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입사한 출판사에서 자연과학 분야 그림책을 맡았다. 그날, 편집자 니시야마 마사코 씨(45)와 동료는 냇가로 가서 어리둥절해하는 초등학생들을 뒤로하고 가재를 잡아왔다. “저도 매일 관찰해보겠습니다”라고 저자에게 다짐했다. 니시야마 씨 수조의 가재들은 매일 싸웠다. 불행히도 한눈파는 사이 한 마리가 다른 가재를 잡아먹기도 했다. 어느 날 돌이켜보니 자신이야말로 그 오래전 수조 속 가재 신세 같았다. 동료를 잡아먹을 강인함도, 공생하려는 유연함도 없었다.

ⓒ시사IN 조남진니시야마 마사코 씨는 “편집자가 단순히 콘텐츠만 편집하는 시대는 끝났다”라고 말했다.

12년 경력을 접고 ‘야생 가재’가 되기로 결심한 2014년, 니시야마 씨는 가장 먼저 다른 야생 가재들을 찾아 나섰다. 다종다양한 책을 펴내는 1인 출판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책 한 권을 100만 권 팔기보다, 소량의 책을 내서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 만나는 사람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던 시기다. 1인 출판사라는 형식이야 이전에도 있었지만 그 목적과 빛깔이 예전과 달랐다. “나답게 일한다는 건 뭘까, 사람들은 어떤 목적으로 출판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는 걸까…. 그런 것들이 궁금했어요.”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유유)은 프리랜서 편집자가 된 니시야마 씨가 그 궁금증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엮은 책이다. 9월16일, 니시야마 씨가 출판문화도시재단이 주최하는 ‘에디터 스쿨’과 서울와우북 페스티벌 강연을 위해서 3박4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 해 신간 수만 권이 나오지만 반품률이 절반에 가까운 출판계에 미래는 있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는 왜 이토록 질기고 또 아름다운가. 니시야마 씨가 책을 통해 일본 출판계에 던진 질문들은 1인 출판사와 동네 서점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한국 출판계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책은 한 사회의 의제 설정 기능을 담당하기도 하지만, 취향의 공동체를 위한 도구로서도 존재한다. 1인 출판사는 후자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몸’이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에 실린 다양한 경력과 연차를 가진 10명의 ‘사장님’들은 경영 노하우를 전파하거나 함부로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 제목이 ‘방법’이 아닌 ‘방식’인 까닭도 소규모 출판이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밀어내기’가 있다면 일본에는 같은 의미로 ‘자전거 조업’라는 말이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듯 신간을 빠르게 펴내 매출을 유지하는 방식이다. 신간 한 권이 시장에서 미처 반품되기 전에 또 다른 신간을 내는 기형적인 방식으로 대차대조표상의 매출을 만든다. 독자층이 얇은 책을 만들어 일부 독자에게 어필하는 1인 출판사에게는 적합하지도 않지만 이런 물량 공세는 시도할 수도 없는 방법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도서 유통업체의 실질적 과점 상태가 1인 출판사에게는 큰 걸림돌이다.

“현재의 유통 시스템은 워낙 거대한 톱니바퀴라고 할까, 그런 세세한 요구에 하나하나 응답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요. 변화에 따라 ‘유통의 재구축’이 필요한데 그걸 기다리다가는 작은 출판사, 동네 서점은 다 망해요.”

그래서 등장한 자구책 중 하나가 ‘트랜스뷰’라는 작은 출판사가 정착시킨 직거래 방식이다. 대형 유통업체가 신간을 자동 배본하는 방식이라면, 트랜스뷰는 어느 서점이 단 한 권의 책이라도 주문하면 주문 즉시 바로 보내는 직거래를 한다. 트랜스뷰 출판사는 아예 작은 출판사를 위해 직거래 서비스를 대행한다. 일본에서는 8월 현재 출판사 65개와 서점 1500곳이 트랜스뷰를 통해 거래한다. 트랜스뷰의 평균 반품률은 10%대에 그친다. 일반 유통사를 통한 반품률은 40%이다.

일본 도쿄 진보초는 일본의 대표적인 책방 거리이다. 진보초의 ‘전설의 책방지기’ 고(故) 시바타 신 씨는 책을 신성시하지 않았다. 그는 “물건(책)을 팔아서 생활한다”라는 감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 남해의봄날, 2016).

“책을 전하는 방식은 옛날과 달라야”

니시야마 씨의 생각도 그 지점에서 멀지 않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텐데, 책은 이익이 적은 상품이거든요. 많이 팔지 못한다면, 적은 이익을 커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편집자가 단순히 콘텐츠만 편집하는 시대는 끝났어요. 어떻게 책을 팔 건지, 서점 진열대의 문맥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예전에는 일상에서 다른 곳으로 데려가주는 도구가 책의 전부나 마찬가지였다면, 현재는 책 외의 다양한 엔터테인먼트가 존재한다. “책은 없어지지 않겠지만, 책을 전하는 방식이 옛날과 똑같아서는 안 되겠죠.”

쓰타야 서점을 성공시킨 마스다 무네아키 씨는 〈지적 자본론〉(민음사, 2015)에서 책이 아닌 제안을 판다는 점, 디자인이 덤이 아닌 본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책을 ‘잡화’ 취급한다는 점에서 찬반이 갈리지만, 일본의 국민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 씨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1931년생인 다니카와 씨는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에 실린 니시야마 씨와의 인터뷰에서 “시대와 함께하는 일을 무시하고 이상을 추구할 수는 없다”라고 말한다. 책이 ‘오브제’가 된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의미다.

ⓒ민음사 제공
ⓒ유유 제공일본 도쿄에 위치한 쓰타야 서점(위)을 성공시킨 마스다 무네아키 씨는 “책이 아닌 제안을 판다”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1인 출판사 도요샤의 모습.

출판계의 70%가 모여 있던 도쿄를 떠나 책을 만드는 출판인도 늘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지방을 살리자는 ‘지방창생(地方創生)’은 전 일본의 화두가 되었다. “원래 살던 사람은 익숙해서 깨닫지 못하는 그 지역의 좋은 것들을 끄집어 올려 다시금 조명하는 작업이, 어떻게 보면 책 작업 자체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취재해보니 책은 커뮤니티를 편집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더라고요.”

기타큐슈 마나즈루에서 게스트하우스를 겸업하고 있는 마나즈루 출판사는 지역 일자리를 소개하는 책을 내거나, 〈좋은 건어물(やさしい干物)〉 처럼 지역의 먹을거리를 소개하는 책을 만들어 일본 전역에 유통시킨다. 〈좋은 건어물〉에는 교환 쿠폰이 들어 있어서 마나즈루의 한 시장을 방문하면 실제 건어물과 교환해 주기도 한다.

출판의 미래는 어쩌면 1인 출판사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콘텐츠의 질만큼이나 책에 독자가 ‘자신의 일’로 여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느냐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 같아요. 업계의 문제를 자신의 방식으로 혼자서라도 헤쳐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멋진 일이에요.”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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