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2000~3000㎞ 차를 몬다. 한창 때는 매달 5000㎞ 정도 고속도로를 달렸다. 직업이 식품 MD인지라 지방 출장이 잦기 때문이다. 웬만한 고속도로 휴게소는 다 이용해봤다. 내게 고속도로 휴게소는 단지 허기를 때우고 배설하기 위한 장소일 뿐이다. 무엇을 먹어도 내가 지불한 돈만큼 값어치를 느낀 적이 없다. 쉽게 말해 ‘가성비’가 최악이다. 라면도 휴게소에서는 4500원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는 왜 비쌀까? 재료가 좋아서? 유명 셰프의 요리라서? 답은 장소에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운영 주체는 도로공사와 계약을 맺은 몇 개 회사다. ‘독점’ 계약을 맺은 회사는 다시 개별 입점 업체와 계약하고 휴게소를 운영한다. 라면 값 4500원에는 두 가지 이권이 감춰져 있다. 10여 년 전, 수입식품 납품 건으로 휴게소 운영회사에 상담하러 간 적이 있다. 그때 요구받은 수수료가 50%였다. 지난해 한 신문 보도에 따르면 여전히 수수료 평균이 34%, 최대 58%라 하니 지금도 달라진 게 없다. 다른 곳에서는 다 되는 프랜차이즈 포인트 적립조차 안 되는 이유다. 오른 가격만큼 이용자의 혈압도 동반 상승했다. 휴게소에 혈압 측정계가 설치된 이유가 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평소보다 몇 배나 더 차가 몰리는 명절 기간에 고속도로 휴게소 이용은 불난 곳에 볏단 들고 뛰어드는 격이다. 주차하는 데만 수십 분이 걸린다. 생수 하나 사는 데에도 긴 줄을 서야 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휴게소 전쟁’을 벌여야 할까. 허기와 생리 욕구가 밀려오면 이제 과감하게 고속도로를 탈출해보자. 고속도로 나들목(IC)은 도시나 읍내와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조금만 운전해도 편의점과 괜찮은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전국 주요 고속도로 나들목 근처에 있는 맛집을 소개한다.

■ 경부고속도로

목천나들목: ‘청화집’ 순댓국

병천 순대가 유명하다지만, 사실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경부고속도로 목천나들목에서 가깝다. 나들목을 나와 우회전해서 10여 분 달리면 병천 읍내가 나온다. 읍내 남쪽, 오창 방향 초입에 순대 타운이 있다. 익숙한 프랜차이즈부터 지역 브랜드까지 길 좌우로 열댓 개 식당이 손님을 맞는다. 본래 병천 순대는 5일장에서 팔던 순댓국이었다. 인근에 햄 가공 공장이 들어서면서 돼지 내장에 선지와 채소, 찹쌀을 듬뿍 넣은 순댓국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병천 순댓국은 잡내가 나지 않아 텁텁한 들깻가루를 굳이 안 넣어도 된다. 새우젓 조금으로 간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소금으로 간을 맞춘다. 순대 한 점 먹어보면 다른 지역에서 파는 병천 순대와는 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레시피는 비슷해도 기계로 찍어낸 순대와 사람 손이 더해져 만든 순대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1968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청화집 순댓국이 괜찮다. 근처에는 호두과자 판매점도 있다. 천안 명물 ‘학화호두과자’뿐만 아니라 우리밀 호두과자도 있다. 돌아갈 때는 다시 목천나들목으로 가지 말고 696번 지방도를 따라 청주나 오창으로 진입하는 게 좋다.


옥산나들목(하이패스 전용): ‘대운분식’ 김치찌개·콩나물밥

하행 옥산휴게소에 진출입로가 있다. 하이패스 전용 나들목이다. 휴게소 진입이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조금만 참으면 맛있는 김치찌개와 콩나물밥을 먹을 수 있다. 뜻밖에 식당 이름이 ‘대운분식’이다. 분식점인데 김치찌개와 콩나물밥(5000원), 그리고 공기밥만 판다. 김치찌개는 잘 익은 김치에 돼지고기 다릿살을 큼직큼직 썰어 끓여낸다. 김치찌개와 콩나물밥을 각각 시켜 먹어도 좋지만, 이 집의 맛을 즐기는 방법은 따로 있다. 콩나물밥을 양념장에 비벼 먹다가 자작해진 김치찌개 국물을 더해 비벼 먹는 맛이다. 콩나물밥 할 때 같이 넣은 다진 소고기, 콩나물, 김치의 어울림이 좋다. 삼합이 별건가. 음식 세 개의 어울림이 좋으면 삼합이다. 옥산교차로에서 다리만 건너면 청주다.

■ 서해안고속도로

해미나들목: ‘읍성 뚝배기’ 소머리국밥

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읍내다. 해미읍성을 등지고 바라보면 육개장, 내장탕, 순댓국 등을 파는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읍성 앞에 눈에 띄는 간판이 있다. ‘읍성 뚝배기.’ 뚝배기 불고기를 파는가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담백한 소머리국밥을 판다. 새벽마다 끓이는 국밥은 잡내가 없고 경기권의 소머리 국밥과 달리 국물이 담백하다. 아이들이 있다면 같이 내는 설렁탕도 괜찮다. 이 집의 또 다른 맛이 있는데 ‘마늘장아찌’다. 육쪽마늘 주산지답게 마늘장아찌가 맛있다. 간간한 염도에 마늘 특유의 아린 향이 나는 게 여간 맛있는 게 아니다. 마늘장아찌를 먹으면 같이 나온 김치에 눈길 한번 안 갈 정도다. 담백한 국물에 큼직한 고기 한 점 올려 마늘장아찌와 먹으면 바로 이 맛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해미읍성 주변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점도 있다. 간짜장, 삼선짬뽕으로 유명한 영성각이 있다. 이 집은 탕수육도 꽤 수준급이다.


광천나들목: ‘유진식당’ 갈비탕

나들목에서 나오면 작은 사거리가 나온다. 좌회전하면 홍성군 은하면을 거쳐 새우와 가을 꽃게로 유명한 남당항 방향이다. 이 사거리에서 우회전해 3분 정도 가면 광천 읍내가 나온다. 광천 역 앞에 광천토굴시장이 있고 주변에 식당이 많다. 보통 버스터미널 식당은 대부분 ‘꽝’이라고 생각하는데 광천 버스터미널은 예외다. 터미널 상가에 있는 유진식당은 구수한 설렁탕 국물과 얼큰한 육개장으로 터미널 식당의 불신을 한 방에 날린다. 큼직한 갈비가 들어 있는 갈비탕이 압권이다. 술 마신 다음 날 해장국으로도 손색이 없다. 거세육을 사용하지 않고 황소를 써 양은 푸짐하고 가격은 저렴하다. 황소고기로 우린 국물에는 암소나 거세우가 따라올 수 없는 한우 고유의 육향이 가득하다. 국물에 든 고기는 부드러우면서 씹을 때마다 고소하다. 토굴 젓갈로 유명한 광천답게 새우젓으로 국물 간을 해 감칠맛이 난다. 주변에 김좌진 장군 묘역과 갈대로 유명한 오서산 등이 있다.

■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나들목: ‘마성식당’ 다슬기국

탄산온천수로 유명한 문경온천이 나들목과 지척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잠시 따끔따끔한 탄산 온천에 몸을 담그면 긴 시간 운전의 피로가 풀린다. 온천 앞에는 원래 식당이 많은 법. 문경 약돌 한우와 돼지를 파는 곳부터 산나물 비빔밥까지 다양한 음식점이 즐비하다. 혹시 ‘시원한 국물’이 생각난다면 충주에서 내려오는 3번 국도를 타고 점촌 방향으로 향하자. 3㎞ 정도 가면 작은 다리가 나오고 왼쪽 편에 마성식당이 보인다. 부부가 운영하는 집이다. 남편은 문경 영강에서 다슬기를 채취하고 아내는 요리를 한다. 직접 삶고 살을 발라 국을 끓인다. 된장의 구수한 맛에 다슬기의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밥 훔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금세 한 공기가 바닥난다. 전날 작업한 분량이 떨어지면 문을 닫으니 도착하기 전 영업 확인이 필수다. 문경은 예로부터 한양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상주로 해서 대구를 가기도 좋고 예천을 통해 의성과 안동으로 가기도 편하다. 다시 고속도로로 가는 것보다 낙동강 상류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국도로 가보는 건 어떨까.

■ 중앙고속도로










제천나들목: ‘묵마을’ 묵요리, ‘대림’ 특양구이

‘천등산 박달재를~’로 시작하는 울고 넘는 박달재가 탄생한 제천. 천등산은 제천과 충주의 경계다. 제천나들목을 나와서 박달재 방향으로 몇 분 달리면 우측에 ‘묵마을’이라 쓰인 입간판이 반긴다. 시원한 육수에 씁쓸하게 잘 쑨 도토리묵을 썰어 내는 묵밥을 잘 한다. 송송 썬 김치와 살짝 떫은맛이 나도록 쑨 묵이 잘 어울린다. 타닌이 내는 떫은맛은 낯설 수도 있지만, 그 맛에 도토리묵을 먹는다. 몸에도 꽤 좋은 성분이다. 잘 익은 김치와 같이 내는 묵김치, 도토리 전분을 얇게 부친 도토리전, 칡 전분으로 만든 칡전을 곁들여 먹어도 좋다. 인원이 많다면 새콤달콤하게 무쳐 내는 묵무침도 추천한다.

제천나들목은 제천 시내와 가깝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한우갈비와 돼지갈비 전문점 대림이 있다. 이 집에서 강력 추천하는 메뉴는 ‘특양’이다. 양념한 양을 불판에 굽다가 육수를 붓고 자작자작 끓여서 먹는 독특한 방식이다. 숯불에 양을 구울 때 나오는 맛있는 성분이 국물에 녹아 들어가 그 맛이 일품이다. 현지 주민들은 여기에 면을 추가해 함께 먹는다.

■ 영동고속도로

문막나들목: ‘음식마을’ 쫄면 볶음밥

강원도 하면 떠올리는 음식이 막국수나 닭갈비다. 구수한 메밀 향을 품은 면을 매콤한 양념장에 비벼 먹는 막국수는 강원도를 지나는 여행객이라면 한 번은 꼭 먹는 음식이다. 경기도 여주에서 섬강을 넘으면 바로 강원도의 관문 문막이다. 강원도 하면 막국수 전문점을 소개하겠지 싶지만 아니다. 문막나들목 사거리에서 좌회전해 300m 간 뒤 우회전하면 ‘음식마을’이라는 작은 식당이 나온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는 속담이 맞춤할 만큼 고속도로에서 가깝다. 이 집의 인기 음식은 ‘쫄면’이다. 막국수와 먹는 방법은 비슷한데 ‘면’이 다르다. 오전부터 예약과 배달이 밀릴 정도로 지역에서 유명한 곳이다. 쫄면(6000원)을 주문하면 면 위에 채 썬 채소가 가득 올려져 나온다. 다른 곳은 채소보다 면이 많은데 이 집은 면보다 채소가 훨씬 많다. 빨간 것이 아주 매콤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채소가 워낙 많이 들어서인지, 적절하게 맵다. 모든 음식에는 궁합이 맞는 음식이 있다. 쫄면에는 보통 김밥이지만, 이 집에서는 예외다. 고슬고슬 잘 볶인 볶음밥이 새콤매콤한 쫄면과 잘 어울린다. 쫄면을 입에 넣고 볶음밥 한 숟가락 떠서 함께 씹는다. 이 맛이 뜻밖의 조화를 이룬다. 물론 김밥도 있다. 여럿이 온 경우는 즉석 떡볶이를 추가해 먹기도 한다. 강원도에서 웬 쫄면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식당 문을 나올 때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문막 주민들이 아침부터 예약해서 먹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기자명 김진영 (식품 MD)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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