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벽에 붙어 잤다〉

최지인 지음, 민음사 펴냄


ⓒ김영건 제공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매니저는 ‘3차 성징’을 겪으며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그린 최지인 시인의 〈나는 벽에 붙어 잤다〉를 추천했다.

스물아홉 살 때 술자리에서 친구가 말했다. “넌 지금 3차 성징을 겪고 있는 거야.” 귀가하면 초파리들이 멍든 바나나 주위를 맴돌았고, 읽지 않은 책들이 쌓여만 가던 시절이었다. 오랫동안 방을 정리하지 않았다. 조용한 집에 혼자 있는 걸 견디지 못해 술을 자주 마셨다.

친구의 얘기인즉슨 ‘3차 성징’이란 20대 중·후반에 겪는 내적 성징으로서 사회생활을 앞둔 부담감, 취업의 곤란, 재정의 궁핍 등등이 뒤섞여 막다른 벽 앞에 놓인 상태를 말한다. 이 시기를 무사히 넘기면 좋든 싫든, 우리는 내적으로 다소 무감각한 어른이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는 이러한 막다른 벽을 마주한 청춘의 얼굴을 그린 시집이다. 청춘은 피곤하다. 거주지를 옮겨 다니며 월세에 시달리고, 기약 없는 이력서를 옮겨 쓰는 와중에 미간이 녹슬어간다. 청춘은 죄책감에 시달린다. 나에게 헌신하는 부모가 있음에, 우두커니 나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불가능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이후’)했음에, “죄를 고백하고 죗값을 치렀을 땐 이미 늦었”(‘이력서’)음에. 그리하여 청춘은 벽에 붙어 잔다. 가장 늦게 집에 들어와, 옆에 누운 이의 얼굴을 외면한 채 비좁은 잠 속으로 도망친다.

그때 친구가 이렇게 말해줬다면, 난 조금이라도 일찍 귀가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아직 젊고 앞으로도 젊을 거야 그 때문에 고통받을 거야(‘기쁨과 슬픔을 꾹꾹 담아’).” 〈나는 벽에 붙어 잤다〉는 내가 올해 가장 기다렸던 시집이다, 라고 썼다가,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렸던 시집이다, 라고 쓰기로 했다. 내 말이 조금 이상한가. 스물아홉의 내게,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늦게 귀가해야 했던 그때의 내 방에 이 책이 놓여 있었다면 조금 나았을까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정지돈 지음, 스위밍꿀 펴냄


ⓒ차경희 제공차경희 해방촌 문학 서점 ‘고요서사’ 대표.

한국 소설은 재미없고 심각하기만 하다는 말이 있다. 물론 나는 이 말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나와는 달리 이 말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혹은 연휴에 읽을 재미있는 소설을 찾는다면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를 추천한다. 이 소설의 미덕 중 하나가 ‘재미’이기 때문이다.

정지돈 작가는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조금 다른 존재감을 보여왔다. 풍부한 텍스트 자료를 작품에 적극 인용하고 녹여내는 스타일에 대해 평가가 나뉘지만, 그런 반응도 독자들이 그의 소설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뜻으로 여겨진다. 문학상 수상 이력을 보면 평단의 관심과 인정도 얻은 듯하다.

독특한 제목의 이번 소설에도 어쩐지 달라 보이는 그의 스타일이 드러난다. 북한이 무너지고 일본 열도가 가라앉은 이후의 한반도가 배경이다. 총기 소지가 합법화된 2063년 대한민국을 그렸다. 난민이 넘쳐나고 이미 중앙정부의 통제가 서울과 수도권 밖으로는 미치지 못한다. 어디에서든 총격전이 벌어진다. 버스 운전기사인 짐이 친구 안드레아의 부탁으로 북한을 거쳐 만주로 가는 길에 나선다. 아랍인으로 위장해 남파됐던 북한 간첩이었다가 전향 후 문명교류연구소의 학자로 살아온 무하마드를 탈출시키는 일에 운전기사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몇 문장으로 압축한 이 줄거리가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작가는 힘주지 않고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끌고 간다. 이 소설의 두 번째 미덕이 바로 이것이다. 상상으로 구축한 디스토피아적 세계를 다소 ‘무력함’마저 느껴질 정도로 힘을 빼고 이야기한다. 정지돈 작가는 굳이 문학상 수상 이력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뭔가 있어 보이는 작가’다. 그는 그런 시선과 기대를 의식하지 않는 것처럼 점점 힘을 빼는 듯하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젊은 한국 소설이 지닌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긴 연휴 동안 한반도 정세에 대한 설익은 생각을 풀어내며 시간을 보내도 나쁘지 않겠지만, 누군가 잘 짜서 제시한 한국의 미래 모습을 읽어도 흥미로울 것이다. 짐은 과연 무하마드를 만주로 무사히 데려갈 수 있었을까? 짐이 운전하는 도요타의 미니밴에 함께 올라타보자.



〈생각의 기쁨〉

유병욱 지음, 북하우스 펴냄


ⓒ김종원 제공김종원 ‘51페이지’ 대표.

무언가 생각하는 게 기쁜 적이 있었나. 우리 삶에서 ‘생각’이란 행위는 긍정보다 부정적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더 많다. 회사 업무, 자녀 교육, 어제 다툰 연인, 명절 가족 선물 및 잔소리(‘결혼 안 하냐?’ ‘취업은?’ 같은) 대처법…. 이처럼 생각은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행위이지만 막상 즐거운 생각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회사원에서 동네서점 주인이 된 지금도 매출 달성이니 새로운 기획이니 마케팅 따위에 치이며 더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생각 스트레스’에 둘러싸여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중 〈생각의 기쁨〉을 만났다. “생각의 기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끌렸다.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일은 고민의 연속이다. 어떻게 하면 책을 잘 소개하고 팔 수 있을까? 어떤 모임을 기획하면 손님들이 좋아하고 지갑을 열까? 늘 미래에 대한 스트레스부터 생각하지만 사실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결국에는 과정이 즐거울수록 좋은 결과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고, 그럴 때면 설령 결과가 좋지 못해도 얻는 교훈이 컸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깊게 파려면 일단 넓게 파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느 영역이 ‘쑥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이 생각보다 짜릿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렇게 자신만의 깊이가 조금씩 생기는 거죠. 여유가 있을 때 여기저기 삽을 찔러보고, 의외로 깊이 들어가는 지점을 확인하고, 시간을 들여서 파 내려가는 거죠(〈생각의 기쁨〉 중에서).” 

일상을 보내는 일도 마찬가지다. 소설을 주로 봤다면 가끔은 에세이를, 운동을 취미로 삼고 있다면 가끔은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는 식으로 시선의 폭을 확장하다 보면 의외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연휴는 반복되는 평범하고 바쁜 일상에서 잠시 피해 있기 좋은 시기다. 이왕이면 책과 함께 ‘생각의 기쁨’을 잠시나마 가져보면 어떨까.



〈세 여자〉 

조선희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류소연 제공류소연 ‘달리, 봄’ 대표.

조선희의 소설 〈세 여자〉는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시작한다. 탁족(濯足)을 하고 있는 세 젊은 여자의 흰 옷과 해사한 얼굴들이 햇빛을 받아 싱그럽게 빛난다. 사진 속 세 여자는 주세죽·허정숙·고명자. 어느 책 한 귀퉁이에선가 스쳐 지나갔을 듯, 그러나 귀에 익지는 않은 이름들이다. ‘20세기의 봄’이라는 부제나 사진 속 젊은 날의 따스함은 그들 앞에 펼쳐지게 될 파란만장한 삶을 다독이는 듯하다.

세 여자는 식민지 조선의 공산주의 혁명가들이다. 여성 혁명가라니. 여성이 단발을 한다는 것조차 매우 급진적이었던 때, 세상을 향해 자신을 곧게 세우고 돌진한 여성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여성이 여전히 전근대적 가족제도 안에서 숨죽이고 살아가던 시대에 그들은 가족을 벗어나 국경을 넘으며 자신의 길을 내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에 투신했다. 100년 전 식민지 조선에서 튀어나온 그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사상을 나눈 동지와 사랑에 빠졌고,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놓았다. 어느 막다른 골목에서 그중 누군가는 타협을 했으며, 누군가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시대의 껍질을 뚫고 나온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삶을 선택했는지 따라가며 함께 느끼는 것만으로도 이 소설은 충분히 짜릿하다.

소설이지만 사실과 기록에 입각해 쓰였다. 그들이 투신했던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은 남한에서는 ‘지워진 역사’이고, 그마저도 우리는 박헌영 같은 남성 혁명가들의 이름으로 기억한다. 남성 혁명가들의 이름 뒤에 아내나 조력자로 축소되어온 그들의 일대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데 소설이라는 형식이 잘 맞아떨어졌다. ‘주세죽의 남편 박헌영, 허정숙의 남편 임원근, 고명자의 애인 김단야’ 세 남자의 이야기와 식민지 조선을 둘러싼 역사도 세 여자의 행적을 따라가며 다시 쓰인다.

세 여자가 택한 길과 그들 삶의 마침표는 각기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긴긴 겨울 끝에 오는 봄을 꿈꾸었다. 가장 절망적인 시대였지만 역설적이게도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희망도 그만큼 컸던 때였다. 20세기의 봄은 끝내 도래하지 않았다. 세 여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절망하다가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또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봄을 꿈꾸는 나와 동시대의 사람들이 겹쳐진다. 우리는 시간을 초월하여 이야기를 통해 만난다. 



〈우리들의 하느님〉

권정생 지음, 녹색평론사 펴냄


은종복 ‘풀무질’ 대표.

전쟁이 나면 누가 죽을까? 한국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은 누구일까? 전쟁을 일으킨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대부분 죽는다. 한국은 1945년 해방된 뒤로 평화로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다시 전쟁 위기라고들 말한다. 명절에 위기를 바라보니 더 막막해진다.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권정생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이 땅에 미군은 점령군으로 왔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는데 해방이 된 뒤에는 그 자리를 미제국주의자들이 차지했다. 이 땅에서 평화를 이루려면 미군은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하고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없애야 하고 군대도 없애야 한다. 한반도 남녘은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하고, 한반도 북녘도 핵무기를 없애고 군대를 없애야 한다. 한마디로 ‘거짓 애국자’가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내용 탓일까. 〈우리들의 하느님〉은 한동안 국방부 불온도서로 낙인이 찍혔다. 나는 이 책이야말로 민주주의 교과서라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군대를 없애자고 말하면 미친 사람 소리를 들을 것이다. 바로 지금 남북이 총을 서로 내려놓자고 하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해방 뒤 70년 넘게 군사력을 키워서 평화가 보장되었나. 남과 북 모두 천문학적인 숫자로 군사비를 쓰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굶주려 죽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연은 얼마나 황폐해졌는가.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또 다른 하나를 배웠다. 성경에 이런 말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여 그대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 문이 가까이 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아픈 사람을 보듬을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의미다. 이웃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예수다. 바로 지금 당신 가까이 있는 사람이 아프고 힘들고 굶주린다면 그 아픔을 나누고 먹을거리를 주고 함께 눈물을 흘리고 사랑하라. 한반도 북녘 동포를 사랑한다면 총을 버리고 먹을거리를 주고 기초 의약품을 주어야 한다. 쌀을 지원해 북녘 아이들을 튼튼하게 살리는 일이 한반도가 평화롭게 하나 되는 길이다.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이다. 하지 않아서 어려울 뿐이다.



〈아버지의 뒷모습〉

주쯔칭·위다푸 지음, 허세욱 옮김, 범우사 펴냄


ⓒ조경국 제공조경국 ‘소소책방’ 책방지기.

아버지는 IMF 구제금융 사태로 실직한 이후 변변한 직장이나 직업을 구하지 못했다. 우여곡절 복직했던 그 직장에서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터였다. 직장을 잃은 후 아버지는 기운을 잃으셨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는 자주 아버지의 모습을 담으려 했는데, 카메라만 꺼내면 “이놈아, 사진 찍지 마라”며 역정을 내시곤 했다. 우연히 명함 크기만 한 즉석 사진에 아버지의 웃는 모습을 담은 그날은 운이 좋았다. 이제 막 태어난 손녀의 재롱을 보며 기뻐하셨던 날이었다. 하지만 곧 아버지는 미소를 거두시곤 쓸쓸한 뒷모습을 보였다. 그 한 장의 사진과 다음 장면이 살아계신 아버지의 모습 전부인 듯 나의 뇌리에 박혔다. 사람은 언제나 기억을 되새김하며 나이를 먹고 기억은 찰나의 이미지에서 시작된다. 

주쯔칭(주자청, 1898~1948)의 수필 〈아버지의 뒷모습〉을 읽은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다. 헌책방에서 구한 범우사 문고판 〈아버지의 뒷모습〉에는 근대 중국 문단에서 가장 빼어난 산문가로 알려진 주쯔칭과 위다푸(욱달부, 1896~1945)의 수필이 실려 있다. 혼란하고 괴로움 가득한 시기를 견뎌야 했던 두 사람은 각각 ‘온유돈후(溫柔敦厚)’ ‘풍우모려(風雨茅廬)’한 글을 남겼다. 옛 수필들은 묵직하고 서늘한 글맛이 있다. 나는 위다푸보다 주쯔칭의 글에 더 마음이 끌렸고, 이 책의 표제작인 〈아버지의 뒷모습〉이 유독 좋았다. 다섯 쪽 짧은 글을 읽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멀리 떠나는 아들에게 귤을 쥐여주고 쓸쓸히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늙고 힘없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묘사하는 문장에서 살아계신 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모습들을 자식을 키우고 나이를 먹고 나니 가슴으로 깨닫는다.

아버지와 불화하고 있는 자식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는 자식에게 완벽하고 강한 모습을 보이고 싶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불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언젠가 늙고 쓸쓸한 ‘아버지의 뒷모습’을 마주할 때가 있을 것이다. 고향에 가면 아버지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시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기자명 김영건 (속초 ‘동아서점’ 매니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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