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박지리 지음, 사계절 펴냄

“나도 선택해야 했다. 맨홀을 떠날 건지 이대로 계속 머무를 건지.”

〈시사IN〉 제522호 ‘편집자가 추천하는 책’ 코너에 나온 ‘박지리를 모르면 땅을 치고 후회하지’ 기사를 보고 덥석 집었다. 작가에 대한 애정을 품은 편집자를 만나는 일이야 어렵지 않지만, 김태희 사계절 기획편집부 총괄팀장은 조금 달랐다. 작가 박지리의 작품에 대한 애정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넘어, 그녀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라졌다는 원통함마저 느껴졌다.
작가 박지리의 작품 〈맨홀〉은 문학 브랜드 ‘욜로욜로’ 시리즈(전 10권)를 통해 5년 만에 재출간되었다. 살인자가 된 열아홉 살 소년의 이야기다. 박 작가의 생전 인터뷰를 보면 “그냥 썼다”라는데, 예사롭지 않다. 〈맨홀〉을 덮을 때쯤 작가의 이른 죽음이 더없이 슬프게 느껴질 것이다.


위험한 제약회사
피터 괴체 지음, 윤소하 옮김, 공존 펴냄

“약은 심장 질환과 암에 이어 주요 사망 원인 3위이다.”

‘약 유행병’이 창궐하고 있다고 말하는 의사가 있다.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만든 두 가지 유행병 때문에 죽어가는데, 바로 담배와 처방약이라는 것이다. 흘려듣기로는 이 의사의 ‘스펙’이 너무 화려하다. 20년째 덴마크 왕립병원의 수석 내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5대 의학지에 게재한 논문만 70여 편이다.
저자의 주특기는 돌직구다. 학회에서 강연할 때는 앞자리에 앉은 제약회사 임원들을 향해 그 회사가 저지른 범죄행위를 하나하나 열거한다. 뛰어난 유행병 학자로서, 임상연구 비평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서 확실한 근거를 들며 조목조목 짚는다. 의사와 학자들을 ‘청부업자’라 부르며 이들이 어떻게 매수되어 연구를 왜곡하는지 까발린다. 이 책의 부제는 ‘거대 제약회사들의 살인적인 조직범죄’다.


슈퍼피셜 코리아
신기욱 지음, 문학동네 펴냄

“모난 돌을 내려치는 정이 정당화되고,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외치는 사회는 얼마나 조용히 폭력적인가?”

‘재미있는 지옥’으로 불리는 한국의 특징을 ‘슈퍼피셜(Superficial: 피상적인)’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사회학 교수인 저자는 오랫동안 미국 내 아시아 전문가로 활동하며 한국을 ‘외부자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분석했다.
저자의 눈에 가장 기이한 모습은 피상적인 네트워크(인맥), 피상적인 과시, 피상적인 제도와 규제가 오히려 원칙을 무너뜨리고, 개인의 삶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것이었다. 다양성이 용인되지 않는 규격화된 삶이 한국에서 얼마나 큰 재앙인지 설명하며, 위기에 처한 산업과 정치·외교 분야에 일침을 가한다. 짧은 글 속에 담긴 가시가 은근히 날카롭다. 외교 관계와 지정학에 대한 분석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불평등이 문제다
김윤태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불평등을 줄일 모든 수단을 가동시켜라!”

2012년 총선·대선 당시 ‘복지 열풍’을 주도했던 김윤태 교수가 2017년의 시점에서 ‘불평등 해결’의 관점으로 ‘복지국가 노선’을 재정립했다. 상위 1%가 개인 토지의 55.2%(상위 10%는 97.6% 점유)를 소유한 한국 사회의 극심한 불평등 현상을 분석하면서, 이런 상황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동안 복지운동 내에서 활발했던 ‘보편복지 대 선별복지’ 논쟁에 대해서도 매끄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저자는 “2016년 촛불혁명과 2017년 장미 대선으로 ‘공정과 불평등 해소’라는 시대정신이 대다수 국민의 염원이 되었다. 지금은 불평등을 줄일 마지막 기회다”라며, 불평등을 줄일 수단 15가지를 과감하게 제시한다.


국세청은 정의로운가
안원구·구영식 지음, 이상 펴냄

“우리 역사에서 민중봉기의 도화선이 된 사건들의 배경에는 세금 문제가 깔려 있다.”

책 제목을 보고 대다수가 “아니요”라고 답할 것이다. 누구나 국세청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이를 풀어가야 하는지 공론화되지 못했다. 최순실씨 일가 해외 은닉 재산을 추적해온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이 현직 기자와 함께 국세청의 역사와 개혁 방향을 짚었다. 부마항쟁부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에 이르기까지 세금을 둘러싼 역사적 사건을 살피고, 종교인 과세 등 논란이 되는 세금 현안도 살폈다.
그동안 세무 행정 분야는 그 조직이나 운영에 대한 정보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안원구씨는 “오랜 시간 밀폐되어 있던 옛집의 창문을 활짝 열어 먼지를 털어내고 환기시키는 심정으로 이 책을 펴낸다”라고 밝혔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사계절 펴냄

“하나를 위해 전부를 바치지 마라.”

먼저 제목에 눈길이 가고, 저자 이름에 손길이 갔다.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라니,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생각해봤을 이야기다. 퇴사는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됐다. ‘일’이란 뭘까. 이에 대한 나름의 답을 도쿄 대학 교수였던 강상중이 제시했다. 일본 NHK TV 〈직업 특강〉에서 한 ‘인생철학으로서의 직업론’ 강의를 보완해 출판했다.
재일조선인 2세로서 차별과 좌절을 극복하고 자기 일을 찾아가는 ‘미니 자서전’에 가깝다.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경험을 들어 이야기한다. 삶의 다양한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길 권한다. 이는 독서로 얻을 수 있다며 본인만의 독서법을 제안한다. 인생에 답은 없다지만, 이 책 또한 그 길을 찾아가는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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