ‘알렉산더 대왕’이었다. 그의 이름을 딴 도시가 미국에서만 여덟 곳이고 카운티도 아홉 곳이나 된다.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을 비롯해 그와 그의 형 이름을 딴 학교만 열여덟 개다. 동물 열아홉 종과 식물 열다섯 종도 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의 이름을 딴 산맥, 봉우리, 공원, 광산, 항만, 호수가 수도 없이 많고 심지어 유성도 있다.

훔볼트는 학자 중에서 가장 탐험가 기질이 강했고, 탐험가 기질이 있는 사람 중에 가장 학문적이었다. 그의 탐험 하나하나가 기존 학설을 뒤집었다. 휴화산인 피코 데 테이데 산을 등정하고 베르너의 ‘수성론(지구가 완전히 물로 뒤덮여 있다가 물이 빠지면서 퇴적되어 암석이 생겼다는 이론)’을 반박하고 ‘화성론(암석은 화산활동의 결과라는 이론)’을 세웠다.

모두가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 아마존 밀림에 들어갔을 때 그는 남미의 두 큰 강 아마존강과 오리노코강의 상류가 만나는 자연 운하의 존재를 확인하러 들어갔다. 이를 기초로 ‘파나마 운하’ 아이디어를 토머스 제퍼슨 미국 대통령에게 전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탐험을 했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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