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쇼라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난 9월 초 열렸던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 동영상은 시종일관 기가 막혔다.

“욕을 해도 좋고 모욕을 줘도 좋지만 장애 아이들을 위한 학교는 절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놀랍도록 차분하게 호소하던, 장애인 아이를 둔 엄마는 결국 울먹였고 급기야 한 엄마가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푹 꺼지듯 엄마들이 줄지어 무릎을 꺾었다. 참담한 그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는데 학교 건립을 반대하던 이들의 이어진 반응이 더 충격적이었다. 자존심도, 자신의 존엄성도 내던지고 간절하게 호소하는 엄마들에게 그게 쇼이고 예정된 각본이라며 비아냥거렸다.

흔히 교육권은 인권 중의 인권이라고 한다. 유엔의 교육특별보고관은 “교육은 다른 인권을 풀어내는 열쇠”라고 했다. 교육을 통해 한 인간이 지닌 내면의 능력을 활짝 꽃피우고 이를 바탕으로 존엄하게 살아갈 터전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해 교육기본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 등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그 근저에는 ‘집값’이 있다. 특수학교라는 ‘혐오·기피 시설’이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토론회에서 한 주민은 주저하지 않고 특수학교를 혐오·기피 시설이라고 했고, 다수의 청중은 큰 박수로 지지했다. 또 다른 주민은 ‘효율성’을 내세우며 특수학교 대신 한방병원 설립을 주장했다.

 

ⓒ연합뉴스 9월5일 오후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열린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 교육감-주민토론회에서 공진초 터에 특수학교가 아니라 국립한방의료원이 들어서길 바라는 주민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인권 위에 이권(利權)이 군림하는 모양새다. 교육권은 헌법이 명시하는 기본권이며 장애인도 예외일 수 없다는 말은 때로 현실에서 힘을 잃는 것 같다. 올여름에 인권 강사로 활동하는 장애인 당사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학교 건립을 주제로 토론을 했는데 참석자들의 반응에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한 장애인은 “집값 내려간다고 장애인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장애인에게도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 특수학교가 갈 데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주변의 수강생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 장애인은 정곡을 찔렀다. 심각성은 이 같은 세태가 유독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서울 서초구와 중랑구에 짓기로 했던 특수학교 또한 주민 반대가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15년 동안 서울에서는 특수학교를 단 한 곳도 짓지 못했다.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는 “님비현상이라고 여론이 비난하는데 정작 당신 집 앞에 한번 세워보라”고 당당히 외쳤다. 특수학교가 없는 자치구가 8개나 되는데 유독 강서구에만 2개를 설립하니 주민들의 반대를 이해할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도 많다. 돈과 관련된 불이익 앞에서는 한 걸음도 물러설 수 없으며, 이권 앞에서는 인권이 무슨 소용이냐는 인권 경시적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연합뉴스서울시교육청은 7월6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에서 '강서지역 공립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강서구 주민 외 인사의 토론참석 문제에 항의를 받으며 파행으로 끝이 났다.


“교육은 다른 인권을 풀어내는 열쇠”

런던 정경대학 사회학과의 스탠리 코언 교수는 “인권이니 인간의 사회적 고통이니 하는 개념에 대한 ‘선(先)구조화’된 틀이 없거나 대단히 이질적인 틀에 갇혀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인권침해를 자행하게 된다”라고 설명한다. 애당초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소수자의 인권을 특별히 보장해야 한다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거나, 인권보다 이권을 중시하는 가치관을 갖게 되면 자신이 인권침해를 하는지도, 그것이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인권의 가치로 자유·평등과 함께 연대를 꼽는다. 사는 게 불안하고 각자도생하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더불어 살아갈 때 인간의 존엄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품위에 걸맞게 행동하고 자신이 특별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돕는 것은 공동체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당연히 갖춰야 할 덕목이다. 코언 교수는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인간, 인권과 인도적 가치를 시인하는 인간, 그것을 성취하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라고 말한다. 귀담아들어야 할 제안이다.

 

기자명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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