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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부결에서 진정 읽어야할 대목

문재인 정부는 여야 연합 정치보다는 압도적인 여론 주도력을 이용한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기조로 택했다. 그런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로 흔들렸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7년 09월 19일 화요일 제5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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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조남진
6월7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의 질문을 듣고 있다.

293명이 출석했다. 과반 기준선은 147명. 결과는 찬성 145표, 반대 145표, 무효 2표, 기권 1표였다. 2표가 모자랐다. 9월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헌정 사상 최초다.

문재인 정부가 받아들기로 되어 있던 핵심 질문이 이날 드디어 등장했다. 20대 국회는 20석 이상 교섭단체가 네 개 있는 다당제 의회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제1당이기는 하지만 121석으로 의회 지배력에는 못 미친다. 국회선진화법 기준선인 180석은 고사하고 과반 기준선인 150석과도 거리가 있다. 107석 제2당인 자유한국당은 사실상 협력 대상이 되기 어렵다. 과반을 만들려면 국민의당(40석)의 협조가 필요하다. 선진화법 기준을 돌파하려면 바른정당(20석)의 협조가 추가로 필요하다. 정의당(6석)의 협조를 상수로 놓고도 그렇다. 입법부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은 다당제와 여소야대가 조합된 20대 국회의 풍경을 압축해 보여준다. 표결 직전까지도 민주당 원내 지도부는 150표 이상을 확보한 것으로 계산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반대투표 당론을 일찌감치 정했지만, 자유투표를 하기로 한 국민의당에서 20표 이상이 찬성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국민의당에서 예상보다 많은 반대표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부결 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국민의당이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가진 정당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9월13일 전북 완주군 용진농협을 방문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발언을 하고 있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민의당의 반감이 아주 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김 후보자는 호남 출신으로 국민의당 전략 지역과 겹친다. 2012년 박지원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해 앉힌 이력도 있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도 9월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김 후보자는 평생 올곧은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분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반대표는 김이수 후보자가 아니라 문 대통령을 겨냥한 것이었다.


민주당에서는 국민의당을 ‘호남 기반 지역당’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호남 여론에 반하는 의사결정이 나오기 어렵다고 간주한다. 하지만 국민의당에는 수도권 중도 보수 성향 지지 기반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 옛 새누리당의 비판적 지지 블록이다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이탈한 이들로,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의 숨은 공신이다. 2016년 총선 당시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투표에서 635만 표를 얻었다. 민주당보다 30만 표를 더 얻은 2위였다. 수도권(서울·인천·경기)에서만 국민의당이 민주당보다 17만 표를 앞섰다.

국민의당 내부 사정이 전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국민의당은 큰 틀에서 호남 기반의 인준 찬성파와 수도권 기반의 반대파로 갈렸다(이에 더해 호남 의원 몇몇이 반대파로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 후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안철수 대표다. 국민의당은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자유투표에 부쳤다. 불확실성이 증가했고, 거기서 여당의 오판이 나왔다.

여당은 ‘국민의당에 대한 호남의 구속력’을 과대평가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요구해 임명동의안 직권상정을 강행한 데는 의결 정족수를 넘길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다. 김이수 후보자 측도 지명 110일이 넘어가는 상황에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역시 여당이 인준투표를 강행하는 한 이유가 되었다. 실제로 표를 확인한 결과 호남의 구속력은 작동하였으되 충분하지 않았다.

이것은 단발성 이슈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 협조하라는 여론의 압박이 국민의당 전체를 움직이지 못하는 구도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수도권 쪽에서는 호남 블록이 떨어져나가는 것까지도 감수한다는 기류가 있더라”고 귀띔했다. 바른정당과의 중도 노선 연대·연합 카드도 잠복해 있다. 국민의당 수도권 블록의 관점에서 보면, 자당 내 호남 블록보다 바른정당이 더 매력 있는 파트너로 보일 수도 있다.

야당의 ‘발목잡기 인센티브’ 본격 가동


여당은 명분 공세를 펼쳤다. ‘김이수 부결’은 명분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고, 야 3당의 부결 동맹은 힘자랑의 의미가 컸다. 타협과 거래가 아니라 여론의 힘으로 야당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선두에 서 있다. 비공개 의원총회에서 추 대표는 국민의당을 겨냥해 “‘땡깡’ 부리고, 골목대장질 하고, 캐스팅보터나 하는 몰염치한 집단이다. 더 이상 형제의 당이 아니다”라고 맹비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것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법인가다. ‘여론을 통한 굴복’이 작동하려면, 야당을 향한 비난이 거세거나 광범위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이 야당들의 인센티브 구조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정당은 기본적으로 여론에 반응한다. 하지만 야당에게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센티브가 있는데, 정권이 국정운영 동력을 상실하여 성과를 내지 못하게 만들면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다. ‘발목잡기 인센티브’다. 야당은 정권이 관심을 갖는 인사·예산·법안을 최대한 저지·지연·훼손시킬 동기가 있다. 반대로 정권에 협조할 동기를 찾기는 어렵다. 야당이 정권에 협조하여 정권이 자기 어젠다를 관철시킬 경우, 공은 거의 모두 정부·여당이 가져간다.

야당은 정권의 인기가 높은 때라 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여론 비난을 감수하면서 발목을 잡는 쪽에 인센티브가 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비(非)호남 블록이 나란히 이 방향으로 움직였다. 여론 비난이 지난겨울의 촛불 수준으로 폭발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데, 박근혜 정부와 달리 지금 야당들은 헌정체제가 보장한 권한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연합뉴스
9월11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그렇다면 야 3당의 부결 동맹은 불가피했을까. 꼭 그렇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자유한국당은 거의 모든 경우에 문재인 정부에 협조할 동기가 사실상 없다. 하지만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상황이 그보다는 복잡했다. 바른정당은 문재인 정부에서의 야당인 동시에, 보수의 주도권을 두고 자유한국당과 경쟁하는 당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동력 훼손보다도 자유한국당의 고립이 더 이득인 상황이 나올 수 있다. 국민의당은 호남이라는 중요한 자산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정권에 협조해야 할 동기가 일부 있다. 이렇게 보면, 발목잡기에서 협조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인센티브 구조를 바꿀 여지는 있었다.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은 노무현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냈다. 그는 문재인 후보의 집권이 유력하던 4월부터 국민의당과는 연정을, 바른정당과는 협치를 해야 통치가 가능하다고 주문했다. 연정과 협치의 구체적인 배합 여부를 떠나서, 통치구조 안으로 야당들을 끌어들어야 한다는 조언은 민주당 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다당제·여소야대 국회에서는, 야당 특유의 ‘발목잡기 인센티브’를 바꾸는 데 성공하느냐가 정권의 명운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야당 인사들을 내각에 참여시키는 것은 고전적인 연합정치 모델 중 하나다. 이 경우 야당의 셈법은 바뀔 수 있다. 정부에 참여한 야당은 정부의 성공에서 얻을 것이 생긴다.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에서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대연정론’을 던졌다. 대연정론은 자유한국당까지 국정 파트너로 간주하는 바람에 민주당 지지층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그와 별개로, 여소야대·다당제가 어떤 형식으로든 (자유한국당을 배제한) 연합정치를 필수로 요구한다는 대목만은 민주당 내에서도 공감대가 작지 않았다. 요점은 같다. 야당의 ‘발목잡기 인센티브’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통치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그럴 공간이 있어 보였다.

“집권 1기는 국민과의 협치가 핵심”

문 대통령의 선택은 달랐다. 문재인 청와대는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여야 연합정치보다는 압도적인 여론 주도력을 이용한 강한 개혁 드라이브를 기조로 택했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김경수 의원은 <시사IN>과 인터뷰에서 “여야 협치만 생각하는데, 당·정·청 협치도 있고, 국민과의 협치도 있다. 집권 1기는 국민과의 협치가 핵심이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중심이 되어서 혁신을 추진하는 게 1기다”라고 말했다(<시사IN> 제518호 ‘가장 잘한 인사는 김상조 위원장’ 기사 참조). 국민의 지지가 야당을 압박해 개혁 과제에 동의하도록 만든다는 것이 ‘국민과의 협치’를 만들어내는 핵심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김이수 부결’ 동맹이 성사된 9월11일은 이 메커니즘이 과연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되묻게 만들었다. 여론의 높은 지지가 야당을 움직이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실제 사례가 등장했다. 국민의당 핵심 관계자는 “안철수 당 대표 체제가 들어오면서 국민의당에서 적어도 비호남 블록은 정부에 대해 날을 세우는 노선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안 대표 본인이 그런 성향이 강하다. 만약 문 대통령이 집권 초부터 국민의당을 내각에 참여시키는 등 협치 노선을 걸었다면 반(反)문재인 성향이 강한 안철수 당 대표 체제가 가능했을지부터 불확실했다”라고 말했다.

입법부가 작동하지 않으면 결국 통치가 성공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강하게 보여준 전임자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2002년 대선 직후 노무현 당선자는 “총리는 국회 다수파가 추천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총리를 추천할 다수 연합이 국회에서 구성되고 거기서 나온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면, 사실상 연정 모델이다. 이 문제의식은 2005년 대연정 제안으로 이어졌다. 2002년 대선부터 2008년 임기 종료까지 노 전 대통령을 계속 보좌했던 한 참모는 “노 전 대통령은 대연정이 실패한 후에도 그 발상 자체를 후회한 것이 아니라, 일이 성사가 안 될 방식으로 던진 것을 후회했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는 다수의 통치 영역에서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지만, 대(對)야당 전략만은 확실히 다른 결을 보여주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야당과의 토론을 과도하게 중시하다가 가장 지지 기반이 넓은 임기 초를 놓쳐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지지율은 중요한 자산이자 개혁의 동력이라는 문재인 정부의 인식은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그 자산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임기 첫해를 운영하겠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전략적 선택이다. 다만 이 선택에는 비용이 따른다. 야당이 여론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발목잡기 인센티브’에 더 몰입하게 한다는 비용이다. ‘김이수 부결’ 동맹은 첫 번째 청구서였다. 2020년 4월 총선 이전까지, 어떻게 이 청구서를 최대한 줄일 것인가가 문재인 정부의 통치동력 보존에 중요한 질문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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