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조선중앙통신9월6일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 장착용 수소탄 시험의 성공을 축하하는 평양시민 경축대회’가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

4월로 돌아가 보자. 3월 말까지 북한 북부 핵시험장인 풍계리에서 지하갱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는 토사 배출량을 보고 깜짝 놀랐다. 2016년 9월9일 5차 실험 때와 비교해 엄청나게 많았다. 핵 폭발력 기준으로 28배가 예상됐다. 그러나 핵실험은 없었다. 몇 달 뒤 밝혀진 바에 따르면, 3월 말까지 북한과 중국이 북핵 폐기 대가를 둘러싸고 벌여온 비밀 협상이 무산되자 북한이 중국에 핵실험을 통고했다. 4월18일 주중 북한 대사관이 “이틀 후인 4월20일 핵실험을 하겠다”라고 통보한 것이다. 중국 측은 즉각 북한에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 석유 및 원유 수출 중단과 국경 폐쇄 등 5가지 조처를 담은 비망록을 전달했다(〈시사IN〉 제506호 ‘4월 한반도 위기설 어떻게 지나갔나’ 기사 참조).

4월 사례는 중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북한 핵실험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북한이 미사일 발사에서는 중국 눈치를 보지 않지만, 핵실험의 경우 지리적으로 맞닿은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북한의 6차 핵실험을 중국은 왜 막지 못했을까. 지난 9월3일 오후 3시(서울 시각 3시30분) 북한 핵무기연구소가 발표한 성명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낮 12시 북부 핵시험장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을 성공적으로 단행’했고, ‘국가 핵무력 완성의 완결 단계 목표를 달성하는 데서 매우 의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6차 핵실험의 폭발 위력은 국가별로 50kt에서 170kt까지 추산하는 등 천차만별이지만 3월 말 예고한 대로 전례 없는 위력을 과시했다는 점은 입증됐다(아래 인포그래픽 참조). 폭발력을 의도적으로 축소 조정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리 신한슬 기자
디자인 최예린 기자

 

 

 

 

중요한 것은 4월에는 중국이 전력을 다해 핵실험을 막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점이다. 크게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4월의 핵실험 무산 이후 중국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위험수위까지 도달했다. 5월3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철 명의의 기명 칼럼을 실었다. 이 칼럼은 ‘중국이 북·중 관계의 붉은 선을 난폭하게 짓밟으며 서슴없이 넘어서고 있다’ ‘북·중 친선과 핵을 맞바꾸지 않겠다’는 등 중국을 직접 거론하며 격렬하게 성토했다. 또 중국으로서는 북한 특유의 등거리 외교로부터 오는 압박도 부담스러웠다. 북한 외무성에서 대미 핵전략을 담당하는 한성렬 부상이 4월30일 이례적으로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를 면담한 게 그 신호탄이었다. 북·중 관계는 ‘한국전쟁 이래 최악의 상태’에 이른 반면, 북·러 관계는 긴밀해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둘째 요인은 중국의 대미 불신 증가이다. 중국이 4월에 핵실험을 막은 것은 트럼프 정부와의 무역 전쟁을 피하고 남중국해에 대한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포석이었다. 당시 트럼프와 협력하는 게 중국의 국익에는 부합했다. 하지만 그다음 미국이 보여준 행태는 중국으로 하여금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 5월 말 샹그릴라 회의(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 안보회의)에 가는 도중 비행기에서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을 계승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남중국해 인근 아시아 국가들을 배려한 발언으로 비쳤다. 중국이 보기에 ‘가시’가 숨어 있었다. 미국은 그즈음 그동안 중단했던 해군의 ‘항행의 자유 작전’을 재개함으로써 중국을 자극했다. 항행의 자유 작전이란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 인공섬과 암초 등 주변 12해리(약 22㎞) 안으로 미군 군함이 진입하는 훈련을 말한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총 4차례 항행의 자유 작전을 펼쳤다.

미국은 또 6월 말 타이완에 대한 무기 판매와 단둥은행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시범 실시로 중국의 뒤통수를 때렸다. 이른바 ‘화염과 분노’ 발언을 계기로 이뤄진 8월12일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통화는 중국의 대미 불신을 키운 결정판이었다. CNN이 미국 행정부 고위 관료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시진핑 주석에게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및 강제 기술이전 의혹과 관련한 조사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지시하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8월14일 트럼프는 사문화되다시피 했던 통상법 301조 카드를 꺼내들었다. 

중국으로서는 북한과 거래하는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미국과 금융거래를 금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이 ‘대북 압박용’인지 ‘중국 봉쇄용’인지 헷갈리는 상황이었다. 4월에는 미국과 협조하는 것이 중국의 국익이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자칫 ‘북·중 간 전면 대립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이로써 미국과 한국은 북핵 문제를 중국에 떠넘기려는 목적을 이루게 될 것이니 이는 중국의 국가 이익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환구시보〉 9월3일자 사설) 상황에 처했다.

셋째 요인은 시진핑 주석의 상황이다. 매년 8월 원로들이 모이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 이어 오는 10월18일 제19차 당 대회가 열린다. 5년마다 열리는 공산당 당 대회는 피를 말리는 권력투쟁의 시기다. 시진핑 주석은 장쩌민계의 후계자 쑨정차이를 자신의 직계인 천민얼로 교체했지만,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왕치산 당 중앙기율조사위원회 서기를 유임시키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의 권력 약화 가능성이 대두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중 관계의 틈이 벌어질 때 핵실험을 해왔다. 이번 6차 핵실험도 시진핑 주석이 권력투쟁으로 손발이 묶여 있을 때 이뤄졌다. ‘절묘한’ 타이밍을 노린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북한이 시진핑 주석의 상황을 의식한다는 점은 향후 스케줄을 예측하는 데 참고가 된다. 북한의 권력 동향에 밝은 고위급 탈북자 출신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두 가지 경로가 점쳐진다. 10월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까지 현재 준비 중인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추가 발사 및 7차 핵실험까지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가능성이다. 속도전을 마친 뒤에는 바로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중국식 개혁·개방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실제로 ICBM이나 SLBM의 추가 발사에 대해서는 국정원이나 국방부 측에서 이미 동향을 확보했다. 7차 핵실험에 대해서도 국정원은 풍계리의 3·4번 갱도에서 언제든 가능하다고 국회에 보고한 바 있다. 이처럼 10월10일 노동당 창건기념일을 국면 전환의 계기로 삼을 것이라는 판단의 이면에 바로 중국공산당 제19차 당 대회라는 변수가 자리 잡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ICBM 장착용 수소탄을 살펴보고 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중장거리 전략탄도미사일 화성 12호 발사 모습.

10월18일 제19차 중국공산당 대회가 전환점

베이징에 있는 카네기-칭화국제정책센터의 자오퉁 연구원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북한에 대해) 더 강력하게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은 다음 달(10월18일)로 예정된 19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수준에 일정 부분 달렸다”라고 말했다. 당 대회를 앞두고 “권력투쟁이 아주 빨리 정리된다면 시진핑이 더 강력한 대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만 권력투쟁이 계속되면 그럴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즉 19차 당 대회를 앞둔 중국 내 권력투쟁이 시 주석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수습되거나 당 대회 이후라도 시진핑 주석이 힘을 갖는 구도가 예상될 경우 북한은 10월10일을 국면 전환의 계기로 삼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서는 권력 정비를 마친 시진핑 주석과 굳이 맞설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 위원장은 10월10일을 계기로 그동안 벤치마킹해온 마오쩌둥의 옷에서 덩샤오핑의 옷으로 갈아입을지 모른다.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중국의 핵 개발 과정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미국과 서방, 소련까지 나서서 반대했다. 1964년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은 중국이 핵실험을 할 경우 실험 장소인 신장 지역과 베이징을 폭격하겠다고 공언했다. 마오쩌둥은 1964년 원폭 실험, 1967년 수소폭탄 실험, 1970년 인공위성 발사까지 밀어붙여 ‘양탄일성(원자탄과 수소탄, 그리고 인공위성)’ 체제를 갖췄다. 지금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밟아온 길이다. 마오쩌둥은 그다음 전격 개방 정책을 선언해 1971년 핑퐁 외교를 통해 키신저를 만났다. 1972년에는 닉슨 미국 대통령의 방중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말 덩샤오핑이 이어받아 경제개혁과 개방정책에 속도전을 냈다.

10월10일 국면 전환설은 바로 이 모든 과정을 지금부터 한 달 사이에 압축적으로 마무리해 국면 전환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과의 교섭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과거 마오쩌둥 역시 핵 개발의 목표를 ‘소련을 견제하고 미국과 수교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북한 역시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 및 수교, 주한미군 철수, 핵 동결·폐기를 둘러싼 보상 협상 등의 목표를 갖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응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회의적이라는 판단이 들 때 오히려 일방적으로 국면 전환 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19차 당 대회 결과를 특별히 우려할 필요가 없을 경우 북한은 그동안 제시했던 스케줄대로 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9월9일 5차 핵실험 직후인 9월13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공개 확대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2017년에 6차 핵실험을 실시하는데, 5대 핵 타격 수단 개발에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에 따라 5개의 연구개발 주체들이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는 핵탄두들을 동시에 터트려라.” 5대 핵 타격 수단은 수소폭탄, 이동식 ICBM, SLBM, 핵어뢰, 핵배낭을 말한다(사이버 공격 능력을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공개 발언 내용을 종합하면, 2017년 말까지 5대 핵 타격 수단을 완성하고 2018년에는 2015년부터 시작된 남한과의 통일대전을 완성하는 해로 잡았다는 것이다. 5대 핵 타격 수단의 완성과 관련해서 현재 준비 중인 북태평양 상으로의 ICBM 발사 및 SLBM 능력 입증이 남았다. 이 가운데 SLBM은 미국 본토와 가까운 태평양까지 진출할 수 있는 핵잠수함 능력을 갖추는 게 기본 전제다. 그동안 알려진 3500t급 핵잠수함을 뛰어넘어 6000~6500t급 핵잠수함 건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번에 새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 러시아에서 고물로 들여온 5500t급 핵잠수함을 연말까지 재건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추가 핵실험을 더 이상 하지 않으리라 본다.

5대 핵 타격 수단이 완성되면 미국도 더 이상 협상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북한의 계산이다.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전후 처리를 끝내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며 핵 동결과 폐기를 대가로 경제개발 자금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단순 동결, 비확산, 불능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가역적 핵 폐기(CVID) 등 여러 단계로 나누어 비용을 차등화해서 거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이 그동안 중국과의 협상 및 5월8~9일 오슬로 북·미 대화 등에서 제시한 금액을 합치면 550억 달러에 이른다. 최근에는 북한 내에서 3000억 달러 얘기도 나온다고 한다.

앞으로 변수는 미·중 관계다. 트럼프 정부의 목표가 ‘북핵 억지’인지 ‘중국 봉쇄’인지가 관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자들의 요구에 따라 중국과의 무역전쟁과 키신저의 조언인 러시아와의 제휴라는 지정학 전략을 양대 축으로 중국 봉쇄 전략을 주머니 속에 감춰왔다. ‘러시아 게이트’ 등이 불거지면서 러시아와의 제휴가 틀어졌다. 대북 전략뿐 아니라 대중국 전략도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북핵 대책 역시 제각각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론에서부터 중국과 협조를 통한 핵동결 유도론, 냉전 시대 대소련 봉쇄와 비슷한 대북 봉쇄론까지 극단을 오가는 대책이 모두 거론된다.

 

ⓒ연합뉴스9월6일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공동 기자회견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도 중요 변수

미국의 논의가 어떻게 모아지든 분명한 건 6차 핵실험을 계기로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의 대응 방향 역시 그에 준할 수밖에 없다.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병행해 갖춰나가야 한다. 하드 파워란 북한의 핵 공포로부터 주눅 들지 않을 정도의 억지력을 말한다. 하드 파워를 갖추는 것은 우리의 장점인 소프트 파워, 즉 경제와 문화와 사회적 힘을 가지고 북한과 교류해 국제사회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애매한 분단 체제에서 벗어나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양자 관계를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공존을 통해 교류하면서 공영의 발판을 구축하며 차이를 극복해갈 필요가 있다. 북핵 앞에 주눅 들 필요는 없다.

 

 

기자명 남문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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